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오상 삼덕스포츠 대표

밴쿠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스케이트화 만든 장인

지난 2월 21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000m 결승전. 1500m에 이어 2관왕을 거머쥔 이정수 선수의 스케이트에는 ‘best feel’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1만m에서 금메달을 건 이승훈 선수, 1000m 은메달리스트 이호석 선수도 같은 스케이트 부츠를 신고 있었다. 중국의 여자 국가대표 조우 양 선수도 이 스케이트를 신고 금메달을 땄다. 이 스케이트는 ‘Made in Korea’다. 41년째 외길을 걸어온 삼덕스포츠 유오상 대표의 장인정신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스케이트 장인을 만나러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삼덕스포츠 본사를 찾았다.
오전 9시, 삼덕스포츠 작업실 문을 열자 각종 화학약품 냄새가 훅 들어온다. 직원 5명의 손길이 분주하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동계올림픽을 중계하는 라디오 채널을 틀어놓고 작업하는 이곳은 들뜬 분위기였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스케이트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유오상 대표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아 보였다.

“어휴~ 요즘은 너무 좋아서 잠도 잘 안 와요. 우리 선수들 보셨죠? 우리가 만든 스케이트를 신고 뛰는 선수들을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돼요. 그런데 말이죠. 우리 스케이트를 신은 외국 선수와 우리 것을 신지 않은 한국 선수가 겨룰 때는 괴로워요.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난감하거든요. 허허허. 중국의 조우 양 선수가 경기할 때도 그랬어요. 거기 앉으세요. 안현수, 김동성, 이정수, 이승훈, 진선유 선수도 그 자리에 앉았었어요.”

우리나라 국가대표 스케이트 선수의 70%가 삼덕스포츠의 ‘best feel’을 신는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이정수, 이승훈, 이호석, 김민정, 조해리 선수가 이 스케이트를 신고 메달을 땄다. 김동성, 진선유, 안현수 선수도 이 스케이트를 신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 국가대표 선수들도 많이 신는다. 이번 동계올림픽의 메달리스트 중 미국의 J.R. 셀스키, 조던 말론, 앨리슨 베이버,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 선수 등이 대표적이다.

삼덕스포츠에서 만든 스케이트를 신은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내자, 각국에서 주문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들 수 있는 맞춤형 스케이트는 한 달에 최대 여덟 켤레에 불과하다.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발 모양을 떠서 스케이트로 제작하기까지 보통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걸리는데, 지금 예약하면 외국 선수는 2년, 우리나라 선수는 6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 유 대표는 2월 말 중국 선수들의 발 모양을 뜨러 중국에 다녀왔고, 3월 초에는 미국 선수들의 발을 뜨러 미국에 간다고 한다.

김동성 선수와. 유오상 대표가 만든 첫 맞춤형 스케이트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김동성 선수(오른쪽)를 위한 것이었다.
“가면 호텔방에 선수들이 모여 있어요. 비행기값, 체제비 등을 다 그쪽에서 부담하죠. 미국 체제비도 자기네가 부담하겠다고 했는데, 김동성 선수가 이번에는 꼭 자신의 집에서 묵어야 한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어요. 사흘 동안 김동성 선수 집에서 묵을 예정인데, 하루는 일하고, 나머지 이틀은 김동성 선수가 자신의 차로 관광시켜주겠대요.”

김동성 선수는 현재 미국 LA에서 스케이트 코치로 활동 중이다. 김동성 선수와 유오상 대표가 인연을 맺은 건 1990년대 중반, 김동성 선수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유 대표는 직원을 두지 않고 혼자서 수제 스케이트를 만들고 있었다. 맞춤형 스케이트 기술이 없던 때라 기성화만 만들었다. 솜씨 좋기로 소문난 그에게 수선 의뢰가 많이 들어왔는데, 그중에는 김동성 선수의 스케이트도 있었다.

수선에 한계를 느낀 그는 직접 맞춤형 스케이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유명 브랜드의 맞춤형 스케이트를 사다 해체해보기도 했다. 1년여 연구 끝에 김동성 선수에게 “동성아, 아저씨가 네 발에 꼭 맞는 몰드 스케이트를 만들어주면 신을 거야?” 하고 물었다. 김동성 선수는 그러겠다고 했다. 유오상 대표의 첫 작품인 김동성 스케이트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의 스케이트를 신은 김동성 선수는 날개 단 듯 속도가 빨라졌고, 각종 대회의 메달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일이 천직이구나’ 하고 느꼈다 한다.

