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슬로시티 기행] 전남 완도군 청산도

빼어난 자연, 순후한 인심, 산도 바다도 하늘도 파란 청산도

어느새 동이 텄나? 새벽 대여섯 시,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 오는가 했더니 여기저기서 ‘붕’ ‘붕’ 하는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잰 발걸음 소리에 섞여 두런두런 들려오는 말소리. 청산도의 아침은 활기가 넘쳤다. 고기잡이 배들이 앞 다투어 출항한 얼마 후 선착장 앞으로 나갔다. 고무 대야를 든 여성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바다를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해녀들이다. 그들과 함께 배에 올라타고 바다로 나갔다. 간식으로 챙겨 온 참외를 큰 칼로 쓱쓱 깎아 나눠 먹는 그들 틈에 끼여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의 고향은 제주. 꽃다운 나이 때 이들은 제주에서 배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몇 달씩 합숙하며 물질을 하곤 했다. 바다 건너 고향은 멀기만 하고, 외로운 처자들은 살갑게 대해 주는 섬 사내들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렇게 이 섬에 남았고, 수십 년 세월이 흘렀다. “왜 이 섬에 남으셨느냐?”고 묻자 해녀는 “남자 때문이지, 남자 때문이야”라고 대답하며 “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이들은 이 섬에 정착해 아들딸 낳고 살림 일구며 살았다. 이제는 장성해 섬을 떠난 자식들이 “힘든 일 하지 마시라”고 만류하지만, 바다에 나올 때 제일 마음이 편하다는 이들.


이들을 태우고 배를 몰던 윤준범 씨는 “다들 저희 어머니뻘이지요. 보통 60대이신데, 젊게는 50대, 연세가 많으신 분은 70대도 있으세요. 수자원 보호를 위해 그날 그날 물질할 수 있는 구역이 정해져 그곳까지 모셔다 드리고 모셔 오는데, ‘오늘은 날씨가 나쁘니 쉬세요’ 해도 굳이 바다로 나가자고 하세요”라고 말한다. 물때에 맞춰 전복이니 해삼, 소라, 성게, 홍합 등을 잡는데,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어촌계 등 이리저리 떼고 해녀들이 가져가는 수입은 한달에 200만 원 안팎이라고 한다. 물질뿐 아니라 농사일까지 함께하는 분도 많다고. “직접 키운 배추에 직접 재배해 말려서 빻은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김치를 자식들에게 보낸다”고 흐뭇해한다. “그렇게 일이 많으면 언제 쉬세요?”라는 질문에 “잠잘 때 쉬지”라고 대답하는 이들. 이들의 표정과 말투에서 신세한탄이나 불평불만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삶에 대한 긍정과 활기가 넘친다. 한시도 편안히 엉덩이 붙이지 못하고 종종걸음 치듯 살아온 삶에 왜 불만이 없을까? “청산도 남자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 적 없으시냐?”는 물음에 이들은 “후회하면 뭐해?”라고 한마디로 넘긴다. 어디서나 ‘어머니’는 자식이 가장 큰 보람이다. 한시도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여 키운 자식들이 객지로 나가 제 몫들을 해낸다는 게. “해녀 하면서 딸을 미국까지 보내 공부시킨 사람도 있다”고 자랑한다.


한 시간 가까이 배로 달리니 ‘일터’가 가까워 왔나 보다. 해녀 어머니들은 훌훌 옷을 벗더니 몸에 딱 달라붙는 고무 옷으로 갈아입고 수경까지 낀다. 물질을 많이 해서인지 군살 없이 미끈한 몸매가 돋보인다. 그리고 순식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오늘도 이들은 오후 서너 시까지 바다 속을 누비며, 자식들을 통통하게 살찌우고 교육시켜 낸 고마운 ‘양식’을 건져 올릴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힘든 노동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바다 속이 얼마나 예쁜데” 하면서 일을 좋아하고, 즐긴다. 윤준범 씨는 배를 다시 몰아 가까운 선착장에 댄다. 뭍에 올라선 그는 멀리 보이는 한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더니 “형님, 이 차 좀 쓸게요”라며 서슴없이 차에 올라탄다. “남의 차를 함부로 타도 되느냐?”고 묻자 “청산도에서는 제 차가 여러 대예요”라며 웃는다. 청산도에 사는 사람은 누구든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차 문을 잠가 두지 않는다고. 주변 단속을 안 하면 큰일 날 줄 아는 서울 사람으로서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자 “청산도 사람들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사돈의 팔촌쯤은 돼요. 넓은 의미의 가족이지요. 그러다 보니 네 것 내 것 따지는 게 덜한 겁니다”라고 답한다.



영화 〈서편제〉와 드라마 〈봄의 왈츠〉에 등장한 아름다운 섬

청산도에 발을 들이면 우선 빼어난 자연의 모습에 압도당한다.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걷던 길,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 남녀 주인공의 풋사랑이 싹트던 청산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나라에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는가?” 감탄을 자아냈다. 한반도의 끝자락인 완도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안팎이면 닿는 청산도는 총면적 33.3㎢의 제법 큰 섬이다. 망망대해 가운데 떠 있는 섬인데도, 청산도의 자연은 거칠지 않다.

