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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에 활기 불어넣는 청춘과 어르신들

[재래시장, 문화를 만나다] 전주 남부시장의 ‘청춘작업소’ ‘할머니공방’

전라북도 전주의 남부시장에 들어서자 여느 재래시장처럼 시끌벅적한 가운데 여기저기서 구수한 사투리가 들려왔다.

“저, 하늘정원에 가려고 하는데요.”

“저짝으로 가서 휙 꺾어 올라가야.”

‘하늘정원’으로 가는 길을 물을 때마다 인심좋은 상인들의 친절한 길안내에 ‘하늘정원이 어떤 곳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란 궁금증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시장 안 십자로에 들어서자 산뜻한 일러스트로 그려진 젓갈집, 순댓국집, 그릇가게 등의 간판들이 저마다 재미난 표정으로 반긴다. 디자인 페스티벌이나 빈티지 카페에서나 볼 법한 이런 간판들은 누가 그린 것일까? 뭔가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숨어 있을 것 같아 ‘보물찾기’하는 기분이었다.

할머니 3총사 송순덕, 박영예, 이인자 할머니와 김진영, 전수진 디자이너(왼쪽부터).
시장 건물 옥상의 ‘하늘정원’에 다다르자 할머니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인정 같은 곳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천과 모시로 생활용품을 만들고, 버려진 물건들을 되살려 내는 할머니 세 분과 벽화 작업, 공공미술, 생활자원을 재생한 아트 작업을 하는 20~30대 디자이너 4명의 작업 공간이다. 입구에는 ‘청춘작업소’ ‘할머니공방’이라고 쓰인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2008년 출발한 ‘청춘작업소’ 는 지역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이음’에서 분리되어 나온 미술팀.

청춘작업소 구혜경 팀장은 “‘청춘작업소에 웬 할머니들?’ 하며 의아하셨을 거예요. 오랜 세월 숙련해온 어르신들의 손재주와 젊은 사람의 감각이 만나 함께 아트 작업을 하면 어떨까, 하는 취지에서 청춘작업소 안에 ‘할머니공방’을 만들게 됐지요”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도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노인이 일할 곳은 많지 않다. ‘청춘작업소’는 단순히 노동력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창의력과 능동적인 욕구가 필요한 즐거운 일터, 젊은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일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모집 공고를 냈다. 청춘작업소에 합류한 할머니들은 14주간 실습 교육을 받으면서 장인이자 예술가로 거듭났다. 평생 단련해온 바느질 솜씨를 활용해 낡고 버려진 물건들을 창의적으로 재활용해 만든, 공방에 전시된 할머니들의 수공예품을 보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인자 할머니(62)는 “내가 이 나이에 창조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했지. 그런데 여기 나오면 뭔가 내가 계발되는 것 같고, 색다른 걸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자꾸 욕심이 생기더라고” 한다.

한시도 재봉틀 앞에서 떠날 줄 모르던 송순덕 할머니(72)도 “여그 와서 눈이 더 밝아진 거 같어. 집에 있을 땐 노상 머리도 아펐는디, 이잔 머리 아픈것도 없어. 뭐시 젤로 보람이냐믄 내 손으로 만든 것을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헐 때 참말로 기분이 좋지이. 자식들은 쉬라고 허지. 근디 나가 집에까지 싸가지고 와서 허는 거 보더니 이제는 그런 말 안 혀. 을매나 재밌는지 몰러”라고 말한다.

재활용 옷과 천조각을 이용해 만든 할머니 3총사의 작품들.
“살맛 나게 일하면 천직 아니여?” 박영예 할머니(71)의 특기는 정해진 틀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만드는 것이다. 할머니가 만든 찻잔받침이나 쿠션은 독특해서 보는 사람마다 칭찬한다고 한다. 꼼꼼한 성격이 공방일과 잘 맞는다는 할머니는 커튼집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천을 얻어 와 쿠션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게 재미라면서 “아침에 눈뜨면 공방으로 달려가고 싶다” 고 말한다.

할머니공방의 주인인 할머니 3총사. 할머니라기엔 너무 활동적이어서 모두 ‘어머니’라 부르는데, 그래서 공방 이름도 ‘할머니공방’이 아니라 ‘어머니공방’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시장 간판 디자인하고, 시골 마을에 벽화 그리는 젊은 디자이너들

아이들이 입는 오방장 두루마기의 색감을 살린 티셔츠.
공공미술 사업을 하면서 할머니들과 함께 일하는 ‘청춘작업소’의 젊은 디자이너들.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은 타고난 멀티 플레이어로 보였다. 이들이 남부시장에 둥지를 튼 것은 재래시장 활성화를 고민하면서였다. 이들은 먼저 쓰레기로 가득한 옥상을 하늘정원으로 만든 후 자신들의 작업 공간이자 상인들의 휴식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시장의 간판부터 새롭게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싫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분위기에 맞게 바꿔주자 점점 요청이 쇄도했죠.”

하늘정원은 무료로 제공되는 국수와 김밥을 먹으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국수음악회’와 ‘옥상영화제’ 등으로 일반 시민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청춘작업소’는 현재 전북 진안군 성수면 중길마을, 방곡마을, 채송화마을, 와룡마을, 부귀면의 버스정거장 8곳의 벽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디자이너 전수진(26) 씨는 “시골에 활기찬 분위기를 불어넣고 싶어 마을 벽에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그려 넣었죠. 주민들이 완성된 벽화를 보고는 마을이 살아난 것 같다며 너무 좋아하셨어요. 시골은 문화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저희가 그런 기회를 드릴 수 있다는 것에 소소한 행복을 느낍니다. 이렇게 조금씩 아름다워지는 마을을 보면”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전라북도와 전주시에서 후원하는 ‘한스타일’ 프로젝트의 상품 개발에도 열심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세계화하는 프로젝트. 전주의 ‘한옥마을’을 주제로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재미있지만 부담도 크다”고 한다.


할머니들의 귀여운 손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전수진 씨는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인원이 적어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매번 새롭게 도전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어떤 일이든 함께하면서 문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늘 성취감과 보람을 느낍니다”고 한다.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이들은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달려간다. 심지어 냄비 색깔이 바랬으니 예쁘게 색칠해달라고 해도 발 빠르게 달려간다. 그러면서 공공 디자인으로 마을을 예쁘게 단장하고, 노인들에게 새로운 일거리와 보람을 만들어주고자 궁리한다. 이들은 할머니 공방뿐 아니라 이주여성 공방, 며느리 공방, 할아버지 공방 등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이 문화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 : 진구
  • 201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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