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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합니다

디자이너 홍동원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손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거리에 나서면 수없이 만나는 자동차 번호판을 디자인한 디자이너이자 《단원풍속도첩》 《이건희 에세이》 등의 책을 디자인한 출판 디자이너, 검찰 CI 로고와 신문 가로쓰기를 주도한 디자이너 홍동원(48)의 이야기다.
희끗희끗 새치를 그대로 둔 곱슬머리, 짧고 억센 콧수염과 턱수염, 자연스럽게 색이 바란 헐렁한 셔츠와 면바지 차림의 홍동원에게서 담백한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그와 함께한 두 시간여, 그는 강렬한 언어로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디자인은 아름다움도, 화려함도 아닌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인간이 배제된 디자인은 그냥 잘 그린 그림이거나 잘 만든 조형물일 뿐입니다.”

기업이나 정부까지 나서서 디자인 경쟁력을 부르짖는 시대, 그러나 그가 바라본 한국 디자인의 현주소는 “패션쇼에나 등장할 키 크고 깡마른 모델에게나 입히면 좋을 옷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식”이라며 “인간이 빠져 있다”고 표현했다.

“‘무엇이 사람을 위한 디자인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해 놓고 보자, 예쁘면 돼’ 로 디자인에 접근합니다. 특히 도시 디자인에서 이런 경향이 심하죠. 일단 파헤쳐 놓고 사람들에게 ‘조금만 참아라, 그럼 더 좋은 것을 얻을 것이다. 10년 후쯤엔 모두들 감사할 거다’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도시를 예쁘게 만든다고 사람을 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걸 내가 했다’는 과시욕일 뿐입니다. 아름답긴 하겠죠.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불편하게 하거나, 희생을 강요한다면 누구를 위한 디자인일까요?”

우리 디자인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그는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의사에게 진찰받는 환자가 뜬금없이 ‘나 머리 아프니 이러이러한 약 처방해 줘’라든가, 변호사에게 ‘변론서 이렇게 써’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지요. 누구나가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게는 ‘이렇게 해’라고 합니다. 디자이너를 작업하는 ‘일꾼’ 정도로 보는 거지요. 그 순간 디자이너의 영역은 사라집니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에 납득할 수 없는 수정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는 정중히 사양하는 디자이너, 또 고객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않는, 매우 불친절한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그는 “내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만 소위 ‘빤쓰’를 벗겠다”는 말로 설명한다.

“디자인을 주문하는 것은 고객이지만 그 디자인을 향유하는 것은 대중입니다. 제 재능을 비싸게 팔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과 작업하겠다는 것이지요. 디자인이라는 고유 영역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와 호흡을 맞출 때 제대로 된 디자인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는 돈이 일을 맡는 기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때로는 무료 봉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천 만 대 자동차에 붙은 번호판도 그가 무료로 디자인해 준 것임을 안다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콧대 높은 디자이너 홍동원은 학창 시절 단 한번도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뭐 그 따위 이발소 그림을 그리느냐’며 싸구려 취급을 받기까지 했단다. 그런 그가 어떻게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저는 획일적인 게 싫었어요. 이상하게 선생님이 하라고 하고 친구들이 모두 다 따라 하는 것은 하기 싫었어요. 남들과 무조건 다르게 하다가 혼난 적도 많죠. 미술 시간에 모두 사실화, 풍경화를 그릴 때 저는 일부러 도형이니 선만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이제 생각하니 그게 추상화이자 창작 디자인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홍동원 디자인 인생의 출발이었다.


운동권이었던 친구들이 만든 책 디자인하면서 출판 디자인 입문

홍익대 미대 대학원 졸업 후 조교 시절이던 1985년, 한 디자인 잡지에 소개된 출판 디자인에 대한 글이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그 글을 읽으며 ‘아, 이거 하면 먹고 살 만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전혀 새로운 분야였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만들 때 디자인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어요.”

먹고 살 일을 찾았다는 것과 함께 출판 디자인에 끌렸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친구들을 잘못 만나서 그렇죠”라며 입을 연다.

“친구들 대부분이 운동권이라 대학을 끝까지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했어요. 이 친구들이 출판 일을 했죠. 출판 디자인을 하고 싶던 제게 이 친구들은 쓸모가 많았어요. 제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책이 《볼셰비키당조직론》이었으니까요(웃음).”

20년 전, 자신이 처음 출판 디자인을 시작했던 시절에 대해 “친구들이 의뢰한 책을 디자인하며 그것이 일인지 놀이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아니 구분할 필요도 없을 만큼 가장 즐거운 때였다”고 말한다.

“전 이데올로기니 이념이니 이런 거 전혀 몰라요. 그저 친구들과 함께해서 좋았고, 디자이너로서 제 정체성을 찾았다는 것이 즐거웠죠. 일하면서 너무 즐거우니 놀이로 생각되더군요. 그런데 돈까지 생겼어요. 정말 ‘나는 이 일 외엔 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때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스스로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일을 맡지 않는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이후 그는 한국전력과 MBC, 건교부와 검찰 등의 CI 로고를 디자인하며 출판 디자인뿐 아니라 산업・생활 디자인 분야에서도 최고의 디자이너로 인정받는다. 그에게 디자이너 홍동원의 경쟁력을 물었다.

“홍대 앞에 유정다방과 서린제과란 곳이 있었어요. 당시 사람의 인체를 그리려면 모델이 필요했는데, 그 모델 값이 대학생이 감당하기엔 꽤 비쌌어요. 그때 유정다방의 원더우먼이라 불리던 레지가 학생들에게 최고의 모델이었죠. 그런데 전 미성년자란 이유로 동기들이 유정다방 대신 빵 값을 쥐어주며 서린제과로 보냈죠. 제가 일곱 살 때 학교에 들어가 동기들보다 나이가 어렸거든요. 덕분에 저는 홍익 여고생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어요. 동기들과는 다른 인체를 그릴 수밖에 없었죠.”

“하하하”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말을 잇는다.

“그때 제가 얼마나 유정다방에 가고 싶었겠어요? 한 손에 빵을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홍익여고 학생들을 그리면서 ‘에이, 내가 너희보다는 더 잘 그릴 거다’라며 동기들을 향해서 경쟁심을 불태웠죠. 그 경쟁심이 시간이 흐르면서 거창하게 말하면 도전정신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그때 이후 뭘하든 제 인생에 대충이란 게 없어졌습니다. 이게 디자이너로 30년을 살아온 제 경쟁력의 원천입니다.”

나라 전체가 ‘디자인, 디자인’을 외쳐 대는 디자인 시대. 우리의 디자인은 그런 외침만큼 경쟁력 있는 디자인을 창조해 내지 못했다. 그가 디자인 경쟁력을 말했다.

“‘1+1=2가 아닌 1+1=3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게 틀렸다고 하는 사회에서 벗어나야지요.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플러스 알파 찾기 경쟁의 시대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플러스 알파를 찾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인터뷰 말미 그가 소박한 인생의 목표를 말한다. “저는 아주 평범하게 태어났어요. 몇몇 일을 맡으며 어줍잖게 이름이 알려졌지만 저는 대단한 사람도, 앞으로 대단한 사람이 될 것도 아닙니다. 세상이 변하더라도 저와 함께하는 이들과 지금처럼 평범하게, 홍동원만의 디자인을 지키며 살아가는게 인생의 목표입니다.

사진 : 신규철
일러스트레이션 제공 : 글씨미디어하우스
  • 200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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