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스타일 담은 책과 쇼룸 선보인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서정희

주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최고의 직업이에요

열아홉의 나이에 TV 광고모델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대중의 시선 밖에 놓인 적이 없는 서정희. 다섯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까다롭고 고집스러운 살림살이로 집안일을 ‘예술의 경지’로 이끈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그는 최근 순도 100% 서정희 스타일의 책을 만들고 싶어 직접 출판 등록을 해 책을 내고, 자신의 컬렉션을 소개하는 쇼룸을 열었다. 고집스럽고 까다롭고 불친절한 서정희 쇼룸은 예약제라는 폐쇄적인 운영 방식에도 열성 팬들의 문의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전형적인 ‘길거리 캐스팅’으로 TV 광고모델이 되었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데뷔한 그의 첫 광고 촬영지는 제주도. ‘무인도에서 온 순수한 섬 아가씨’ 같던 그는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에서 서세원 씨를 만났다. 유명 연예인이었던 서세원은 신인 모델인 그에게 너무나 밝고 따뜻한 키다리 아저씨 같았다.

“애 아빠가 어찌나 말을 잘하던지요. 이 사람하고 있으면 세상이 너무 따뜻하고 근사해 보이더라고요. 한번은 ‘나랑 결혼하면 당신은 발을 땅에 디딜 틈이 없을거야’라는 거예요. ‘왜요?’하고 물었더니 ‘가는 곳마다 근사한 레드 카펫이 깔려 있을 테니까.’ 이러는 거예요. 세상에, 지금이라면 그걸 믿겠냐고요(웃음).”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청춘남녀가 그러하듯 달콤한 거짓말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리기 전에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지금이야 남편이 “서정희는 나보다 더 좋은 콘텐츠”라고 말할 정도지만 당시엔 신인 모델과 인기 연예인의 결혼이었으니 대놓고 기자회견하고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어른이 되기 전에 결혼생활을 시작했으니 오죽했겠어요.”

말은 간단하지만 침묵하고 인내하고 산 세월이 30년이다. 작은 새처럼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외모와는 다르게 강단 있고 고집 있고 자아가 강한 그는 그야말로 촌부의 살림을 성찬으로 바꾸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책에서도 썼듯 누구에게나 ‘경제’가 골칫덩어리이긴 하죠. 하지만 스타일이나 취향은 돈만 있다고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으로 느꼈어요. 침대 들여놓을 자리도 없는 단칸방에서 시작해 제 살림에 맞는 스타일을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지금의 ‘서정희 스타일’이라는 게 생긴 거죠.”

연예인이 내는 책은 다분히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홍보 수단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적어도 서정희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출판업계의 신화적 존재다.


“《서정희의 자연주의 살림법》이라는 책을 쓸 때였어요. 출판사의 기획과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 많은 의견을 나누었어요. 책을 팔아야 할 상품이라고 여기기보다 제 작품이라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첫 책을 낸 후 지금까지 네 권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를 만큼 서정희의 책은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인기의 비결은 삶과 밀착된 진정성에 있었을 것이고, 그만큼 그녀와 가족의 삶이 낱낱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늘 온 가족이 함께 만들다시피 했죠. 내조니 외조니 구분이 없었어요. 식구 중 누가 일을 하면 다 같이 도와주자는 주의였죠. 지금에서야 아이들이 ‘어릴 때는 스트레스 참 많았다’고 고백하더라고요(웃음).”

그럼에도 다음 책을 구상하고 기획하고 작업하는 과정이 그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클래식이면 클래식, 책이면 책, 그림이면 그림 무조건 꽂히면 온갖 관련 자료를 찾아 자신만의 수업 노트를 만드는 것이 서정희의 방식이다. 잡지든 어려운 철학서적이든 라디오든 TV든 영화든 가리지 않았고 눈과 귀, 가슴에 꽂히는 구절만 있으면 그렇게 노트에 필사하며 자신만의 커리큘럼으로 엮어갔다.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만든 타샤 튜더 할머니의 책은 읽을 때마다 구석구석 눈에 콕콕 박히는 구절들이 있었어요.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데…’라는 구절처럼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들과 남편 때문에 애태우는 것이 저라고 뭐 달랐겠어요? 행복과 불행은 종이 뒤집기라는 말처럼 사는 재미를 더 파고들다 보니 요즘 사람들이 얘기하는 ‘콘텐츠’가 되더라고요.”

