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주연 신성록

연기밖에 모르는 욕심 많은 배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7월 13일~9월 19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문의 : 1588-5212
한 사람의 인생을 가장 잘 아는 존재는 누굴까.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존재는 누굴까. 객관적으로, 왜곡되지 않고 말이다. 가족? 연인? 둘 다 아니다. 가족은 너무 가까워서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연인은 영속성을 담보하지 않기에 시간적으로 불완전하다. 특정 시기의 나를 분절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오랜 친구가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함께 성장한 수십 년지기 친구, 지근거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지켜보며 부지불식간에 나의 인생에 속속들이 들어와 있는 친구 말이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이런 전제에서 출발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토마스 위버와 고향 동네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엘빈 켈비는 30년지기 친구.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이지만 환경과 상황이 변하면서 점점 멀어져간다. 엘빈이 뜻하지 않게 자살하면서 송덕문(頌德文: 공덕을 기리어 지은 글)을 쓰게 된 토마스는 엘빈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뒤늦게 깨닫는다. 〈스토리 오브…〉에는 시각적인 화려함도, 청각적인 웅장함도 없다. 100여 분 내내 두 친구가 주고받는 대사와 노래가 전부다. 하지만 막이 내리면 가슴 깊은 곳을 휘저어놓는 울림이 있다.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이 작품이 대형 뮤지컬 틈바구니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평일 낮 공연 객석 점유율이 80%가 넘는다. 이 흥행의 열풍에는 탄탄한 연기력과 노래 실력 갖춘 네 명의 뮤지컬 배우 신성록·이석준·류정한·이청용이 있다. 특히 브라운관과 무대를 오가며 폭넓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신성록이 일등공신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는 현재 SBS 드라마 〈이웃집 웬수〉에서 연상녀 윤지영(유호정 분)을 좋아하는 까칠한 셰프 장건희 역을 맡아 열연 중이기도 하다.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그를 만났다. 10여 년 전부터 뮤지컬 무대에서 내공을 다진 때문인지 말투와 자세가 교과서 같다. 발음이 정확하고, 대사를 읊듯 강약과 장단고저가 있다. 그는 〈스토리 오브…〉에서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 역을 맡았다.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앞만 보며 달려가느라 동네 친구의 말을 번번이 무시하는 냉정한 역할이다. 그는 연기하면서 깨닫는 게 많다고 했다.

“토마스와 엘빈은 순수함을 간직한 어린 시절부터 친구예요. 하지만 순수함을 잃으면서 틈이 벌어지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요?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다 보면 대부분 순수함을 잃고 경쟁사회로 뛰어들게 되잖아요. 어른이 될수록 맘에 맞는 친구보다는 필요에 의한 관계가 늘고…. 토마스의 역할에 깊이 공감하고 있어요. ‘내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기 위해 너무 앞만 보면서 달려왔구나. 어릴 적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흙놀이하던 시절의 행복감을 잊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죠.”


신성록에게는 멘토 같은 형이 있다. 뮤지컬 배우 김찬 씨로, 〈지하철 1호선〉 〈달고나〉 〈그림자 소동〉 등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다. 그는 “인간적으로 가장 많이 의지하는 형”이라며 “힘든 시기에도 힘든 내색 안 하고 제 고민을 더 많이 들어줬죠. 그래서 더 미안하고 안타까웠는데, 몇 년 만에 주연을 맡아서 너무너무 기뻐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김찬 씨는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 〈장부가〉에서 안중근 역을 맡아 8월 말부터 무대에 선다.

2004년 뮤지컬 〈모스키토〉로 데뷔한 신성록은 드라마와 뮤지컬을 오가며 활약 중이다. 2006년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 〈내 인생의 황금기〉 등을 통해 인지도를 넓힌 그는 지난해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주인공 역을 꿰차더니 줄곧 주인공 역을 맡아왔다. 데뷔 후 9년 동안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려온 신성록. 어느덧 29세, 서른을 코앞에 둔 그는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다. 연기자로서 지금 시점을 “신인의 패기를 넘어 노련함으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이라고 말한다.

“데뷔 초기에는 열정과 신선함으로 어필했지만, 지금은 그런 단계는 지난 것 같아요. 실수해도 ‘그럴 수 있지’ 하고 이해받는 시기는 지난 거죠. 젊지만 어느 정도 실력까지 갖춰야 하는 시점이에요. 부담감 없다면 거짓말이죠. 채워야 할 부분이 많아요. 뮤지컬 배우로서는 노래를 더 잘하고 싶고, 배우로서는 속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싶어요. 예전에는 아무리 보려 해도 안 보이던 것들이 지금은 조금씩 읽혀요. 10년, 20년이 지나면 더 많이 보이겠죠. 남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 남과 다르게 표현해낼 수 있는 고유한 표현력을 가지고 싶어요. 이런 것들은 감성과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인생을 풍부하게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녹아들겠죠?”


고등학교 때까지는 농구에만 몰두

신성록은 ‘오타쿠’ 기질이 강하다. 한 가지에 빠져들면 시간과 공간을 잊고 몰입하기 일쑤고, 한 길에 들어서면 그 길밖에 모른다. 키가 185cm인 그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농구선수로 활약했는데(그의 남동생 신제록 씨도 농구선수로, 안양 KT&G카이츠 소속이다), 농구선수가 되기 이전에도 농구에 빠지면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오전에 나가 점심, 저녁도 거르고 해질 때까지 농구를 할 때가 많았다고.

배우가 된 이후엔 오직 연기 생각뿐이다. 스스로 “뭐 하나에 빠지면 다른 건 안 보인다”면서 “여기(무대와 브라운관)가 삶의 터전 같고 고향 같다”고 말한다.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배우의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티스트 마인드를 가진 배우가 되는 거예요. 돈을 내고 와서 보시는 관객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점점 커져요. 그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배우,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단순히 저 혼자만 연기를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예술가로서의 마인드가 있어야 하죠. 연기를 보러 오시는 분, 음악을 들으러 오시는 분 등 관객의 기대치는 각기 다르지만 그분들을 골고루 만족시키고 싶어요. ‘내 연기만’ ‘노래만’ 이런 식이 아니라 총체적인 안목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의 다음 무대는 뮤지컬 〈틱틱붐〉이다. 〈틱틱붐〉은 〈렌트〉의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뮤지컬로, 〈렌트〉의 전신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애환을 담은 이 작품 역시 신성록의 지금과 닮은 점이 많다.

“조너선이 〈틱틱붐〉을 만들었던 때가 딱 지금 제 나이예요. 서른 살 생일을 앞둔 시기. 당시 조너선은 이렇다 할 만한 흥행작을 만들지 못하고 투자자도 못 구하고 결혼도 못했죠. 변두리의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말이에요. 다른 작곡가와 비교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요. 지금 제 심경이 그렇거든요. 물론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도 잘 되고, 드라마 〈이웃집 웬수〉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과연 ‘신성록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없어요. 저를 각인시킬 만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사진 : 김선아
  • 201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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