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만든 백승화 감독

우리 밴드 이야기를 날것 그대로 보여줬어요

홍대 클럽가(街)와 인천의 다운타운에서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펑크록 밴드 ‘타바코쥬스’의 드럼주자,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카투니스트,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뮤직비디오 콘셉트를 디자인해 주는 뮤직비디오 기획자, 극영화의 스토리보드 작가까지. 그의 존재감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여러 곳이지만 그의 재능이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은 그가 감독한 단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였다.
무척이나 낯선 이름 백승화(28).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라는 단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지만, 2009년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 몰려든 팬들과 비평가들은 그를 선택했다. 펑크록 밴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영화제 상영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그해 출품된 독립영화 중 최고 작품에 수여되는 ‘후지필름 이터너 상’을 거머쥐었다. 시청 인근 성공회 성당에서 만난 백승화 감독. 곱슬곱슬한 머리, 호리호리한 몸매에 착 달라붙은 스키니 진, 헐렁한 헝겊 캔버스화까지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록밴드 멤버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회색분자 같은 거 있잖아요.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저를 영화감독이라 부르기 시작했지만 사실 그런 것 같지 않을 때도 있고.”

담배를 많이 피우면 나오는 가래침을 뜻하는 ‘타바코쥬스’의 드러머답게 음악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제 드럼은 정식 교육을 받아서 만들어 내는 소리가 아니에요. 한국이나 외국 유명 드러머들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따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거죠. 그 때문인지 ‘문샤이너스’의 손경호 선배 같은 음악 색깔을 좋아해요. 록인데 록 같지 않은…. 서정적인 로큰롤이라고 할까요. 펑크나 록은 굉장히 복잡하고 격렬한데, 이런 음악을 간결한 시처럼 서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제 드럼이 추구하는 음악이지요.”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음악은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했다.

“음악이 좋고, 밴드가 즐겁지만 드러머로서 큰 욕심이 있는 건 아니에요. 죽을 때까지 드럼을 치고 싶다는 생각도, 저보다 드럼을 더 잘 치는 사람을 봤을 때 그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투지나 경쟁심 같은 것도 생기지 않는 것을 보면 지금 이대로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음악이 좋은 것 같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드럼의 대가(大家)가 되기를 꿈꾸지 않는다는 그, 하지만 밴드에 대한 애정만은 남달랐다.

“좋은 음악을 하는, 좋은 밴드의 멤버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요. 위대하다고 말하는 밴드들을 보면 멤버 각각의 능력이 위대하다기보다 조금은 부족한 듯한 멤버가 모여 완벽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걸 흔히 볼 수 있어요. 저도 그런 거죠. 제가 속한 밴드를 멋진 밴드로 만들고 싶은 겁니다.”

그는 한 밴드의 드럼 주자로서 한계도 이야기했다.

“사실 밴드 음악의 색깔은 드럼이 아니라 기타가 만드는 거지요. 기타가 ‘나 이런 음악을 할 거다’라고 하면 나머지 악기들은 거기에 맞추어 가야 합니다. 기타를 빼면 모두 조연인 셈이죠. 그래서 영화에 더 매력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어릴 때부터 영화 연출이 꿈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당시 소개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포스터.
자연스럽게 영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에게 영화감독은 어린 시절 꿈꾸던 로망이었다. 만화를 배우던 고등학교 때나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대학 시절에도 영화 연출에 더 끌렸단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사람을 100m 걷게 하려면 수십 장의 그림을 그려야 해요. 그런데 영화는 배우를 걷게 하기만 하면 되더군요. 밑도 끝도 없이 영화 연출을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든 것은 2006년 대학 졸업을 앞둔 마지막 방학 때, 한 영화사의 제작부에 입사하면서다.

“제작부에 들어가면 연출을 배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막내라는 이유로 촬영 현장에서 주차정리, 사람통제 같은 잡일만 했어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연출하는 것을 보며 조언도 듣고 싶었는데 얼굴도 못 봤어요. 그나마 현장에서 촬영이나 조명 팀의 보조 형들에게 기계작동이나 간단한 이론을 배울 수 있다는 데 위안을 삼았죠.”

그래서 상업영화 대신 작은 규모로 일하는 독립영화를 선택했다.

“서태수 감독과 함께 일할 수 있었죠. 조연출은 물론, 그림을 그렸었다는 이유로 스토리보드 작가와 미술까지 했어요. 감독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서 인물 설정, 스토리 전개, 편집 같은 영화 일을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었죠.”

그는 이때서야 영화적 재미를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서태수 감독과 함께 준비했던 영화는 끝내 개봉하지 못했다. 그 후 음악 판으로 돌아간 그는 간간히 영화 스토리보드 작가로 영화판과 인연을 이어 갔다. 그리고 2008년 4월, 비로소 그의 첫 영화인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시동이 걸렸다. 인천영상위원회의 다큐 영화 지원 사업에 응모한 그의 영화 기획안이 지원 영화로 선정된 것이다. 영화의 첫 콘셉트는 지금과 달랐다. 인천과 관련된 문화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였단다.

“제가 관심 있고 아는 영역이 밴드이다 보니 매일 인천의 밴드를 찾아다녔죠. 그러다 인천뿐 아니라 홍대 문화까지 담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우리 밴드 ‘타바코쥬스’가 되더라고요.”

2009 부천판타스틱 국제영화제 ‘후지필름 이터너 상’을 수상한 백승화 감독.
그는 자신의 영화를 ‘날것’이라고 표현했다. 인공적인 가미가 없다는 뜻이다.

“그냥 막 찍은 겁니다. 날것 그대로죠. 노래·공연·음악 만드는 거, 심지어 술 마시고 싸우고 화해하는 것까지 모두 날것 그대로입니다. 하나의 기록입니다. 미리 콘티나 시나리오를 만들지 않았어요. 마치 종군기자처럼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미친 듯이 찍었죠. 찍다보니 조금씩 영화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게 느껴지더군요.”

TV나 영화에서 흔히 그려지는 음악하는 사람들, 특히 인디 밴드들 이야기가 그의 눈엔 재미를 위해 과장된 드라마틱뿐이었단다. 그는 재미 대신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보통 그래요. 음악하는 ‘찌질한’ 사람들이 힘들게 살다가 어느 날 인생역전하거나, ‘그래도 난 꿈이 있어’ 같은 류의 이야기들이죠. 그게 아니라도 충분히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지고, 멋지고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릴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전 음악에 목매는 궁상맞은 캐릭터가 아닌, 삶에서 힘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담았어요. 자연스러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술 마시며 하는 걸러지지 않은 이야기, 공연과 음반 작업을 하며 동료들과 나누는 잡스러운 이야기까지. 그 속에서 멋을 찾아내는 작업을 한 게 바로 제 영화입니다.”

1년여 작업 끝에 탄생한 영화는 의외로 빨리 영화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한 공연장에서 20분짜리로 편집된 그의 영화를 단 한 차례 상영했다. 그 20분짜리 편집본을 본 부천판타스틱 국제영화제 관계자가 영화제에 그의 영화를 초청했다. 그리고 비평가와 기자들이 뽑는 ‘이터너 상’까지 받았다.

그는 “음악인이 만든 음악영화였기에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그는 큰 욕심이 없다고 했다. 이 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뀌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밀려드는 인터뷰와 그것을 거절하는 일들 모두가 한순간의 꿈같다는 생각도 든단다. 그는 ‘지금처럼만’이란 말이 좋단다. 그래서일까. 그 말처럼 영화든 음악이든 언제나 지금처럼 즐기면서 미칠 수 있는, 그런 작업을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사진 : 신규철
  • 2010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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