그의 사무실에는 지금도 김동성 선수가 신던 맞춤형 스케이트가 다섯 켤레 있다. 김동성 선수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새 것과 바꾸었다 한다. 그의 맞춤형 스케이트를 신은 선수마다 기량이 눈에 띄게 향상되면서 삼덕 스케이트는 유명해 졌고, 숙련된 장인을 하나 둘 채용하기 시작했다.

월계동에 있는 삼덕스포츠 작업실.

김동성 선수 스케이트화 만들어주면서 맞춤형 스케이트 제작

스케이트 선수들의 부츠는 돌처럼 딱딱하다. 0.5mm의 오차가 나도 통증이 생기고 자세가 흐트러진다. 당연히 좋은 기록이 나올 수 없다. 0.001초로 승부가 갈리는 스케이팅 세계에서 발과 일체화 된 스케이트를 신는 것은 스피드를 내는 데 필수다. 발에 꼭 맞으면서도 너무 조이지 않아야 한다. 선수마다, 오른발 왼발이 크기도 생김새도 다 다르기 때문에 미세한 부분까지 잘 맞춰야 한다.

삼덕스포츠의 스케이트는 전과정이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맞춤형 스케이트를 만들 때는 선수의 발부터 발목까지 모양을 떠서 석고 모형으로 제작한 후 이 석고에 스케이트화의 골격을 입히는데, 이 과정은 유 대표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작업을 할 때는 그만의 원칙이 있다. 첫째, 밤 8시 이후에 한다. 직원들이 퇴근한 후에야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전화기 전원을 끄고, 화장실도 가지 않는다. 도중에 멈추면 맥이 끊기기 때문이다. 셋째, 숨을 거칠게 쉬지 않는다. 한 호흡으로 획을 긋는 서예가처럼, 한 호흡으로 하지 않으면 오차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손의 감각, 느낌이 가장 중요해요. 컴퓨터도 제 손의 정교함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이 스케이트를 신고 좋은 기록을 낸 선수들. 사진 위는 왼쪽부터 안현수, 송경택, 이호석 선수. 사진 아래는 이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중국의 조우 양 선수.
그가 신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41년 전, 그의 나이 10대 후반 때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맏아들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그는 생계 수단으로 수제화 전문 공장에 들어가 견습공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손재주 좋기로 소문난 그에게 수제화 제작은 적성에 딱 맞았다. 아저씨들이 퇴근한 후에도 혼자 남아 자투리 재료로 이것저것 만들어보았다. 재미 삼아 손가락 크기로 하이힐을 만든적이 있는데, 워낙 정교하고 예뻐 보는 사람마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성실하고 재주 좋은 그는 가는 곳마다 인정을 받았다. 200여 명을 거느린 신발 공장의 공장장을 맡기도 했다. 월급 많고, 대우도 좋았지만, “직접 내 손으로 만들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한다. 회사의 부도로 직장을 잃은 그는 혼자 일하는 수제화 가게를 열었다. 1994년, 간판도 없이 OEM으로 제작해주는 일이었다. 김동성 선수의 맞춤형 스케이트를 제작하면서 점점 일이 늘었고, 2002년에는 ‘삼덕스포츠’ 간판을 내걸고 자신의 브랜드를 단 스케이트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삼덕스포츠’의 ‘삼덕(三德)’은 사람・기술・신용 세 가지를 뜻하는 말로, 한학자인 지인이 지어주었다 한다.

삼덕스포츠에서는 한 달에 맞춤형 스케이트 여덟 켤레, 기성화 스케이트 30켤레 정도를 제작한다. 모두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만든다. 맞춤형 스케이트는 한 켤레에 200만 원, 기성화 스케이트는 100만 원 정도.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이곳의 환경은 열악하다.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작업해도 석고가루, 탄소섬유를 비롯, 톨루엔(고무 접착제) 등의 화학약품을 접하기 때문에 두통이 잦고, 구부리고 일하기 때문에 허리 디스크와 목 디스크로 고통받는다. 유 대표가 가장 씁쓸하게 생각하는 것은 후계자가 없다는 것. 일을 배우겠다고 오는 젊은이들이 종종 있지만 얼마 못 가서 그만둔다고 한다.

“손기술이야말로 귀한 재주지요.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해도 명품은 다 손으로 만들잖아요. 손기술을 배우겠다는 끈기 있는 젊은이가 없어요. 우리가 마지막 세대가 될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우스갯 소리로 ‘유 대표님 손 떨리기 전에 만들어둬야겠다’면서 예약하는 사람이 많죠. 배운 게 많지 않은 제가 어떻게 금메달리스트들의 은인으로 대접받겠어요? 다 즐기면서 자부심을 갖고 일했기 때문이에요. 돈을 좇으면 돈을 못 벌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즐기면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와 명예가 따르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아주 행복해요.”

사진 : 정익환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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