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문인들의 책에 실리는 ‘작가 초상’ 촬영하는 백다흠

문인들의 내면세계 포착하려 하루 종일 따라다니기도 하지요

요즘 유명 문인들이 출간하는 책에는 어김없이 ‘백다흠’이라는 출판 편집자 겸 사진작가가 찍은 프로필 사진이 실려 있다. 유명 작가들의 기사에도 ‘사진제공 백다흠’이라는 출처가 표기돼 있다. 사진 찍는 것을 꺼려하는 문인들이 동일 작가 앞에서 기꺼이 피사체가 된다는 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압구정동 찻집에서 만난 백다흠 씨는 인근 로데오 거리에 어울리는 상큼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훈 고은 공지영 신경숙 은희경 윤대녕 김인숙 김경욱 김영하 등 내로라하는 문인 60여 명을 렌즈로 담아냈으니 자신감이 툭 배어나올 것 같은데 정반대였다. 천천히 신중하게 말하는 스타일인 그는 “사진이 좋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의뢰가 많아진 거 아니냐”고 물어야 마지못해 “입소문이 재미있고 무섭던데요”라고 했다. “백 작가한테 안 찍으면 일류가 아니라는 말 나오겠다”고 하자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너무 고맙지요”라고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사람 찍는 게 가장 어려워요”라고 했다.

올해 서른한 살인 백다흠 씨, 사진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따로 배운 것도 아니다.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재 문학동네에 소속된 출판 편집자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진기를 만지며 자란 것 외에 특별히 사진과의 연관성은 없다. 굳이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사건을 되짚어본다면 대학 때 사진 서른 장을 찍어 코멘트를 단 사진첩을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한 것 정도다. 그때 처음 의도를 갖고 사진을 찍었고, 그 과정에서 인물 사진에 흥미를 느꼈다.

취미에서 프로로 가는 길은 우연히 찾아왔다. 5년 전 <문예중앙> 시선집(詩選集)에 들어갈 시인들의 사진을 맡으면서였다. 당시 편집자였던 김민정 시인이 편집실 직원인 백다흠 씨에게 전격적으로 사진을 맡긴 것이다. 김민정 시인은 “무생물을 찍어도 사진이 따뜻했다. 따뜻한 시선이 좋아서 부탁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시인 15명을 담고 난 후 입소문이 나면서 소설가들과 작업하게 되었고, 어느덧 문인 60여 명을 그의 사진기로 담아냈다. 요즘 국내 유수의 출판사들이 유명 작가의 책을 낼 때면 으레 그에게 프로필 사진을 의뢰하는 상황이 되었다. 백다흠 씨는 다음날 소설가 황석영 씨 사진을 찍을 예정이어서 몹시 예민한 상태라고 했다.

(위로부터) 박범신, 이성복, 천운영.
“사흘 전 의뢰받았는데 그 순간부터 계속 황 선생님 생각을 하고 있어요. 소설은 어차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이라고 생각해요. 허구라고 해도 소설은 소설가의 맨몸이죠. 표정이라는 게 있어요.”

소설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만큼 그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은 웬만큼 다 읽은 상태다. 의뢰를 받으면 최근작까지 다 챙겨 읽으며 작업하는 날까지 오로지 그 작가만 생각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소설 속에서 작가의 이미지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황석영 씨의 이미지를 찾았느냐고 묻자 “말하지 않겠다”더니 “무거운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다”고 했다.

“《바리데기》부터 《개밥바라기별》까지 친근하게 웃고 계시지만 엄숙한 걸로 만들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표정은 무표정과 슬픈 표정입니다. 무표정할 때 많은 걸 보여주거든요.”

미리 작품을 읽고 이미지를 생각하는 이유를 “쉽게 작업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대상을 놓고 오래 생각하면 이미지가 생기고, 그 이미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 작업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미리 갖지 않으면 헤매고 계속 다시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가를 직접 만나면 자신이 작품을 보고 생각한 이미지와 실제 얼굴이 일치해 놀란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시인은 작품과 얼굴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인은 작업하기가 어려워요. 얼마 전 어떤 시인의 사진을 찍었는데 어떻게 해도 어색했어요. 결국 포커스를 흐리게 해서 실루엣만 찍었는데 그분도 좋아하시고 저도 만족했습니다.”


무심코 있을 때 나타나는 본연의 모습 촬영해

신경숙.
‘사연이 있는 얼굴’을 좋아한다는 그는 친분 있는 작가를 찍는 게 오히려 어려울 때도 있다고 한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으나 의외로 어려웠다고 한다. 평소 신경숙 씨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진에 담을 때는 이미지가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어느 순간 신경숙 씨가 조용히 장독대를 응시하고 있는 장면을 포착했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왔다.

오래 고심하지만 작가를 만나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표정이나 포즈에 대해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무심결에 찍는 스타일이다. 그러다가 한 번 “웃지 말아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정도다. 지금껏 견뎌온 그 사람의 삶이 얼굴에 나타나는 찰나가 있고, 그 순간을 포착하면 작업이 끝난다. 생각한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 그림이 나오면 불과 10컷 정도 찍고도 끝나지만 감이 잡히지 않으면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찍는다.

백다흠 씨는 사진은 찍을 때마다 어렵고 늘 렌즈가 무섭다고 했다.

(위로부터) 고은, 김훈, 김연수.
“사람들은 누구나 렌즈를 무서워해요.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어색해해요. 대화하다가 카메라가 끼어들면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돼요. 알게 모르게 카메라에 대해 불편한 진실을 공유하는 거죠. 카메라를 꺼내는 타이밍도 어렵고 찍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그는 사람을 만나면 처음부터 사진을 찍지 않는다. 차를 마시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시간을 쌓은 뒤에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은 피사체가 자신을 의식하지 않도록 귀신처럼 숨어서 찍는 거라고 했다.

“예전에 조명 기기를 갖고 다녔는데 요즘은 사용하지 않아요. 조명을 쓰면 사진의 퀄리티는 좋아지지만, 조명 시설을 세우면 갑자기 사람 사이에 가림막이 생겨요. 장비에 유연해져야 프로답지만 글을 쓰는 분들은 다른 메커니즘이 있어요.”

카메라는 5년 전에 구입한 걸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당시 제 월급이 150만 원이었는데 남대문에서 카메라와 렌즈를 600만 원 정도 주고 샀어요. 몇 달 동안 모은 현금을 일일이 세서 건네주고 산 거라 애착이 가요.”

이기호.
필름 카메라도 때때로 사용한다는 그는 흑백을 고집한다. 이유는 카메라가 받아들이는 컬러감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카메라를 한 번 거치면 제 색깔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그럴바에는 아예 무채색을 담고 공간감만 남게 하자는 것이 그의 사진 수칙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찍었으나 자신을 찾는 사람이 생기면서 무게감이 많이 생겼다는 그는 자신의 사진이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아울러 작가가 당시 작품의 느낌을 반추하는 데 자신의 사진이 도움이 되면 영광이겠다고 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따뜻한 면을 갖고 있고, 아무리 날카로워도 그 이면에 보드라운 속살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초상작업을 하려는 이유는 그런 사람의 심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초상 사진을 모아 사진집을 내고 싶다는 그는 요즘 우연히 깨닫게 된 아파트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누가 직업을 물으면 “사진찍어요”라고 답해야 할 것 같다는 그는 더 따뜻한 사진을 꿈꾸고 있다.

사진 : 이창주
  • 201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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