스스로 학력 콤플렉스가 있다고 밝힐 정도로 배움에 욕심이 많았던 서정희는 살림의 기능적이고도 독창적인 방식을 스스로 체득하면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왔다. 문자로 익힌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고 가슴으로 느낀 것이었기에 그의 책은 연예인 저서로는 드물게 늘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랐다.

“다들 알다시피 저희 가정에도 어려운 일이 많았잖아요. 저는 그때마다 새로운 책을 하나씩 만들었더라고요. 그것이 누구에게 나 자신을 내보이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너무 힘들어서 못했을 거예요. 우선 나와 내 가족의 치유와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이기에 저와 같은 고난과 시련을 겪는 분들의 동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새벽 4시 30분쯤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빨래를 삶는 것. 새하얗게 끓어오르는 비누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차면 그의 기도가 시작된다. 사실 2004년에 큰 수술을 하고 나서는 집안일에도 기운이 달린다. 그럴 때는 요령 있게 방법을 바꿔 집안일을 한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집안일이든 바깥일이든 먼저 자기 생각이 서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생각하자는 주의다.

“요즘 가사도 노동이라고 하잖아요. 가사 노동을 비용으로 계산하자는 말도 있고. 글쎄요, 가사보다는 살림이라는 말이 좋고, 살림살이를 고작 ‘돈’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싶어요. 무조건 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청소나 빨래, 아이들 교육, 남편과의 관계 이런 것들에도 현명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생기지요. 쉽게 펼쳐 든 잡지책에서도 요긴한 힌트를 얻을 수 있고요. 살림살이를 우습게 보면 촌부가 되고, 귀하게 여기면 살림을 기획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올 2월 출간한 《She is at home》은 서정희 라이프스타일의 관점을 다룬 책이다. 집안일에 대한 수많은 정보로 굴지의 브랜드가 된 미국의 마사 스튜어트, 옛날 방식의 삶으로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여준 타샤 튜더 등은 ‘주부도 전문가’라는 것을 입증했다. 서정희는 전문가로서 ‘살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메시지를 전달해왔고, 이제는 그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누구보다 고집스럽고 까다롭게 지켜온 서정희 스타일은 그 소재나 양식, 컬러가 바뀌어도 언제나 ‘서정희’라는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다.

“세련된 방식으로 나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책을 만들었어요. 언제나 모든 일을 집에서 하고, 새로운 발상도 집에서 시작된다는 뜻으로 아들이 지어준 제목 ‘she is at home’도 참 맘에 들어요. 정말 나다운, ‘서정희다운 책’을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책을 내면서 고민했던 부분은 그가 택한 제품이나 컬렉션을 그대로 따르는 독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이나 예술품은 모두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나 제 아이들이 직접 그린 것들이고요, 제 취향에 맞는 것을 찾기 위해 몇 년을 발품 팔아 건진 것도 많아요. 그런데 책을 내고 나면 그런 과정과 방식보다는 제가 가진 물건의 브랜드나 가격에 더 관심이 쏠리더군요. 물론 어떤 관심도 감사한 일이지만 살림은 브랜드나 가격이 아닌 개개인의 독창적인 생각과 취향에서 나와야 빛난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났어요.”

몇몇 사람들은 그전에 나온 책과 비교해 실용적인 정보가 적고, 파격적인 편집스타일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 방법을 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쇼룸과 서정희닷컴 사이트를 통해 찾아오는 독자에게만 알리는 독특한 홍보 방식도 낯설어 한다. 그는 화려한 출판기념회 대신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쇼룸을 열었다. 단 쇼룸을 방문하려면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제 살림으로 만든 숨겨진 보물창고 같은 곳이에요. 앞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셀렉트해 소개하고, 오프라인 숍도 새롭게 오픈할 예정이고요. 공간과 예술이 어우러져 숍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는 곳으로 가꾸어가고 싶어요. 5월 7~13일에는 ‘까사리빙과 함께하는 결식아동돕기’ 행사에 참가해 많은 분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좀 더 진보적이고 개인적인 스타일로 방향을 튼 서정희. 가까이는 파리의 메종 오브제 전시와 지인의 공간 스타일링 작업들이 기다리고 있다. 최고의 친구인 딸과 함께 벌써 새로운 책을 기획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사진 : 서정희닷컴(www.suhjunghee.com)
  • 201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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