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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에이즈 고아 돌보며 인생 2막 시작할 거예요

아프리카 말라위로 떠나는 성악가 김청자

◎ 후원계좌
SC제일은행 609-10-001225(예금주 김청자아프리카사랑)
국민은행 086601-04-082933(예금주 김청자아프리카사랑)
문의 : 031-335-0758, 011-713-0858, cjryakim@hotmail.com
지난해 12월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김청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의 마지막 무대가 펼쳐졌다. 15년 동안 몸담아온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떠나는 퇴임 기념 무대.

구스타프 말러의 3번 심포니 중 4악장의 알토 솔로를 노래한 그는 무대에서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데, 음악원 오케스트라의 정기 공연과 제 퇴임 시기가 맞아떨어져서 퇴임 기념 특별출연을 한 거예요. 마지막 무대를 오케스트라와 합창 모두 제자들이 함께해 더 뜻 깊은 공연이었어요.”


김청자 씨는 1970년대부터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해온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유학파 성악가. 1994년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그가 40년 음악 인생을 퇴임과 함께 정리하면서 아프리카 말라위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아프리카에서 목마르고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노년을 보내겠다는 계획이다.

“환갑을 맞을 때,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노후를 보낼까 고심했어요. 안식년을 신청해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를 여행했는데 아프리카에서 그곳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수녀님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정년퇴임을 하면 그곳에 가서 봉사하면서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결심했죠.”


그 후 아프리카에 오가기를 아홉 차례. 1년에 두 번씩 후원금을 모아서 전달했다. 그는 10년 전 지은 예쁜 전원주택도 팔려고 내놓았다. 아프리카 후원 기금으로 쓰기 위해서다.

“기금 마련을 위해 제가 만든 후원회가 있는데, 저부터 내놓고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말이 되잖아요. 후원금으로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짓고 우물을 파고 약품도 마련할 거예요. 제자들에게는 용돈 가운데 1만 원이라도 아껴서 후원하면 그들의 삶이 바뀐다고 말하곤 해요.”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헌신하게 된 것에 대해 그는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라고 한다.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열한 살 때 성당에서 영세를 받으면서 신앙과 음악을 함께 접했다.

“아일랜드 선교사들은 음악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성당 구석방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어요. 그 덕분에 성가대에서 반주하면서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죠.”


꿈 많고 욕심 많던 그는 아버지를 졸라 서울 외가에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가정 형편상 피아노나 성악 레슨을 받을 수 없던 그는 혼자 작곡 공부를 하며 음대 진학을 준비했다.

“한양대에 음대가 생기던 때였는데,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거예요. 작곡 부문으로 나갔는데, 애석하게도 1등 없는 2등을 했어요.”

대신 신부님 추천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 아우스부르크 레오폴드 모차르트 콘서바토리움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한 그는 꿈에 그리던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 진학했다. 1970년에는 스위스 베른 시립오페라단이 공연한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에 출연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유럽 무대에 선 성악가가 됐다. 1972년 귀국해 한국 무대에서 활약하던 그는 다시 유럽 무대로 향했다.


40년 음악 생활 모두 비워내고 순례의 길 떠날 때

“비행기 티켓 하나 들고 다시 독일로 건너가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동양인이 소화하기 까다로운 후기 낭만파 작품의 드라마틱 메조소프라노로 인정받으며 바쁘게 살았죠.”

1993년 새로 건립된 예술의전당에서 <김청자 초청 공연>을 했던 그는 다음해 한예종 교수로 초빙돼 다시 한국을 찾았다. 재능 많은 후학을 지도하고 싶던 평소 바람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남편과의 결별이라는 아픔도 겪었다.

“아들은 제가 한국에 데리고 들어왔는데, 재즈색소폰을 배우면서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잘 넘겼어요.”

3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한 아들 다니엘은 독일로 건너간 후 베를린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재즈와 클래식을 하는 친구들을 모아 오케스트라 ‘안드로메다’를 결성했다.

창의적이고 재능 많은 뮤지션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지난 2008년, 한국에서 초청연주회를 할 때 자신이 만든 곡을 부르는 엄마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늦어도 8월 전에는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아프리카에서 새 삶을 시작하겠다는 김청자 씨.

남아프리카공화국・잠비아・모잠비크・말라위 등 아프리카 곳곳을 다닌 후 말라위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것에 대해 “그곳 인구의 10%인 100만 명이 에이즈 고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원주민어로 ‘희망’이라는 뜻을 가진 천주교 공동체 ‘후수빌로’에 자원봉사자 겸 후원자로 합류해 9000명의 고아들을 돌볼 것이라고 한다.

“아프리카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마지막 대륙이에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영혼은 아름답지만, 큰 고통을 받고 있어요. 이제는 모두가 나서서 우리의 형제자매인 그들을 위로해줘야 해요. 배고픔과 굶주림, 목마름, 정서적 결핍을 해소해줘야 해요. 우리의 축복의 잔은 이미 넘쳐나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성악가로 활동하고 외국 생활을 한 것이 결국 지금의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차곡차곡 준비된 것이었다고 믿는다. 40년 음악 생활은 꽉 채웠으니 이제 다 비워내고 새로운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할 때다.

“다니엘은 전 재산인 집을 팔아 아프리카에 가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해요. ‘영적으로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게 되어 축하한대요. 재즈의 뿌리가 아프리카니, 아프리카는 자신에게도 매력적인 곳이라며 자신도 자주 방문해 아프리카 고아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해요.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음악가로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고, 엄마로서도 아들과 영적으로 교류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으니 다음 행로 역시 신이 주신 숙명대로 움직이면 될 거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 번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저를 위해 환영의 노래를 불러줬어요. 눈을 감고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나더군요. 죽을 때도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곳에 묻히고 싶어요. 제 육체의 고향은 한국이었고 정신의 고향은 독일이었지만 영혼의 고향은 아프리카니까요.”

사진 : 신규철
  • 201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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