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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제 맥 잇는 판소리 가족

‘섬진강판소리 문화학교’ 만든 김소현・박정선 부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구례사람♪”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를 흥얼거리며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에 자리 잡은 섬진강판소리문화학교. 이곳에는 우리나라 판소리의 한 유파인 동편제의 맥을 잇고 있는 판소리 가족이 살고 있다. 간문초등학교 중대분교였던 이곳은 북적대는 화개장터와 인접해 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지리산 맞은편 백운산 자락의 골짜기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지금은 공연장과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7600㎡(2300평) 규모의 폐교로, 세종대왕 동상과 독서하고 있는 소녀상이 옛 학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서편제가 감정 표현이 애절한 여성적인 소리라면, 동편제는 힘있고 투박하면서 박진감 넘치는 남성적인 소리다. 송흥록, 송만갑, 유성준, 임방울, 박초월, 김소희에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강도근 선생이 1996년 사망하면서 동편제의 맥은 끊길 뻔했다. 수제자를 두지 않은 그는 숨을 거두기 전 “내 소리를 하는 놈이 제자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렇게 위기를 맞은 동편제의 맥을 강도근의 제자였던 김소현 , 박정선 부부가 잇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음식도 퓨전 음식이 유행이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대로 간장·된장을 담그는 우리 어머니들이 있기에 그것에 바탕을 둔 창작 요리가 더욱 빛을 발하잖아요? 다양한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가운데 누군가는 전통예술을 지켜야 하지요. 우리가 그 길을 가기로 했죠.”

부부는 2001년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듬을 수 있는 북, 장구, 노랫소리가 흥겹게 울려 퍼지는 풍류의 고장을 만들고 싶어 하동 악양면에 청학문화체험학교를 만든 후 2006년 3월 이 자리로 옮겼다.

아내 박정선(48) 씨는 판소리를 유난히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네 살 무렵 고향 남원에서 소리를 시작했다. 남편 김소현(50) 씨 역시 어릴 적부터 판소리를 흥얼거리며 가사 암기가 탁월했는데, 열세 살 때 고향 영광에서 남원으로 넘어와 강도근 선생의 문하생이 되었다. 독공(獨功: 판소리 가객이 득음하기 위해 토굴 또는 폭포 앞에서 하는 발성수련)을 다니다 연이 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딸 새아(17)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판소리와 가야금 가락을 익혀 현재 부모와 함께 공연을 한다.

섬진강판소리문화학교에서는 판소리만 가르치는 게 아니다. 도자기, 동양화, 다도, 전통예절, 풍물 등 섬진강 곳곳에 사는 예술가들이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알음알음으로 이곳을 찾아와 소리를 듣고, 차도 마시고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8월 말에는 ‘소리나눔의 밤’ 행사가 열렸는데, 지리산 인근과 전국 각지에서 600여 명이 찾아와 국악, 판소리, 전통악기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을 즐겼다.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데도 그동안 연이 된 분들이 많이 와주셨죠. 예술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오시는 것 같아요. 자장면을 600그릇 준비했는데 모자랐어요.(웃음)”

행사장 옆 전시실에는 동서양화, 문인화, 서예, 도예 등 작가 40여 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모시기 힘든 예술인들의 도움으로 성황리에 행사를 마칠 수 있었어요. 돈은 없어도 이렇게 인복이 많아 재미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소리꾼이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이거든요. 먹고 사는 데 치이다 보면 이런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명창들도 자주 오시는데, 세상과 떨어져 산속에 살면서 어떻게 이렇게 각계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한 판 벌일 수 있느냐며 깜짝 놀라시죠.”


엄마 뱃속에서부터 판소리 익힌 딸의 꿈도 ‘명창’

소리를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은 것처럼 허전하다는 박정선 씨는 2010년 제36회 ‘전주대사습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 대통령상을 수상, 최고의 명창이 되었다.

“제게 있어 소리란 인생이에요. 소리가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소리 외에는 다른 욕심이 없어요. 열심히 소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목표가 생기더라고요.”

그가 여자가 부르기 어렵다는 적벽가와 ‘전주대사습전국대회’만을 고수해온 데는 이유가 있다.

“전 고집이 세요. 최고의 대회라는 생각에 전주대사습대회만 집중했죠. 다른 대회는 나간 적이 없어요. 적벽가는 여자들이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더 도전하고 싶었죠. 제 목이 남성의 소리를 소화해낼 수 있기도 하고, 처음부터 적벽가로만 나갔어요. 여섯번째 도전이었는데 죽을 때까지 하려고 했죠. 최고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얼마나 해야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20~30년은 해야 한다”고 답한다. 부부는 산에서 산으로 다니며 독공할 때 아찔했던 일화 하나를 들려주었다. 박정선 씨가 1998년 여름 지리산 쌍계사에서 독공을 하기 위해 딸을 데리고 들어갔을 때 일이다. 태풍 바트의 영향으로 집중호우가 내려 산장으로 피했는데, 구조의 손길이 닿지 않아 천둥 번개 속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 살아난다면 명창이 되는 것이고 죽는다면 내 명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지요. 지리산은 나를 그냥 안 받아주더니, 생애 최고의 선물을 주더군요.”

엄마 아빠의 독공을 따라 다니며 자연스레 소리를 접한 딸 새아는 옹알이할 때부터 진도아리랑을 읊었다고 한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잘했어요. 어릴 적부터 그냥 노는 게 소리였고 판소리를 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죠.”

새아의 꿈 역시 명창이 되는 것으로, 지금은 판소리를 정식으로 배우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박정선 명창이 직접 지도하는데 “물론 뿌듯할 때도 있지만 불만이 더 많죠. 남들은 잘한다고 하지만 제 눈엔 안 좋은 것만 보여요. 다른 제자들한테는 그러지 않는데 딸한테는 소리부터 지르게 돼요. 자식 가르치기가 참 힘들어요. 박자 감각도 좋고 재능이 있어서 그런지 기대가 더 큰 것 같아요. 우리를 더 이해하는 착한 딸이에요. 제가 팥쥐 엄마죠. 딸은 콩쥐야.(웃음)”

소리로 빛을 내고 싶다는 김소현 교장은 “예술이란 게 배고프잖아요. 특히 시골에서 뭘 하고 산다는 것은요. 경제적으로 부유하다 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못하면 괴롭거든요. 전 그게 두려워서 죽으나 사나 소리로 밀고 가다 보니 소리쟁이로서 돈은 없어도 재미가 있고, 배가 부르고 웃음이 나옵니다. 소리에 인생을 걸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요” 라고 하더니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것들을 소리로 채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어 섬진강판소리문화학교의 포부를 밝혔다. “지리산 마을 구례 땅은 남원과 함께 판소리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동편제의 본고장인 만큼 이곳을 소리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수련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요.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맨발로 맘껏 걸어 다니며 문화체험도 하는 판소리의 명소로요.”

이곳을 떠날 때는 국악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판소리 가족으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충전한 기분이 들었다.

사진 : 장진영
  • 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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