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임영웅과 <고도를 기다리며>

내 무덤은 곧 무대

“내 무덤은 곧 무대이다.”
연극연출가 임영웅의 신념이다. 1934년생인 임영웅은 이제 우리 연극계에서 가장 원로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영원한 현역이다. 그는 올 가을 시즌에만 소극장 산울림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리고, 명동예술극장에서 <밤으로의 긴 여로>를 공연하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1969년 초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해로 40년째 공연해 온 것에서도 그의 고집을 엿볼 수 있다.
임영웅의 연극 인생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싹을 틔웠다. 세 살 때 모친을 여의고 열두 살에 부친마저 여읜 것은 그에게 더할 수 없는 불행이었으나 부모 대신 그를 정성껏 키운 할머니가 연극과 영화의 열렬한 팬이어서 그는 일찍부터 극장과 친숙해졌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클래식 음악은 언제나 그의 주변을 감싸고 돌았으며, 음악 공부에 매진하던 숙부 임원식은 훗날 명지휘자로 이름을 날렸다. 일찍 세상을 뜬 부친도 재즈 연주자였는데 네 살 무렵, 무대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임영웅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휘문고에 재학하던 6·25 피난 중, 학예부장이던 그가 교장을 설득해 학교 예술제를 개최했던 일화도 동문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회자된다.

임영웅은 서라벌예술대학 시절 이미 스승 김규대의 눈에 띄어 중요한 작품의 조연출 수업을 쌓았지만 졸업 후 곧바로 연극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주요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며 주로 문화부에서 평론가 못지않은 경력을 쌓았고, 동아방송국이 개국하면서 프로듀서로 직업을 바꿔 라디오 드라마 연출로 명성을 날렸다. 동아방송국 시절 PD와 성우로 인연을 맺었던 박정자, 김무생, 박웅 등은 훗날 그의 연극 작업에서도 질긴 인연을 이어간다. 방송국에 있으면서 연출한 ‘예그린 악단’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우리 창작 뮤지컬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기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1968년 국립극단에서 오태석 작 <환절기>를 연출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본격적인 연극연출가의 길을 걷게 된다.

임영웅은 연극 인생만으로도 50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반세기가 넘는 그의 연극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꼽는다면 바로 지금도 공연되고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11월 1일까지, 산울림 소극장)일 것이다.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1969년 처음 공연된 이래 40년간 공식적인 기록으로만 27번째 공연되고 있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이 이토록 오랫동안 우리 관객들에게 사랑받아 온 이유는 무엇보다 임영웅의 명쾌한 연출력 때문이다. 대본을 분석하기 시작하면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고는 단 한 줄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치밀함이 관객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부조리극을 선물한 것이다.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 1회 공연과 현재 공연 모습.
<고도를 기다리며>는 1969년 한국일보 사옥이 신축되면서 12층에 생긴 소극장의 개관 기념으로 공연되었다. 당시 교분이 있던 김성우 <주간한국> 주간의 권유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접했는데 대본을 읽는 데만 꼬박 3일이 걸렸다고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해외 공연을 본 적도 없고, 작품의 해석을 참고할 서적도 거의 없는 실정에서 그는 결국 작품 하나만을 붙잡고 악전고투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운이 따랐는지 때마침 사무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면서 <고도를 기다리며>는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성공에 고무된 임영웅은 이듬해인 1970년에 극단 ‘산울림’을 창단하고 창단 기념공연으로 역시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린다.

1988년 올릭픽을 기념하여 열린 연극제를 통해 <고도를 기다리며>는 소극장을 벗어나 문예회관 대극장(현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무대 세트라고는 헐벗은 나무 한 그루가 고작인 이 작품은 얼핏 소극장에 적합한 것 같지만 사실 황량한 벌판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면 대극장이 더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이 공연을 관람한 저명한 연극평론가 마틴 에슬린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고도를 기다리며>는 해외로까지 진출하게 된다.

1989년 <고도를 기다리며>의 본고장인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그 명성은 국제적으로 더 확대되었다. 아비뇽을 발판으로 다시 ‘더블린 페스티벌’의 초청을 받아 1990년에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향인 더블린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갖는다. 더블린 공연도 대성공을 거두어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었다.


임영웅의 연극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전환점은 <고도를 기다리며>와 더불어 소극장 산울림을 건축한 일이다. 임영웅은 사재를 털어 극장을 짓고 1985년 개관 기념작으로 역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했다. 홍익대 근처에 자리한 소극장 산울림은 대학로에서 동떨어진 지리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위기의 여자> <하나를 위한 이중주> <목소리>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 중년 여성 관객을 위한 특별한 레퍼토리 개발로 이례적인 장기공연 기록들을 세워 나갔다.

임영웅의 연극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연을 꼽는다면 누구보다 아내 오증자일 것이다. 촉망받는 불문학자로서 미래가 불투명한 연극인과 결혼한 오증자는 남편이 그토록 소극장을 갖고 싶어 할 때 집이라도 팔자고 먼저 제안했다. 오증자의 번역을 거쳐 탄생한 임영웅의 연출작은 너무나 많다. 임영웅의 뒤에 오증자가 있었기에 한국 관객은 불어권의 보석 같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위기의 여자>를 필두로 소극장 산울림이 여성 관객의 발길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오증자의 힘이 압도적이다. 우리 연극의 발전을 위해 임영웅과 오증자 부부의 건강한 백년해로를 간절히 기원한다.

사진 : 김선아


▣ 김미도가 추천하는 10월의 연극

연극계의 10월은 1년 중 공연이 가장 풍성한 달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개막되기 때문이다. 올해 spaf는 기간이 다른 해보다 길어서 11월 중순까지 공연이 이어진다. 해외에서 초청된 수작들을 서울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미 공연되어 작품성을 검증받은 창작극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이 중 특히 20대의 신예 작가 김지훈이 쓰고, 우리 시대 최고의 연출가 이윤택이 연출한 <원전유서>(10. 24~26,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는 지난해 동아연극상 5개 부문,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베스트 3, 한국연극협회 베스트 7 등을 휩쓰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는데, 이번에 다시 볼 기회다.


<원전유서>는 거대한 쓰레기더미 속에 살아가면서도 결코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20대 작가라고는 믿기는 않는 광대무변한 사유, 끊임없는 요설과 장광설, 현실적인 공간과 신화적 상상력의 뒤섞임, 천연덕스럽게 유보되는 사건들과 난데없이 튀어나와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인물들은 이윤택의 능란한 연출에 힘입어 4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을 거뜬히 견디게 한다. 어미 역을 맡은 김소희의 명연기는 그녀가 우리 연극계 최고의 배우로 성장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한다.
  • 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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