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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은 왜 ‘큰 가슴’에 열광하는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펴낸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

아내가 묻는다.
“ 당신, 나와 결혼한 것을 후회해?”
“ 응, 가끔…”이라고 대답하는 남편.
아내는 남편을 향해 “난, 만족하는 데…”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지막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 아주 가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으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명지대). 그는 요즘 기업들이 앞다투어 모셔 가는 섭외 1순위 명강사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대개 “우리 회사에 와서 강의했는데…”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다”는 반응이다. 내면에 사춘기적 욕망을 감추고 있는데다 나약하고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억눌리고, 때론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영웅 심리에 들뜨는 남자들. 그는 이 남자들의 내면을 문화심리학적으로 까발려 놓는다.

그런데 까발려진 남자들은 시원해한다. 자신들을 억누르던 형체 없는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기분을 느끼는 듯도 하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는 금기다. 결혼생활은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안 되고, 가족은 항상 행복해야 한다는 가족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김정운 교수는 해석한다. 출간되자 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의 인기는 금기를 까발린 책 제목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다. 책에 써 놓은 ‘자기소개’부터가 그렇다.

“‘김정운’은 팔뚝 굵은 아내가 차려 준 아침 밥상에 감사하며, 아침마다 그날 가지고 나갈 만년필 고르기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고, 거리의 망사 스타킹을 보면 가슴이 뛰어 낚시가게 그물만 봐도 흥분하고, 자동차 운전석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목 놓아 따라 부르며 주책없이 울기를 좋아하는 사십 끝줄의 대한민국 남자다. 귀가 얇다 못해 바람만 불어도 귓바퀴가 귓구멍을 덮을 정도고, 한번 폭발하면 대로변에서 삿대질도 일삼는 욱하는 성격이지만, 한번 마음에 담아 두면 며칠 밤잠 못 자며 고민하는 소심남이기도 하다.”

이 남자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의 아지트이자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 문에는 ‘여러가지문제연구소’라는 문패가 달려 있다. 유럽의 음악가처럼 옷을 입고, 슈베르트 머리처럼 파마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한 방에서 기자를 맞았다. 그가 앉는 책상 바로 뒤 책장에는 그의 책 《일본 열광》에도 실린, 일본 남자들의 판타지가 담긴 소녀 인형들이 조르르 놓여 있고, 애지중지하는 빈티지 오디오에서는 슈베르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30~40년 전 제작된 진공관 오디오로, “소리가 인공적이지 않고 거친 듯한 느낌이 좋다”고 한다.

그가 커피그라인더의 손잡이를 돌려 콜롬비아산 원두를 갈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찻잔에 따랐다. ‘그대의 등 뒤로 향기로운 바람이 지나갑니다. 그대는 바람, 나는 입술’ ‘가을엔 구태여 편지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내 입술이 편지입니다’라고 쓰인 도자기 잔이었다. 아들과 함께 도자기 체험장에 갔다 직접 써 넣은 글귀라고 한다. 사십 끝줄에 있는 남자의 사춘기적 감상이라니.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어디, 나이 든다고 마음도 바뀌던가.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솔직한 그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그가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것도 ‘솔직해지자’다.

“요즘 남성들은 코너에 몰린 기분일 겁니다. 여성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 압박감 속에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마초적인 모습을 보였다가는 바로 아웃(out)당하는 분위기 아닙니까? 그러면 난 뭐야? 내 세계는 뭐야? 하는 혼란과 회의에 휩싸이게 된 거죠.”

자신을 억압하면서까지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상을 좇았는데, 그게 거부당할 때의 황당함이란. 한국 남자들은 왜 그토록 큰 가슴, 마라톤, 폭탄주에 열광하는 걸까? 그는 이를 사는게 재미없고, 불안하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살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없는, 소통 부재로 불안한 한국 남자들은 큰 가슴을 그리워한다. 그 가슴에 머리를 처박고 울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년 남자들이 ‘김혜수의 가슴’에 열광하는 것은 소통 부재의 불안과 재미없는 삶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퇴행적 현상이라는 것. 마라톤에 열광하는 것은 이런 남자들이 온몸으로 느끼는 고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자학’이라고 풀이한다. 그가 보기에 폭탄주는 문제로부터 도피하려는 아주 심각한 퇴행 현상. 폭탄주를 마시고 눈앞이 흐릿해져야 타인과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 땅의 사내들에 대해 그는 “아주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눈앞이 흐릿해지도록 폭탄주를 마시는 것은 집단 자폐증 때문

어려서부터 감정억압 교육을 받아 온 남자들은 ‘감정정체’라는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는데, 이는 우울, 강박관념 같은 정서적 장애는 물론, 알레르기, 위장장애 등 신체적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그는 말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에 대한 적개심, 호전성과 같은 사회적 현상도 감정정체의 결과라는 것. 온갖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구호 뒤에 숨은 적개심, 분노, 공격성의 실체는 “재미없는 삶에 대한 불안”이라는 그는, 문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는 게 재미없는 남자들”이라고 말한다.

이 남자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해방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느낌에 솔직해지고 원하는 것을 찾아 재미있게 살라”고 권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정서적 경험이 깃든 구체적인 ‘장소’를 찾으라고 한다. 그는 ‘여러가지문제연구소’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행복하다.

“고2 때 내 방이 처음 생겼을 때 정말 기뻤어요.
혼자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에 빠져들었죠.
클래식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어요.”

독일 유학시절,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했던 마르틴 힐데브란트 닐손 교수 부부와.
그의 방에 들어서면 원목으로 만든 큼직한 탁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독일 유학시절,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따뜻하게 감싸 주던 지도교수 집의 식탁을 환기시키는 장소다. 종종 그 식탁에 초청돼 양고기 스테이크 같은 식사와 와인을 대접받고, 학문과 인생, 세계관에 관해 폭넓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도 “내 제자이자 친구인 정운에게”라며 편지를 보내오는 지도교수는 “너는 비즈니스를 하면 정말 잘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는 이 방에서 <겨울 나그네> 같은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는다. 얼음 위에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새기다 “내 눈물이 얼음을 녹이고, 이 녹은 물은 언젠가 내 사랑하는 연인이 사는 마을까지 흐르겠지…”라고 부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에 젖어 든다.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며 홀짝홀짝 와인도 마신다. 그렇게 정서적으로 촉촉해진 상태라야 글도 잘 써진다고 한다.

참,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반응은 어떨까? 아내는 “당신은 거짓말을 못 하는 솔직한 사람이라 신뢰할 수 있다”고 했단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팔뚝 굵은 아내’는 이제 팔뚝이 굵지 않다. 책이 나온 후 다이어트해서 8kg을 감량했기 때문이다.

사진 : 김선아
  • 2010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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