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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즐기는 창작 판소리 만들 거예요

뮤지컬 〈서편제〉 여주인공 이자람

뮤지컬 서편제
2010년 8월 14일~11월 7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문의 : 02-703-2016
무대의 송화는 이자람의 분신이었다. 판소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뮤지컬 〈서편제〉의 여주인공 송화는 ‘판소리 신동’으로 이름나 30년 가까이 판소리를 지켜온 젊은 국악인 이자람의 대변자였다. “내 소리는 숨이 모자라다. 죽도록 사랑해도 죽을 만큼 모자라다”는 이 작품 포스터의 카피는 결국, 이자람 자신이 그토록 하고팠던 말이다. 작품을 본 연극배우 서주희 씨는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자람이가 그간 힘겹고 외롭게 지켜온 것에 대해 보답을 받는 공연 같다”고. 이자람의 연기는 소름 돋았다. ‘혼신을 다하는 연기’란 이럴 때 표현하는 말일 게다. 눈물로 범벅이 되어 심청가를 뽑아내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송화를 따라 훌쩍이는 관객이 여럿이었다.

‘이자람’이라는 이름이 낯선가. ‘예솔이 이자람’ 하면 무릎을 칠 것이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하면 “예! 하고 달려가던” 여섯 살 이자람 말이다. 또 이건 어떤가. 1970년대 혼성 포크 듀오 ‘버블껌’이 부르던 노래 ‘연가’와 ‘짝사랑’. 이 혼성 듀엣 멤버인 이대규, 조연구 씨가 바로 이자람의 부모다. 그 이자람이 어느덧 30대 초반이 되어 자기의 길을 탄탄히 구축해가고 있다. 이른 나이에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택하고, 고집 세고 자의식 강한데다 순수한 예술혼에 대한 갈망이 강한 그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10대 소녀와 70대 할머니의 혼을 다 지닌 것 같다”고.

이자람과는 두 번째로 마주 앉았다. 이자람이 곡을 쓰고, 노래하고, 음악감독을 맡았던 창작 판소리 〈사천가〉 공연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 그간 낭보도 들렸다. 〈사천가〉가 장기 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이 작품이 폴란드 콘탁페스티벌에 초청되고 이 페스티벌에서 이자람이 최고배우상을 수상했다는 등(〈사천가〉는 올해 9월엔 미국, 내년엔 프랑스 초청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공연 보셨어요? 어떻게 보셨어요?”라며 반달 눈매로 예의 그 애교 섞인 눈웃음을 건넸다. 30개월이란 시간 동안 이자람은 눈에 띄게 더 ‘자랐다’. 객석 반응에서 이자람이 그간 해온 작업의 힘이 느껴졌다. 막이 내리자 ‘이자람’을 연호하며 기립 박수를 보내는 젊은 관객이 꽤 있었다. 젊은 소리꾼 이자람,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판소리 고유의 영역을 지켜온 이자람에게 보내는 뜨거운 갈채였다. 공연을 시작한 지 보름 남짓 지난 그에게 감회를 물었다.

“몸이 조금 힘들어서 어제 고기를 많이 먹었어요. 지난번 인터뷰할 때에도 제가 고기 시켰었죠?(웃음) 송화 역할에 빠질수록 몸에 힘이 점점 빠지면서 정신으로만 사는 것 같아요. 몸이 안 지쳐야 마음이 안 지치고 마음이 안 지쳐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잖아요. 3개월짜리 장기 공연은 처음이라서 무섭거든요. 전장에서 숲에 숨어 ‘적군이 언제 오나’ 하는 심정이에요.”


그에게 뮤지컬 〈서편제〉는 새로운 도전이다. 장기 공연도 처음인데다 규모 면에서도 그간 해온 공연 중 가장 스케일이 크고, 다른 배우와 주고받는 연기도 처음이다. 이제까지 그는 판소리의 창자(唱子) 역할을 주로 해왔다. 무대 한가운데에서 화자도 됐다가 이 역할, 저 역할을 옮겨 다니며 저 혼자 연기하는 창자. 그래서인지 그의 연기는 몰입이 강하다. ‘저렇게 펑펑 울면서 어떻게 연기가 되지?’ 싶을 정도로.

