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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심장은 읽지 않아도 두근거리는 시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33) 채호기 〈당신의 심장〉

돌은

눈으로
읽을 수 없는
당신
가슴에 빠뜨린

돌에 새긴
점자를 더듬어 읽어도
내용을 알 수 없는

손바닥에 감싸인
당신의
심장
읽지 않아도
두근거리는



‘수련’의 시인은 이제 ‘물과 돌’의 시인으로 돌아온다. 수련과 사랑에 빠졌던 시인은 이제 물과 돌에 마음을 준다. 사랑하는 당신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없는 당신을 어루만지려면 다른 무엇의 몸을 빌려야 한다. 지난 시집에서는 물과 햇빛이 빚어 만든 수련을 빌려서 당신을 끌어안고 애무했었다.

“물과 빛은 서로를 섞지 않는데, / 푸른 물 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햇빛과 물은 무르익은 두 몸으로 끌어안고 품으며 성애(性愛)를 나누데, 그 결과로 수련을 잉태한다. 여름 새벽에 피어나는 수련은 사랑의 대상이다.

“그 여름날, 내가 너를 처음 본 순간 / 깨달았어야 했다, 너를 사랑하기 전에. / 나는 흙을 딛고 서 있고 / 수련, 너는 물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을”(〈수련〉).

한 권의 시집이 온통 구애의 몸짓으로 가득 차 있다. 이번 시집 《손가락이 뜨겁다》에서 사랑의 수태를 위해 시인은 물과 돌의 몸을 빌린다. “물은 온 몸이 입술”이고, “돌은 입술 속의 이빨”이다.(〈물과 돌〉) 당신은 “물” 속에 있거나, “물”로 된 사람이다. 물 아래에 “돌”이 있는데, 그것은 당신 몸 안에 있는 딱딱한 것들, 뼈나 심장의 표상이다.

“당신의 놀라운 물에 손을 / 집어넣고 살갗 아래 딱딱한 / 돌들을 만져보았습니다.”(〈물결〉) 나의 손은 당신을 애무하는 언어다. 이때 언어는 신체의 일부가 된다. 당신을 어루만질 때 내 언어로 된 손가락들도 뜨겁게 달아오른다.

〈당신의 심장〉에서 돌은 부동성과 침묵으로 유동하는 것, 수다스러운 것들을 수치스럽게 만든다. 돌은 말이 없다. 돌 앞에 설 때 소통의 간절한 욕구가 불가해한 독해를 가로지른다. 돌에게서 어떤 계시를 듣는 일은 지난한 일이다. 시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돌은 / 시”라고 말한다. 또 “눈으로 / 읽을 수 없는 / 당신”이다. 돌/시/당신은 하나다. 청각과 시각이 가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곳에 자리한 그것은 당신의 살 속에 숨은 “심장”이다. 들을 수 없는 것의 말을 들으려 하고, 볼 수 없는 것을 보려 한다는 점에서 가망 없는 꿈을 꾸는 것이다. 겨우 “점자를 더듬어 읽”듯 겨우 당신을 읽을 수밖에 없다. 이 곤경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실체 없이, 부재하는 존재인 까닭이다. “사랑한다 당신을. / 당신을 껴안는다. / 당신은 없다.”(〈당신〉) 없는 당신은 도처에 당신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 당신은 무수한 기미(幾微)들로 도처에 편재한다. 이를테면 “키 큰 나무에 작은 잎들이 반짝일 때 / 당신의 숨소리가 들렸다고 하더군요.”(〈그녀 1〉)라는 구절은 그것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당신은 언제나 부재로서만, 혹은 만물에 시시각각으로 나타나는 어떤 기미들로만 현존을 나타낸다.

“나”는 손을 뻗어 당신을 만져보는 것인데, 그때 “동글동글하고 말랑말랑한” 촉감을 부여하는 것은 나의 언어다. 나는 언어로 된 손을 뻗어 당신을 어루만진다. 당신의 살은 물살이다. 물속에 그 손을 집어넣어 구체적 촉감으로 당신의 부재를 만진다.(〈당신〉) 당신의 현존은 없으니까, 나는 물에 손을 집어넣고 물의 부드러운 감촉에 의지해 당신의 살을 느낀다. “물의 살에 손을 집어넣을 때 /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 일렁이는 물결”(〈강물의 심장〉). 당신은 없으니까 아무런 감촉도 없으니 물의 자명한 감촉을 빌려 당신을 느껴보려 하는 것이다. 그 물 아래 돌을 손에 쥐며 당신의 심장을 느낀다. 당신은 없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멀리 있고, 멀리 있기 때문에 당신을 만질 수가 없을 뿐이다.

사랑을 숨길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심장처럼 쉼 없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곧 당신이라는 시를 완성하는 행위다. 당신의 심장은 돌이고, 그 돌은 항상 부동이며 과묵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그 심장의 말을 당신은 들으라고 한다. 나는 그 돌의 말을 받아 적어야 한다. 당신은 “읽지 않아도 / 두근거리는 / 시”다. 당신이라는 시는 눈으로 읽을 수도 없고, 점자를 더듬어 읽어도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돌은 당신의 침묵이 굳어 만든 언어고, 물은 보이지 않는 당신의 영혼이 세상 바깥으로 흘려보내는 피다. 당신이 없어도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돌과 물에서도 당신의 현존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채호기(1957 ~ )는 과묵한 시인이다. 말할 때에도 그이는 조용조용 말한다. 나는 그이가 어느 자리에서도 큰 소리 내는 걸 보지 못했다. 1988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2002년에는 시집 《수련》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18년 동안이나 근무했던 문학과지성사를 대표 이사직을 마지막으로 그만두고 얼마 전 모교인 서울예술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이의 인격에는 모난 데가 없어 보인다. 그랬으니 우리나라 문학의 한 축인 출판사의 대표 이사직을 별 탈 없이 수행했을 터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 시인이란 말하지 못하는 만물의 말들을 받아 적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물의 살에 손을 집어넣을 때 /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 일렁이는 물결, / 일그러지는 글자들 / 아직도 가라앉아 있는 돌들 / 투명한 당신의 가슴 안에 / 손을 집어넣어 물고기처럼 퍼덕대는 / 마음을 거머쥐듯 / 강물에서 돌을 따 낼 것이다”(〈강물의 심장〉)라고 노래할 때 물결은 물의 ‘살’이 되고, 그 아래 가라앉아 있는 돌은 강물의 심장이 된다. 시인은 강물의 심장인 그 돌을 쥐고 산 물고기처럼 퍼덕대는 강물의 마음을 읽는다. 그이는 수련의 말을 받아 적고, 물의 말을 받아 적고, 돌의 말을 받아 적는다. “꽃에 속삭이면 꽃이 환해지는 말. / 꽃의 그 말을 들으면 나도 환해질까?”(〈꽃의 말〉) 물의 말을 받아 적고, 꽃의 말을 받아 적는 행위는 속삭이고 쓰다듬고 부비는 사랑의 행위다.

사진 : 정익환
글쓴이 장석주님은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같은 해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이 입선되어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길을 함께 걷고 있다. 그동안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붉디붉은 호랑이》 《절벽》 등의 시집을 내고, 《20세기 한국문학의 모험》(전 5권) 등 50여 권의 책을 냈다.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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