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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을 재미있게 하는 게 내 영화의 목표

흥행 행진 영화 〈이끼〉의 감독 강우석

강우석(50) 감독은 22년간 19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1988년, 결혼하기 위해 상경한 농촌 총각들의 이야기를 그린 〈달콤한 신부들〉이 시작이었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학생의 이야기를 그린 학원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도 있었고, 비리 경찰의 이야기를 그린 〈투캅스〉 1ㆍ2편도 있었다. 2000년대는 더 나쁜 놈을 때려잡는 나쁜 형사의 이야기 〈공공의 적〉으로 출발했고, 실패한 북파 공작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실미도〉로 절정에 올랐으며, 한ㆍ일간 가상전쟁 위기를 다룬 〈한반도〉와 〈공공의 적〉 속편, 그리고 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공포 영화 〈이끼〉까지 흘러왔다.
서울올림픽의 해에 출발해서 한일월드컵을 거쳐 남아공월드컵의 해까지 5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스물여덟 살의 패기 넘치던 청년 강우석은 머리칼 희끗한 쉰 살의 중견 감독이 됐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동안 한국 영화계는 영화사의 설립이 자유로워지고 외화의 직배(직접배급)가 시작됐으며, 권력에 의한 검열체제가 해체됐다. 1980~90년대 한국 영화는 점유율이 10~20%밖에 되지 않는 한국 영화시장의 ‘마이너’였으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할리우드 영화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강우석은 한국 영화의 중심에서 이 모든 걸 겪었다. 충무로는 눈뜨고 일어나면 주인이 바뀌는 극심한 변화의 중심이었다. 충무로의 포장마차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영화를 만들던 많은 동료는 어느덧 뒷방에 물러앉기도 했다. 충무로 식당과 다방에서 오며가며 마주치던 영화인들은 어디 갔는지 자취를 감춘 이도 많다. 최근 몇 년간은 아예 영화사들이 강남으로 강남으로 짐을 쌌다. 충무로를 지키고 있는 영화사라곤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가 거의 유일하다. 임권택 감독을 제외하면 20여 년 이상 현재까지 주류 영화계에서 매년 작품을 내고 흥행 경쟁 속으로 뛰어드는 감독으로도 사실상 강우석 감독이 유일하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치 않은 것도 있다. 여전히 흥행 산업의 중심에서 승부를 내고야 마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다. 강 감독 영화는 19번째 연출작 〈이끼〉를 기점으로 개인통산 동원 관객 3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마저도 1998년 이전까지 만들었던 13편의 영화는 전국 관객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아 서울 관객만을 계산에 넣은 것이다. 〈투캅스〉 1·2편만 해도 전국 관객으로 치자면 수백 만 명이 넘을 터이니 실제 동원 관객 수는 3000만 명보다는 4000만 명 쪽으로 저울추가 더 기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느 편이나 현재까지 확인된 것으로는 한국 영화 사상 최고 기록이다. 매 편 평균 동원관객 200만 명 이상의 흥행 파워가 놀랍다.

지난 7월 14일 개봉한 〈이끼〉가 흥행 행진을 시작한 초반부 150만 명을 돌파하며 개인통산 3000만 명 동원이 준(準) 공식기록으로 확인된 직후 만난 강우석 감독은 다소 겸연쩍어하면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눈치였다. 에두르는 법 없이 관객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영화가 그렇듯 뒤돌아보지 않는 강 감독의 성격도 그렇거니와 그 속내에는 무려 13편의 영화가 서울 관객 수만 집계된 데 대한 미심쩍음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국 관객 수를 합하면 한참 전에 이미 3000만 명을 넘었을 테니, 큰 의미 없는 숫자”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받은 전국 암산왕 상패를 아직도 가지고 있고, 거리를 지날 때 자동차 번호판이든 간판의 전화번호든 빼고 더하고 곱하고 나누는 버릇이 있다는 그이니 ‘얼추’ ‘대강’ 몇 천만이 성에 찰 리 없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충무로의 한 영화인이 전자계산기를 앞에 놓고 강우석 감독의 암산 실력과 맞붙었다가 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은 설득력 있는 드라마가 통한다는 겁니다. 결국은 이야기가 모든 것을 가를 겁니다.”

강 감독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 “컴퓨터를 켤 생각도 안 하고 살아왔다”는 그는 인터넷도 요즘에 와서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메일 주소도 없다. 영화 소재를 구하기 위해 신문기사를 오려 철하고, 서점에서 책을 들추며, 〈추적 60분〉 〈PD수첩〉 등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늘 몇 회치를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해 본다. 첫 영화부터 지금까지 그에겐 신문기사가 가장 좋은 영화 소재의 보고다. 그만큼 그의 영화는 현실을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요새 읽고 있는 책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대한민국 검찰》이라고 했다. 영화감독이자 당대의 ‘스토리텔러’로서 강우석에게 드라마 또는 이야기는 신앙이고,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기술은 형식에 불과하다. 그의 지론 중 하나는 “열네 살 중학교 2학년생이 보고 재미있으면 누구에게나 재미있다”는 신념이다. 하지만 20여 년 전 중학교 2학년생은 TV를 보고 ‘만화방’에서 낄낄거렸으며 성인잡지를 기웃거렸다. 지금의 열네 살은 PC방에 가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며 3D영화를 본다. 그 속도를 어떻게 따라잡을까.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시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데서 이야기는 출발합니다. 같은 ‘아날로그적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좋은 드라마는 통한다는 거죠.”