“저는 메소드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요. 판소리를 하면 계속 역할이 바뀌잖아요. 〈춘향전〉의 경우 춘향이도 됐다가, 춘향 모친도 됐다가, 이도령도 됐다가…. 그때마다 그 인물 자체에 최대한 가까워지려고 하거든요. 〈서편제〉의 송화는 전라도에서 촌스럽게 자란 여자아이인데, 뚝심 있으면서도 눈이 멀기 전에는 한없이 긍정적인 아이예요. 결국 그 긍정의 힘으로 판소리를 선택하고, 판소리 자체가 돼버리죠. 이렇게 송화 내부의 감정에 집중하려고 해요. 저는 노래하면서 감정 표현하는 게 더 편해요.”


뮤지컬 〈서편제〉는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제작해 200만 명의 관객몰이를 했던 영화 〈서편제〉와 이청준의 동명소설을 원안으로 해서 만들었다. 판소리로 상징되는 송화의 소리를 모티프로 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스토리 라인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서편제의 애절한 가락을 중심에 두고 대중적이면서도 중독성 강한 팝, 록 등 서양음악을 입혀 지루하지 않게 했다. 또 송화와 남동생 동호 간에 미묘한 애정관계를 삽입했고 동호를 미군부대 로커로 등장시켜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로 꾸몄다.

각 분야 톱클래스의 빵빵한 제작진이 대거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뮤지컬 〈헤드윅〉 〈그리스〉 〈바람의 나라〉 〈록키호러픽쳐쇼〉 등의 연출가 이지나, 뮤지컬 〈남한산성〉 〈내마음의 풍금〉의 작가 조광화, 김범수 ‘보고 싶다’, 이은미 ‘애인 있어요’, 김건모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등의 작곡가 윤일상, 〈맘마미아〉 〈미스사이공〉의 음악감독 김문정 등. 이자람은 국악 부분의 작곡을 맡아 직접 곡을 썼다. 캐스팅도 화려하다. 송화 역에는 〈몬테크리스토〉 〈드림걸즈〉의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 더블 캐스팅됐고, 동호 역에는 〈오늘 그댈 사랑합니다〉의 가수 JK 김동욱과 수식이 필요없는 스타 뮤지컬 배우 임태경이, 아버지 유봉 역은 〈모차르트〉 〈남한산성〉 〈노트르담 드 파리〉의 서범석이 맡았다. 이자람은 특히 이지나 연출가에게 무척 고마워했다.

“이지나 연출님이 그러셨어요. ‘이 공연을 본 관객이 판소리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어라고 가볍게 한마디 던진다면 우리는 성공한 거야’라고요. 지금 여기저기에서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저 혼자 힘으로 하면 더디 갔을 텐데 이지나 연출님이 추동체를 달아주신 것 같아요.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시속 400km로 달리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저는 분명 시속 100km로 다시 돌아갈 거예요. 그땐 400km로 달리면서 본 세상이 엄청난 자양분이 돼 있겠죠?”





“우리 시대에 맞는 판소리가 계속 나와야지요”

이자람은 담을 허무는 자다. 판소리를 ‘옛것’으로 치부해 담을 쌓고 아예 들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 담을 허물어뜨린다. 스스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로 만들었다”는 표현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그는 젊은 대중의 기호를 예리하게 읽어낸다. 그리고 견고하게 쌓아둔 담을 대중 스스로 허물게 만든다. 그것도 서서히. 그가 작곡한 뮤지컬 〈서편제〉의 국악 부분을 보면서도 확실히 느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처음부터 정통 판소리를 하지 않는다. 관객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고, 그 접점에서 관객의 손을 이끌고 판소리 고유의 영역으로 서서히 들어간다. 똥물을 소재로 관객을 공연에 참여시키면서 흥미를 유발한 후 판소리 분량을 서서히 늘려간다. 판소리에 관심 없던 관객은 송화의 감정에 빠져들면서 송화의 소리에 푹 잠긴다.


이자람은 ‘퓨전 판소리’ ‘전통 판소리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한다. 그에게 추구하는 소리의 세계를 묻자 “제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에요”라며 진지하게 답한다.