매봉산・보적산・대봉산 등 해발고도 300여m의 나지막한 산들이 첩첩이 들어서 있어 대양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을 막아 내고, 사방에 만(灣)이 발달해 있어 바다도 호수처럼 잔잔하다. 산자락들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만들어 놓은 들녘. 바지런한 청산도 사람들은 빈 땅을 그대로 놀리는 법이 없어 경사 많은 땅까지 사방 어디고 층층이 논이고 밭이다. 구불구불한 논과 밭 사이로 일소들의 모습도 보인다. 산도, 들도, 하늘도, 바다도 모두 파란 섬.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첩첩 산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 산에서 바다로 내려가며 층층이 놓인 논밭, 자그마한 포구나 해안 절벽의 풍경이 기가 막히다.

이곳을 찾은 사람은 뛰어난 자연에 눈이 팔려 청산도에 사는 사람들의 본 모습은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닐까? 영화나 드라마로 인한 유명세에 슬로시티 지정까지 겹쳐 청산도를 찾는 관광객이 많아졌지만, 아침 배로 들어왔다 한 바퀴 둘러보고 오후 배로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청산도의 진면목은 보지 못한다. 자연만큼이나 순후한 청산도의 인심은 맛볼 기회가 없는 것이다. 7년 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청산도에 정착한 이상진 씨.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상무까지 지낸 그는 “서울에서 나서 자란 토박이지만 항상 바다가 그리웠고, 바닷가에서 살고 싶었다”면서 이곳에 살기 위해 은퇴를 앞당겼다고 한다.

“처음 청산도를 찾았을 때 바닷가인데도 비릿한 갯냄새가 안 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바다가 그만큼 깨끗하다는 거지요.”

자연이 좋아서 청산도에 살기 시작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사람들에게 반했다고 한다.

“이곳에 와서 6년간 쌀을 산 적이 없어요. 이웃들이 갖다 줬죠. 이곳 분들은 워낙 부지런해 남의 밭도 황폐해지는 것은 보아 넘기지 못해요. 우리 밭일까지 다 해 주세요.”

그의 청산도 자랑은 끝이 없었다. “이곳에서는 웬만한 크기의 삼치는 삼치라 부르지도 않아요”라면서 어린아이 키 정도로 손을 올리며 “삼치가 이 정도는 된다”고 자랑한다. 아내와 둘이서 순식간에 고등어 370마리를 잡았다가 손질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젯밤에는 별똥별이 4개나 떨어지는 것을 봤어요.” 아열대성 식물들이 나는 청산도는 사시사철 푸르다. 이곳에 나는 야생화는 200여 가지로 사계절 피고 지는데, 산길을 걷다 어딘가 향긋한 냄새가 풍겨 돌아보면 야생화다. 전형적인 ‘강남주부’였던 아내는 그 못지않게 청산도의 매력에 빠져 요즘은 문화관광해설가로 활동하며 외지인에게 청산도를 알리는 홍보요원이 됐다. “서울에서는 소화제니 두통약을 달고 살던 아내가 이곳에 와서는 펄펄 날아요. 좋은 공기와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청산도 슬로시티 김송기 사무장의 안내로 조상 대대로 청산도에서 살아온 70대의 박이열, 정호심 씨 부부를 만나러 갔다. 박이열 씨는 농협 조합장과 면장을 지내 요즘도 ‘면장님’으로 불린다. 박이열 씨는 11대 조상이, 정호심 씨는 12대 조상이 이 섬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이열 씨는 “이순신 장군의 마장(경위장교)이었던 조상이 임진왜란 후 이곳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이열 씨의 조상이 터를 잡은 부흥리는 청산도 중에서도 ‘오지 산골’로 통하는 곳. 면소재지가 있는 항구 도청리에서 자랐다는 정호심 씨는 “두메산골로 시집왔다”고 퉁을 놓는다. 그들의 집으로 가는 길. 구불구불한 곡선을 이루는 구들장 논과 오래된 돌담길, 야생화 넝쿨이 푸근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구들장 논에는 척박한 자연을 농토로 바꾼 청산도 사람들의 지혜와 끈질긴 노력이 녹아 있다. 땅을 파는 대로 돌이 쏟아져 나오는 땅. 이곳 사람들은 넓적한 돌을 구들장처럼 깐 후 그 위에 20~30cm정도 흙을 덮은 구들장 논을 만들어 농사를 했다. 아무리 척박한 땅도 그대로 놀리지 않았다. 조상의 근면함을 물려받아 요즘도 새벽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일하는 청산도 사람들. 산과 바다, 논과 밭 어디고 일터가 널려 있어 부지런하면 살림 걱정은 없다고 한다. 청산도가 고향인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왔다는 최미순 씨는 “이곳 분들은 아무리 고되게 일해도 항상 밝은 표정이세요. 불평불만이 없으세요”라고 말한다. 자연이 시름을 덜어 주기 때문일까? 최미순 씨 역시 “답답한 일이 있어도 섬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라고 한다. 어촌과 산촌, 농촌 등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 가는 곳마다 ‘여기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교육열도 유명하다. 부흥리에 있는 숭모사는 조선말기 문신인 김류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당. 거문도에 귀향 갔다 풀려나는 길에 들른 청산도에 매료된 김류 선생은 이곳에 머무르며 제자들을 키워 학풍이 이어지게 했다. ‘청산에 가서 글자랑 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 그 전통이 이어져 국전에서 한문서예로 입상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여느 시골처럼 젊은이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남던 이곳. 최근 전복 양식이 활발해지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젊은 이들이 많다. 잘하면 대기업 임원 못지않은 연봉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청산도에서 살아온 박이열 정호심 부부에게 “섬을 떠날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이들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이 땅을, 왜 떠나요?”

사진 : 김종연
  •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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