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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남편과 디자이너 아내

세계 최초로 꽃상감 가구 개발한 이홍복・최공덕 씨

큐레이터와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부부가 우리 전통가구의 세계화를 위해 일을 벌였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호암미술관 큐레이터, 갤러리 삼성플라자 관장을 지낸 이홍복(56) 씨와 미국에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활약했던 최공덕(50) 씨 부부. ‘우리 전통가구를 현대화해 세계인을 매혹시킬 수는 없을까?’라는 의욕으로 시작된 이들의 작업은 10년 만인 지난해 말에야 꽃을 피웠다. 가구에 생화를 상감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가구회사 ‘디자인 꽃피네’도 만들었다. 이들이 처음 선보인 ‘꽃상감 모자이크’ 기법은 화장대, 식탁, 침대, 소반 등 원목가구에 국화문이나 인화문 등 한국의 전통문양을 음각한 후 말린 조팝나무 꽃을 넣고 도장하는 방법이다. 가구에 꽃무늬를 그려 넣거나 새겨 넣는 것은 흔하지만, 생화를 상감하기는 처음이다.

이홍복 씨는 1980년 독일로 건너가 11년간 보쿰대학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후 <장욱진 나무전> <오수환 근작전> <한국 금속공예가 11전> 등 인기 전시를 주도한 큐레이터. 미술사를 전공한 이홍복 씨가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면, 디자이너인 아내 최공덕 씨는 미적 감각을 살려 디자인을 맡았다. 최공덕 씨는 드레스 디자인에 압화를 자주 활용하면서 일찌감치 ‘꽃’에 심취해 있었다. 이 압화를 전통가구와 접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남편과 나누면서 ‘꽃피네’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상감은 도자기와 나전칠기 등 전통공예에서 활용하던 방법인데, ‘꽃상감 기법’은 문양을 새긴 후 그 위에 말린 꽃을 붙이는 게 조각과 회화의 요소가 함께 구현된다는 점에서 달라요. 신인상주의 화가 쇠라의 점묘법처럼 꽃으로 점을 찍듯이 형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이홍복 씨의 말에 최공덕 씨는 “꽃은 약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강한 존재예요. 바람에 몸을 맡기는 여릿여릿한 모습이지만, 강렬하게 사람 마음을 끕니다. 꽃은 굉장히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전 늘 말합니다.”

가구에 들어가는 압화는 야생 조팝꽃을 판타지아라는 특수 물질에 담가 처리한 뒤 특수용지에서 15일간 말리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목재 표면에 국화무늬를 조각한 후, 그 위에 이 압화를 올리는데, 그 위에 여러 번 도장을 하면 꽃이 가구에 영원히 심어진다.

“2000년 개발을 시작할 때만 해도 넉넉잡아 5년이면 끝날 수 있는 작업이라 생각했는데, 그리 만만하지 않았어요.”

개발하는 데 10년이 걸렸으니 돈도 많이 들고 어려움도 많지 않았겠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는 “펼쳐놓은 꽃잎이 혹 젖을까 눈물도 흘리지 못 했다”고 한다.

“재료로 쓰는 조팝꽃은 2월 말에서 4월 말까지 채취를 끝내야 해요. 채취 시기가 조금만 늦거나 빨라도 안 되지요. 조팝꽃을 특수물질에 담가 색색이 물을 들이는데, 그때 딴 꽃이라야 염색이 돼요. 네 시간 정도 지나면 꽃잎이 물을 빨아들여 새로운 색의 옷을 입지요. 햇볕이 잘 드는 곳, 기름진 땅에서 자란 야생 조팝꽃은 작업이 잘 되는데, 신기하게도 재배한 꽃은 잘 안 돼요.”


‘한국 전통공예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명품 만들어보자’는 데 의기 투합

이 일은 전통공예 장인인 무형문화재 소목장 권우범 씨와 도장 명인 전창덕 씨가 힘을 합해 목 가구제작과 도장을 맡았다. 미술사가와 디자이너, 장인의 만남인 셈. 혼자 걷는 길은 꿈에 지나지 않지만, 여럿이 함께 걸으면 역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들이 함께 꾼 꿈은 ‘우리 전통을 현대화하여 한국적인 명품을 만들어보자’였다.

“권우범 선생님께 처음 이 계획을 말씀드렸을 때 ‘정말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설레어 잠이 안 온다’고 하시더군요. 예술의 대중화가 우리 화두 중 하나입니다. 그림 값은 오를 만큼 올랐는데, 공예는 저평가되어 있습니다. 우리 공예의 아름다움을 현대인의 일상으로 가져오자는 데 의기투합한 거지요.”

이들은 현재 식탁, 화장대, 문갑, 소반, 좌경, 보석함 등 다양한 용도와 종류의 제품을 선보였다. 최고의 원목을 사용하고, 야생 조팝나무 꽃을 수작업으로 가구에 압착시키는 등 100% 수작업이라 대량 생산이 불가능한 일. 그래서 한정생산이나 주문제작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우리 디자인의 미래가 있는 것 같아요. 디자인 모티프는 보자기와 조각보, 태평고 등 전통에서 가져왔어요. 색깔 역시 우리의 전통색인 오방색을 바탕으로 했지요.”

최공덕 씨는 전통에 기반을 두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감각을 살려 꽃의 느낌을 살린 의자 다리, 장식용으로 많이 쓰는 러너를 올려놓은 듯한 식탁 등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과 장식적인 요소를 살짝 가미했다. 오랫동안 큐레이터 생활을 했던 남편은 내놓는 작품마다 이름을 붙이고, 스토리를 만들었다. 화장대는 ‘왕비의 얼굴’, 식탁은 ‘줄줄이꽃’, 침대는 ‘정적’, 꽃판은 ‘그림자꽃’, 장식장은 ‘꽃피네’, CD장은 ‘옷고름’, 팔각 다과상은 ‘조선여인’, 꽃이 쏟아지는 듯한 느낌의 식탁은 ‘꽃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나라 가구는 스토리가 없잖아요? 우리는 제품 하나하나마다 스토리를 만들었지요. 옛 선비들이 왕에게 상소를 올릴 때 먹물을 갈아 글을 쓰듯, 당신도 꽃물을 갈아 글을 쓰듯 스토리를 만들어 달라고 남편한테 이야기했어요. 하하.”

꽃상감 가구를 본격적으로 제품화하기 전인 2002년부터 이들은 삼성플라자, 일본대사관, 아침편지문화재단 등에서 꽃상감 소반작품 등을 전시해왔다. 이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의 왕실, 특급호텔 등 세계의 상류층을 마케팅 타깃으로 삼아 이 제품을 ‘세계적인 명품’으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독일에서 유학했던 남편은 유럽, 미국에서 공부하고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활동한 아내는 미국 상황에 밝아 해외시장 개척에 자신 있다고 말한다.


“뉴욕의 맨해튼 1가에서 137가까지는 눈을 감아도 훤히 떠오를 정도예요. 미국에서 20여 년 생활했으니 미국 문화나 미국 사람의 취향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그들은 동양적인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지요. 실제 꽃을 가구에 넣었다는 것에 많이 놀라더군요. 적절한 시점에 가구가 출시된 것 같아요. 그러나 돈이 된다고 마구 달리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소량을 내놓더라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할 겁니다.”

꽃은 피고 진다. 하지만 ‘디자인 꽃피네’ 가구 속 꽃은 지지 않는다. 반영구적이다. 이들 부부는 어쩌면 꽃의 영혼을 훔친 최초의 디자이너가 아닐까.

사진 : 신규철
촬영협조 : (주) 꽃피네
  • 201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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