“판소리를 통째로 전통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판소리는 하나의 장르이지 전통음악이 아니에요.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등 예부터 내려오는 판소리들이 전통 판소리죠. 제가 만든 〈사천가〉같이 창작 판소리는 그냥 판소리예요. 21세기에 나올 법한 판소리 말이에요. 100년 후에는 전통 판소리가 되겠죠. 문화재법 지정 이후 5개의 판소리만 남고 다른 판소리는 다 소멸했어요. 그 다양한 판소리 작품이 만들어지던 정신이나 시대를 보는 눈이나 노래를 보는 안목은 사라지고 작품만 남았어요. 저는 판소리라는 장르의 힘을 다시 살리고 싶어요. 귀도 즐겁고 눈도 즐겁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판소리의 힘 말이에요.”


이즈음에서 이자람이 걸어온 길을 보자. 1984년 노래 ‘내 이름 예솔아’의 주인공으로 유명해진 그는 히트송을 부르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음악인의 길을 걷는다. 그가 국악계에 발을 디딘 건 우연이었다. 방송작가로도 활동하던 그의 아버지가 초등학생이 판소리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는 TV 어린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적당한 출연자를 찾지 못해 이자람을 등장시킨 것. 이후 국립국악중·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국악과에 입학한 그는 실력파 국악인으로 입지를 다져나간다. 고3 때 〈심청가〉를 완창했고, 스무 살이던 1999년에 〈춘향가〉를 완창해 최연소 완창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2001년에는 국악뮤지컬집단 ‘타루’를 결성, 대표를 맡아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 2005년에는 ‘아마도 이자람밴드’를 결성해 기타리스트 겸 보컬로 활동한다. 대학 재학 시절 홍대의 인디뮤지션들과 잦은 교류가 있었으니 갑작스런 외도는 아니다. 이후 처음 만든 창작 판소리 〈사천가〉로 호평을 얻으면서 실력파 국악인으로 우뚝 섰다.


무대에서 공연하는 이자람을 보면 판소리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얼굴을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 팔자 눈썹은 상황에 따라 애절하게도, 귀엽게도 보이고, 외꺼풀의 작은 눈은 우리네 한을 담은 듯 깊다. 흔치 않은 개성 있는 외모라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외모 콤플렉스가 무지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예전에는 제가 엄청 못생겼다고 생각했어요. 몸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아서 반바지를 입고 집 밖에 나가본 적도 없고, 소매 없는 티셔츠를 입어본 적도 없어요. 이 정도도 저로선 엄청 노출한 편이에요.(웃음) 꿈에서도 성형한 적이 있다니까요. 턱도 깎고, 지방 흡입도 하고…. 하지만 남자친구 덕분에 저를 사랑하게 됐어요. 그 친구가 저를 정말 많이 예뻐해줬어요. 제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멋있게 생겼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해주죠. 그렇게 2년 6개월 동안 계속 듣다 보니 조금씩 수긍하게 됐어요. 이제는 반바지 입고 슈퍼에도 가요.(웃음)”

그의 남자친구는 연극·영화 연출가 김남건 씨. 2004년 동아무용콩쿠르 대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4년 연하인 김씨와 내년쯤 결혼할 계획이라며 “이 사람을 놓치면 다른 사람을 못 만날 것 같다”고 말하고는 또 반달 눈매로 웃는다.

“저는 사람 좋아하고, 그만큼 상처도 잘 받아요.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아요. 〈서편제〉 하면서 아름다운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서범석 선배님, 이영미 선배님은 무대에서나 밖에서나 너무 아름다운 분들이세요. 남자친구도 참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거든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방법도 아는 것 같아요. 이 친구를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얻어요.”

그는 인터뷰 중 ‘진심’ ‘진실’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진실, 그가 살아가면서 가장 관심을 두는 화두다. 이자람의 다음 창작 판소리 역시 ‘진실’이 소재다. ‘작은 진실들이 이기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작은 진실들이 작은 승리라도 조그맣게 하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한다.

이자람은 1000석 규모의 뮤지컬 무대에서 시속 400km로 달리고 있지만, 마음은 벌써 시속 100km의 세계에 가 있는 듯하다. 그는 느리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의 더딘 행보는 ‘판소리는 지루한 옛 것’이라는 편견을 서서히 허물어뜨리고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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