첫 장편소설 《좀비들》 펴낸 소설가 김중혁

좀비가 무섭다는 편견은 버려!

명함부터 달랐다. 한 면에는 입을 떡 벌리고 환호하는 자화상 아래 ‘cartoonist’, 또 한 면에는 진지한 표정의 자화상 아래 ‘novelist’라고 적혀 있다. 유머와 위트, 재기발랄, 기발한 상상력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소설가 김중혁.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등의 소설집을 낸 그가 첫 장편소설 《좀비들》을 펴냈다. 3년 만에 탈고한 이 소설 때문에 그는 별명이 하나 늘었다. ‘일지매’. 하루에 원고지 한 장 쓴다는 의미다. 진짜 그런 건 아니고, 원고지 1400매를 3년으로 나눈 수치라고 한다.
《좀비들》은 김중혁식 기발한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된 소설이다. 그의 소설 속 좀비는 우리가 아는 좀비가 아니다. 공포스럽거나 괴기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음악 소리만 나오면 몸을 흔들어 춤을 추고, 죽은 자의 형상을 여전히 간직한, 그래서 산 자에게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화해의 여지를 주는, 긍정적이고 어찌 보면 친근감까지 가는 존재다. 내용은 이렇다.

휴대전화 수신감도를 측정하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채지훈. 그가 전파가 통하지 않는 고리오 마을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무르익는다. 고리오 마을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군사지역으로, 좀비들을 만들어 군인 훈련용으로 쓰는 비밀스런 공간이다. 인간도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좀비들을 향해 군인들은 생명살상의 죄책감 없이 총을 겨눈다. 어머니와 형의 죽음 이후 아무런 희망도 의욕도 없던 채지훈은 도서관 사서인 뚱보 130과 홍혜정을 알게 되면서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급기야 좀비를 탈출시키는 작전을 주도하는데….

좀비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작가가 택한 소재다. 살아 있는 시체 좀비, 몸은 살아있지만 영혼은 없는 좀비. 팔을 앞으로 쭉 뻗고 괴상한 걸음걸이로 관절을 꺾어가며 움직이는 좀비를 보면 좀처럼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기 어렵다. 그저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불사조 같은 영웅의 퇴치 대상이자 희화화된 괴물의 하나일 뿐. 그런데 이 좀비를 통해 죽음이라는 심오한 관념의 세계를 풀어가겠다는 거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볍게 인식하고 가볍게 풀어내는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는 죽음과 좀비를 연관시켜 책에 이렇게 기술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어머니와 형의 상태가 1이나 2라면 좀비들은 -1이나 -2에 가까웠다. 둘은 비슷해 보였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차이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은 0을 기준으로 대칭될 뿐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산 것은 플러스의 세계, 죽은 것은 마이너스의 세계이며, 두 세계는 균형을 맞추며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소설에는 숫자와 기호가 자주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역시 수신감도의 수치에도, 사람의 이름에도 숫자가 나온다. 심지어 세상의 모든 상태를 1부터 10 사이의 수치로 치환한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숫자와 기호에 천착해온 듯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인 소설가 김연수는 그가 은행원이 될 줄 알았다 한다. 작가가 숫자와 기호를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시각적으로 보기에 좋고, 둘째, 우유부단한 마음을 명확하게 재단해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 작가는 평소에도 무언가를 판단할 때 종종 숫자를 사용한다. 그는 “오늘 마신 이 에스프레소 커피를 숫자로 표현해 볼까요? 10점 만점에 6점이요”라고 말했다.


현실 어딘가에 존재할 것도 같은 판타지 세계

그의 소설에는 현실에 기반을 두되, 현실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판타지의 세계가 자주 등장한다. 이 책 《좀비들》의 고리오 마을도 그렇고, 중편 《펭귄뉴스》에서 라디오를 통해 전파하는 신비스런 비트(beat・소리의 박자)의 세계도 그렇다.

“그 세계를 저는 5cm SF라고 불러요. 땅에서 살짝 떠 있는 SF. 현실에 기반을 뒀는데 살짝 비현실적이기도 한 그 세계는 엄청 재미있어요. 머릿속에 3차원 세계를 설계한 후 2차원인 종이에 깔잖아요. 3차원을 2차원 세계로 번역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제가 설계한 3차원과 독자들이 상상하는 3차원이 달라서 또 재미있고요, 그 오해 또는 오역 때문에 세계의 깊이와 넓이가 더 생기는 것 같아요.”

김중혁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오쿠타 히데오 스타일을 닮았다. 현실의 세계 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을 법한 판타지 세계를 다룬다는 점, 모든 사건을 인과관계로 직조하려 하지 않고 주변부의 숭숭 뚫린 구멍을 그대로 두는 점에서는 하루키를 닮았고,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쿡’ 하는 웃음을 이끌어내는 유머러스함은 히데오를 닮았다. 스스로도 하루키의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연재소설을 써서 돌려 읽게 했어요. 군대에 들어오는 책은 내용이 한정돼 있죠. 검열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적당한 섹스신과 모험담이 섞인 제 소설은 엄청 반응이 좋았어요. 대여료는 담배 한 갑이었는데 대기자가 줄을 섰죠.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과 분위기가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의 소설 기술 방식은 여느 작가와 다르다. 대개 서사의 틀을 갖춘 후 이야기를 꾸려나가지만 그는 반대다. 장면을 먼저 떠올린 후 그 장면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좀비들》을 쓸 때에도 그랬다. 막연히 죽음에 대해 쓰고 싶었고, 죽음을 좀비로 풀어가자고 생각한 후 무작정 펜을 들었다. 그리고 쓰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머릿속에 시나리오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요. 두 명의 제가 존재해요. 소설가 김중혁과 독자 김중혁. 소설가 김중혁이 독자 김중혁에게 연재를 하는 형태로 소설을 써나가죠. ‘어떻게 하면 독자 김중혁이 재미있어할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끝까지 읽히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써요. 제가 제 소설의 첫 번째 독자니까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두 명이 연쇄작용을 할 수 있도록 적당한 정보와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굴을 파나가듯 소설을 써나가죠.”

흔히 창작은 산고의 고통이라고, 작가로 사는 것은 형벌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중혁에게는 창작이 주는 고통보다 재미가 크다. “형벌 아닌데요, 별로 괴롭지도 않은데요”라며 “주인공이 농담을 했을 때 킥킥거리며 대사를 쓰는 게 재미있다”고 한다. “그게 제가 소설을 쓰는 방식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덧붙인다. 그는 작가로 정식 데뷔하기 전, 요리관련 잡지사와 일간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 그의 첫 반응은 매번 “재밌겠는데요?”였다. 그는 요즘 한 문학계간지에 장편 《미스터 모노레일》을 연재 중이다. “즐겁게 뭘 하나 쓰고 싶어서 시작한 소설”이라며 첫 문장 “빙고!”부터 써놓고 시작했다 한다.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데뷔 11년차 소설가 김중혁.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고, 그림 잘 그리고( 《펭귄뉴스》 표지 그림은 그가 직접 그렸다) 사람 구경, 물건 구경 좋아하는 그는 “이 시대, 서울에서, 소설가로 사는 건 너무너무 행운”이라고 말한다. 초스피드로 변화하는 시대, 전통과 현대, 친절과 사기 등 대립항이 혼재된 채 뒤섞인 서울. 이 재미있는 세상을 보고 느끼느라 그의 눈과 귀는 바쁘다.

사진 : 김현희
  • 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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