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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창극 보셨어요?

창극을 현대화, 옛 인기 되찾게 한 국립창극단 유영대 예술감독

우리의 전통 공연예술인 창극이 최근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공연 때마다 매진 사례를 이어가는가 하면, 평단과 관객의 반응도 뜨겁다. 현실과 동떨어진 교훈적인 내용, 지루한 레퍼토리, 젊은 관객의 외면 등으로 사멸 위기에 몰리던 몇 해 전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그 뒤에는 창극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변신을 시도한 유영대 예술감독이 있었다.

국립창극단이 ‘우리 시대의 창극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적벽〉을 선보인 지난 10월 29일, 무대가 마련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는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1500석 남짓한 객석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대학생에서부터 노년층, 외국인까지 관객의 폭도 넓었다. 창극 감상 경험이 일천한 기자로서는 그 열기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적벽〉은 판소리 〈적벽가〉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판소리 다섯 마당(심청가・춘향가・수궁가・흥보가・적벽가) 중 가장 호방하고 힘찬 남성적 소리로 알려져 있다. 줄거리는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 중 적벽대전에서 따왔지만 조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영웅담보다는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췄다. 연출은 ‘스타 연출가’로 꼽히는 이윤택이 맡았다.

잠시 후 웅장한 징 소리와 함께 막이 올랐다. 처음 보는 창극에 대한 기대감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화려한 무대에 한과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 국악 오케스트라의 장중한 음악과 젊은 국악인들의 소리가 한바탕 어우러진 1시간 50분은 창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11월 1일까지 4일간 이어진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유영대 예술감독은 흐뭇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창극이 이처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시대 흐름에 맞추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곧이어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며 창극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창극이란 소리꾼 한 사람이 부르던 판소리를 배역에 따라 나눠 부르고 드라마적인 장치를 추가하면서 만들어진 장르입니다. 갑오개혁 이후 이인직이 국립극장 협률사(協律社)에서 처음으로 판소리를 무대화하며 지금의 창극으로 발전하는 시발점이 되었지요. 이후 여성국극의 형태로 유행하기도 했지만 196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연극, TV 등 새로운 볼거리들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지요. 그나마 정부가 1962년 국립창극단을 설립하며 명맥을 이어오기는 했지만 관객들의 외면으로 공연 무대는 늘 ‘창극인만의 잔치’로 끝나기 일쑤였어요. 변하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산불
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신으로 판소리 연구가이자 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글을 통해 꾸준히 창극의 대중화를 강조했던 인물. 그가 2006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오자 창극인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창극인 출신이 아닌 비전문가의 예술감독 선임은 그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예술감독 제안을 받고 꽤 오랫동안 수락 여부를 고민했다고 한다.

“죽어 가는 장르를 맡는다는 게 부담스러웠죠(웃음). 하지만 창극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그동안 제가 대안으로 제시했던 내용들을 실행에 한 번 옮겨보고 싶었어요.”

적벽

이제는 세계화가 목표, 창극을 전통예술 분야의 한류(韓流)로 만들 것

예술감독이 된 후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그는 판소리라는 원형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었다. 작품의 주제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최근작인 <적벽>만 보더라도 영웅 호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적인 조조의 모습과 억지로 전장에 끌려온 민초들의 고뇌에 주목했다. <심청전>과 <춘향전>도 으레 떠오르는 효녀, 열녀의 이미지 대신 그들이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가졌을 심리적 갈등을 이야기의 축으로 다루었다.

음악의 변신은 더욱 파격적이다. 서양 뮤지컬이나 오페라에서나 볼 법한 오케스트라를 무대 밑에 배치하고, 지휘자를 기용했다. 장중한 서곡을 만들고, 서양의 화성적 기법을 도입해 과감한 편곡도 했다. 때로는 합창단이 들어가기도 하고, 콘트라베이스・첼로 같은 서양 악기도 접목했다. 무대는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꾸몄다.

그렇게 만든 첫 작품이 심청전의 앞부분과 춘향전의 뒷부분을 옴니버스로 연결한 <십오세나 십육세 처녀>. 새롭게 변신한 창극에 관객의 반응은 대단했다. “창극이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인 줄 몰랐다”는 글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그 여세를 몰아 ‘십오세’ 부분만을 따로 떼어 <청>을 만들었다. <청> 역시 창극으로는 드물게 전회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전국에서 공연 요청이 잇달았고, 국가 브랜드 공연으로 지정돼 중국에서 첫 해외 공연도 가졌다. 국립창극단의 레퍼토리도 다양화해 <시집가는 날> <산불> 등의 국내 유명 희곡들은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서양 고전도 무대에 올렸다.

로미오와 줄리엣
젊은 관객의 유치에도 주력했다. 특히 ‘젊은 관객이 들지 않으면 창극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에서 대학생들에게 파격적인 할인혜택(50~70%)을 주었다. 이들이 입소문보다 강력한 ‘인터넷 소문’을 내면서 관객층을 넓히는 데 한몫했다고 한다. 외국인과 젊은 관객을 위해 영어 자막과 한글 자막을 나란히 내보내는 새로운 시도도 선보였다. 판소리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나 한문 투의 대사가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영어보다 더 낯설다는 것을 간파한 배려였다. 실제로 〈적벽〉 공연장에서 만난 20대 관객 이지현 씨는 “창(唱)에 나오는 가사(?)들이 너무 어려워 영어 자막을 보고 이해했다”는 소감을 들려주었다.

이처럼 부분적인 개혁이 아닌 전면적인 혁신은 번번이 반대와 비난에 부딪쳤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창극단을 맡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예상한 어려움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원형을 훼손한다”는 비난은 지금도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수많은 문화적 양식들이 새로운 시대의 가치에 발맞춰 그 형식과 형태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듯 창극도 그런 변신이 필요하다는 것. 관객이 찾지 않으면 공연예술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올 초 연임하게 된 그는 이제 대중화・현대화를 넘어 세계화라는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그는 “음악성이 풍부한 우리 창극은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창극은 변화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장르예요. 300년이란 기간 동안 양식화된 가부키와 경극 등의 해외 전통 극에 비해 창극은 역사가 100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대극적 요소를 곳곳에 갖추고 있거든요. 새로운 양식을 만들기에도 좋고, 자유로운 해석을 하는 데도 매우 유리합니다. 창극이 ‘코리언 오페라’로 불리며 공연예술에서의 한류가 될 날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사진 : 김진구
  •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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