영화 <이끼> 제작 전 안티 팬들과 부딪혀

그의 영화 〈이끼〉는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윤태호 작가의 웹툰이다. 그는 이 작품을 하면서 논란이 일상이고, ‘안티’가 벗이며, 악플이 ‘끼니’인 인터넷 세상과 접속했다.

“원작 만화의 무엇이 팬들을 열광케 하는지 댓글을 안 볼 수 없었죠. 그런데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하고서 ‘하필이면 왜 강우석이냐’ ‘제발 강우석만은…’이라는 ‘안티 글’도 많더군요. 정재영을 ‘마을 이장’ 역으로 캐스팅했을 때도 반대가 심했어요. 호감도가 높았던 정재영에게 처음으로 안티 팬이 생겼을 정도예요. 박해일만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았죠.”

애초 강우석 감독이 <이끼>의 메가폰을 잡으려던 건 아니었다. 저작권자가 영화 제작을 의뢰하러 찾아왔을 때, 강 감독은 ‘거절할 명분’을 염두에 두고 당시 인터넷 연재 20회 차를 묶은 단행본으로 1권까지만 나왔던 만화책을 읽었다.

“뭐야 이거? 한국 만화가 이렇게 재미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야? 만화야? 할 정도로 영상감각이 뛰어났고, 바로 우리 시대, 우리의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리얼하고 감각적인 스릴러였죠.”


〈이끼〉는 2008년 8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만화로, 헤어져 살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한 외딴 시골마을을 찾게 된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려는 청년과 마을을 지배하는 이장의 대결구도를 축으로 흥미진진한 진실 게임이 진행되는 가운데 완벽한 사회를 추구했던 한 이상주의자의 욕망과 완전한 권력을 꿈꾸었던 악마주의적 열정, 정의와 불의, 선과 악에 대한 혼돈이 드러난다.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한 지금 시대가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만화 팬들의 원작에 대한 충성도가 워낙 높아서 과연 욕먹지 않고 잘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도 은근히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일단 원작 만화 팬들이 가장 먼저 극장에 달려오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저로선 원작의 방대한 시간과 내용을 속도감 있는 스릴러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연출력이 시험대에 오른 느낌입니다. ”

강우석은 평소와는 달리 이번 영화 촬영 중에는 그야말로 노심초사했다. 그 좋아하는 술도 입에 안 대고 담배도 끊었다 피웠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한 가지 자신감은 있었다. “원작의 방대한 시간을 2시간 40분에 담아낸 속도를 보면, 왜 (1990년대에) 강우석의 코미디가 하나의 현상이 됐는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라는 게 강 감독의 말이다.

〈이끼〉는 8월 들어 레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인셉션〉과 안젤리나 졸리의 〈솔트〉 등 거대한 외풍을 맞고서도 꿋꿋하게 한국 영화 점유율을 사수해내고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몇 년간은 여름 시즌에 작품을 내면서 할리우드의 대규모 화제작과 맞붙어 왔다. 〈공공의 적 1-1: 강철중〉은 안젤리나 졸리의 〈원티드〉와 흥행대결을 벌이기도 했었다. 마치 선봉에서 적군을 맞서내는 장수 같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의 영화사 시네마서비스는 최근 몇 년간 강 감독의 연출작을 제외하고는 흥행에 줄곧 실패해왔다. 제작자로서 강 감독은 20년간 늘 그렇게 살았다. 다른 감독이 제작한 영화 몇 편이 손실을 내면, 강 감독의 연출작 흥행으로 만회하는 식이다. 강 감독은 늘 흥행으로 얻은 이익을 모두 한국 영화에 남겨놓겠다고 강조해왔고, 실제 그동안 재능 있는 후배, 동료, 선배 감독들의 작품에 손실을 무릅쓰고 투자와 제작을 감행해왔다. 자신의 영화에는 엄격하지만 동료, 후배들의 작품에는 손실을 각오한 투자를 계속해왔다. 생활이나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영화인들에게 몰래 도움을 준 뒷얘기도 늘 충무로의 화젯거리다. 강 감독은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작업”이라며 “나는 시네마서비스의 영원한 불펜 투수”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충무로 파워 1위’라는 상징적 타이틀을 보유했던 강우석 감독은 한국 영화에서 타고난 흥행사이자 승부사였으며 때론 흥행과 작품성 평가가 엇갈리는 논란의 주인공, ‘문제적 감독’이었다. 흥행에서만큼은 “여전히 배고프다”고 했지만 〈이끼〉는 오랜만에 평단의 호평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이 작품은 ‘강우석, 그 이상의 강우석’을 보여준 영화로 평가되고 있다. 〈이끼〉의 흥행행진 중에 만난 강 감독은 작품 세계가 한층 깊어지고 있고, 변화의 계기가 보인다는 평단의 시각이 다소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나는 여전히 관객과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무슨 국제영화제 초청작이나 예술영화를 기대해선 안 돼요. 그렇게 몰고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다음 작품도, 또 다음 영화도 관객과 함께 가는 영화, 관객이 재미있어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그럴 겁니다.”

강 감독은 〈이끼〉가 개봉하자마자 바로 다음 영화 〈글러브〉의 촬영을 시작했다. 유례없이 빠른 행보다. 〈이끼〉의 배우 정재영, 유선과 촬영 스태프들이 고스란히 재기용된 〈글러브〉는 퇴물 프로야구 선수와 청각장애 고교 야구부가 만들어내는 드라마, 작은 기적을 다룬 이야기다.

사진제공 : 시네마서비스
  • 201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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