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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개와 여행 떠난 이 남자…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로 문학동네작가상 수상한 장은진 작가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었다. 서울서 광주송정역까지 기차로 네 시간 가까이 달렸다. 역방향 좌석에 앉으니 소설 속 작가의 시간으로 거슬러 가는 것 같다. 연필로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빨간 우체통에 넣는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 있는 시간 속으로.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로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장은진 작가. 그는 단발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기차역에서 다소곳이 앉아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깨가 좁고 피부가 희었다. 쨍한 가을볕이 부담스러운 듯 자주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한 남자가 눈 먼 개와 함께 모텔을 전전하며 여행하는 이야기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에게 편지를 하고, 누군가로부터 답장을 받는 순간 끝나는 여정. 하지만 아무도 편지하지 않아 여행은 3년간 계속된다. 여행은 일상의 재발견이고, 편지는 사람에 대한 재발견이다. 일상을 떠나는 여행은 역설적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부유하는 감정을 언어로 고백하는 편지는 대상과 나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시킨다.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후 극한의 슬픔을 치유하는 방편으로 선택한 여행과 편지는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이자, 잃어버린 가족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다.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일상 공간을 떠남으로써 아픔으로부터 떠나고,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조용히 이별의식을 치른다.

장 작가는 일란성 쌍둥이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작가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소설을 쓰는 언니 희진 씨를 따라 25세 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28세이던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천성적으로 수줍음이 많은 작가는 문학동네작가상에 응모하면서 자신 이름 대신 언니 이름을 적어냈다고 한다.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조경란 《식빵 굽는 시간》, 박현욱 《동정 없는 세상》, 박민규 《지구 영웅 전설》 등 내로라하는 작가와 작품을 배출한 이 상을 수상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작가는 까무러칠 뻔했다고 회상한다. “그 분들이 받은 상을 제가 받았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말한다.

생김새도, 목소리도, 사고방식도 비슷한 쌍둥이 언니는 장 작가에게 어떤 존재일까? 말이 필요 없이 잘 통하는 최고의 소통 상대일까? 아니면 ‘또 하나의 나’일까?

“닮은 데가 너무 많아서 마치 거울을 보는 느낌이에요. 타인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언니를 통해서 외로움을 달래거나 마음의 병을 해소하거나 하지는 못해요. 소통이라는 건 가족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가능한 거잖아요. 고등학교 때 까지는 쌍둥이라는 게 너무 싫었어요. 같이 등교하다가도 학교가 가까워지면 따로 들어가곤 했죠. 대학생이 되어서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각자의 공간에서 지내다가 집에 와서 만나니 둘도 없는 친구를 만난 느낌이에요. 우리는 선택받은 인간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둘은 글쓰기 방식도 닮았다고 한다. 장 작가는 사람 이름이나 시퀀스를 숫자나 기호로 치환하는 습관이 있는데, 언니도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 문장까지 비슷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각자의 소설을 바꿔 읽는 날엔 “네가 포기해”, “싫어, 네가 포기해” 하며 싸운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이상한 아픔, 이상한 슬픔, 이상한 고독은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는 맨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정체가 드러난다. 주인공 지훈 곁을 시종일관 떠나지 않던 눈 먼 개, 와조의 죽음은 지난해 12월에 떠나보낸 작가의 애완견 ‘민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의 소설 쓰기는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민트와의 이별의식이기도 했다. 작가는 300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한 달 반 만에 써 내려갔다고 한다. 작가가 지갑을 펼치자 새하얀 털의 민트 사진이 보인다.

“소설을 쓸 때 몰입되지 않는 편이에요. 겪은 일을 쓰는 게 아니라 90% 이상 허구니까요. 그런데 이 소설을 쓰면서는 퇴고할 때마다 울었어요. 민트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꿈꾸는 나, 꿈꾸는 사랑, 세상을 소설 속에서 이루죠

소설을 쓰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졌다는 장 작가. 그는 평소 자신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설정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주인공 지훈은 배낭 하나 메고 3년간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떠나고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시종일관 삶에 대한 따스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여행은커녕 광주를 거의 떠난 적이 없고, 내성적이라 사람들과 편안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남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본인의 걱정에 휩싸여 산다고 한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더러 거짓말쟁이래요. 소설 속 인물과 저, 소설 속 상황과 제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냐고요. 소설을 쓰면서 내가 이중인격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 내 안에 나와는 반대의 내가 사는 것 같아요. 실제의 저는 소심하고 약한데 소설을 쓰려고 앉으면 독해지고 과감해져요.”

작가의 전작 《앨리스의 생활방식》에도 가족이 한꺼번에 죽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극단적 슬픔의 모티프는 작가의 고등학교 때 친구 이야기다. 같은 반 친구가 사고로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심리적 충격을 받았던 작가는 그 친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감정이입했다. “요즘도 문득문득 생각난다”며 “그 아이 상처가 치유됐는지, 결혼은 하고, 아이는 낳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작가는 아프다. 저녁만 되면 어깨가 아파 숨 쉬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양방에서도, 한방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해 ‘스트레스성’이라고만 규정된 병. 머리가 몽롱해져 책을 읽기도, 앉아 있기도 힘들다는 작가의 병은 ‘창작 스트레스’라고밖에 할 수 없다. 남들보다 뒤늦게 등단했기에 더 치열하게 사고하고 창작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힌 장 작가는 하루하루를 꽉 짜인 시간 속에서 전쟁하듯 살아 내고 있었다. 극도로 예민하고 염세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작가는 현실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이상향을 꿈꾸며 붕 뜬 상태로 산다.

“만들어 걱정하는 스타일이에요. 안 해도 되는 걱정을 많이 해요. 이런 인터뷰도 편하게 할 수 있잖아요. 어젯밤에 잠을 거의 못 잤어요. 밥도 거의 못 먹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질문을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 때문이에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날 새벽 서너 시까지 제가 한 말을 곱씹으면서 ‘이 말은 필요 없었는데’ ‘이 말을 더했어야 돼’하며 되짚어요.”

작가의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이 문장의 완성도와 구성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소설 쓰기 말고는 다른 재능이 없어서 소설가가 됐다는 그는, 소설 속에서 본인이 지향하는 사람과 관념,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내가 될 수 없는 나, 내가 할 수 없는 사랑, 내가 살 수 없는 세상을 그린다. 작가는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여행이나 편지는 소통이에요. 그리움이자, 사람을 찾아가는 통로이고요.”

올해가 가기 전 꼭 한 번 손 글씨로 쓴 편지를 부치고 싶다. 우표를 붙이고 빨간 우체통에 넣어서.

사진 : 김선아
장소협찬 : 로뎀나무 (062-945-0080)
  •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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