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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던 레스토랑 만드는 데 청춘을 바쳤죠

서현민 ‘팔레 드 고몽’ 대표

파프리카 젤리와 캐비아를 곁들인 대게 살 케이크와 생선 타르타르, 체리를 곁들인 푸아그라 구이, 완두콩과 사프란 모렐 소스를 곁들인 바닷가재…. 청담동에 ‘100년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레스토랑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10년 전 문을 연 이곳은 격조 높은 레스토랑으로 손꼽힌다. ‘프랑스 100인의 미식가협회’ 이브 그로고자 회장으로부터 “미슐랭 스타를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을 들었고, 에르메스 루이 뒤마 회장으로부터 “프랑스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철학적 음식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는 감사 편지를 받기도 했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고성 같은 외관, 천장이 높아 시원스러운 내부, 중세 시대를 재현한 클래식 소품 등 요소요소가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이영애가 모델로 출연한 한 아파트 CF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곳. 이 으리으리한 레스토랑을 만들고 지켜가는 이는 누굴까? 대기업이나 재벌 2세가 아닐까? 외국 생활 경험이 많은 해외 유학파 출신이겠지. 하지만 섣부른 예상은 빗나갔다. ‘팔레 드 고몽’의 수장 서현민 대표는 외국 생활 경험이 전혀 없다. 고소공포증과 폐쇄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타는데다 다른 레스토랑을 가 본 적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레스토랑에서 쓸 소품을 마련하기 위해 딱 한 번 ‘눈 질끈 감고’ 파리와 로마를 다녀온 게 전부란다. 팔레 드 고몽은 상상력의 산물인 셈이다.

마 소재의 흰색 긴팔 남방에 흰 바지를 입은 흰 피부의 서 대표는 우수에 찬 귀족을 연상시켰다. “울렁증도 있고 낯도 많이 가린다”는 그는 조용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정면 사진 촬영은 극구 거부했다.

“고몽이 주인공이 돼야 하고, 고몽의 가치가 커져야 해요. 사장이, 셰프가 주인공이 되면 고몽의 역사가 짧아질 수밖에 없죠. 앞으로도 이 원칙은 지켜 갈 겁니다.”


‘팔레 드 고몽’은 ‘고몽의 성’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고몽’은 프랑스 영화 기술 발전의 선구자인 레옹 고몽의 이름에서 따 왔다. 나폴레옹 시대의 마블 시계와 청동 촛대, 1700년대 로코코 시대의 그림과 가구 등 디테일한 소품 하나하나가 모여 중세 프랑스 귀족 계층의 문화적 향취를 내뿜는다. 소품 대부분은 프랑스 현지에서 공수해 온 것들이다.

서 대표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건축회사에서 5년 간 일하다 나와서 ‘철학이 살아 숨쉬는 일류 레스토랑을 만들어 보자’는 야망을 품는다. 뮤지엄과 고성 등에 관한 서적을 보면서 자신이 꿈꾸는 레스토랑의 밑그림을 구체화해 갔다. 각종 영화의 배경도 중요한 소스가 됐다. 연극 연출을 전공하고 건축회사에서 일한 경험은 그가 꿈꾸는 레스토랑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는 레스토랑의 설계도를 직접 그렸다고 한다. 벽 무늬와 바닥재, 몰딩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우리나라 10대 대목수 3명을 포함한 16명의 목공예 장인들과 1년여 함께 작업하며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구체화해 갔다. 테이블과 의자, 와인잔과 촛대 등 어느 것 하나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손님을 맞는 직원의 말투와 몸짓, 표정 하나까지 직접 교육했다.

레스토랑 2층 전체가 와인 셀러다. 희귀 와인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1865년산 샤토 라피트 로실드, 1900년산 샤토 마고, 1937년산 샤토 뒤켐, 1945년산 무통 로실드 등이 있다.

에르메스 회장이 “프랑스 정통 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고 편지

시공 후 레스토랑 오픈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그의 나이 29세에 시작, 31세에 오픈하고, 10년째 고몽의 붙박이처럼 지내고 있으니 청춘을 고몽에 바친 셈이다. 그가 고몽에 바치는 열정은 상상 이상이다. “결혼을 못 했어요. 남들처럼 연애하고 배필을 찾을 시간에 고몽에 인생을 다 걸었죠”라며 웃는다. 그의 한 지인은 “고몽과 결혼한 남자”라고 놀렸다.

연극 연출을 전공한 그는 레스토랑 운영을 연극 공연과 비슷하다고 본다. 스스로를 ‘고몽의 감독이자 제작자, 투자자’라고 생각한다.

“오후 6시 정각이면 막이 오르면서 공연이 시작돼요. 손님이 매일 바뀌기 때문에 단 하루도 같은 공연이 없어요. 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죠. 그날 공연이 성공적이었는지 여부는 고객에게 어떻게 기억되느냐에 달렸어요. 더 이상 음식 맛만으로 승부하는 건 진부한 것 같아요. 맛은 좋은 식당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이죠. 좋은 배우만으로 좋은 공연이 되지 않아요. 좋은 무대, 음향, 조명, 의상, 실력 있는 조연과 숨은 스태프들도 중요하죠. 또 사회 문화가 발전해서 좋은 공연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관객층이 두터워야 하고요.”


‘팔레 드 고몽’은 제약이 많다. 우선 고가의 집기를 깰 우려가 있기 때문에 7세 미만은 입장 금지이고, 복장도 제약이 있다. 캡 모자(일명 ‘야구모자’)를 쓰면 안 되고, 슬리브리스 차림이나 슬리퍼를 신어도 안 된다. 등산복 차림도 사절이다.

“더운 여름에도 슈트 입고 넥타이 매고 오셔서 귀빈과 비즈니스하시는 분들을 위한 약속이에요.”

이곳의 고객은 대부분 40~50대. 저녁 코스 요리가 10만원 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접근하기 쉽지 않다. 특별한 날 연인들이 종종 찾고, 문화 마인드가 강한 직업군이 주 고객이라고 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계 총수들은 거의 다녀가셨고요, 외국계 회사 CEO, 패션 브랜드 지사장들이 외국 귀빈들을 많이 모시고 오세요.”

서 대표는 지난 10년간 욕도 많이 먹었다. ‘식당 주제에 웬 복장 단속이냐’, ‘너무 사치스럽다’ 등. 고객의 한 마디, 네티즌의 악플 한마디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의 신념은 점점 더 견고해졌다.

“이런 공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중에게 호소하고 눈치보고 따라가기보다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을 견지하면서 묵묵히 가고 싶습니다. 프렌치 파인 다이닝(fine dinning)은 끊임없는 인내와 디테일이 요구되는 분야예요. 우리나라는 아직 파인 다이닝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거든요.”


서 대표는 2년 6개월 전, ‘팔레 드 고몽’ 바로 옆에 ‘뚜또베네’라는 이탤리언 캐주얼 레스토랑을 열었다. 뚜또베네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제목으로, ‘Everything is fine’이라는 뜻이다. 그는 ‘뚜또베네’를 “고몽의 반전”이라고 표현했다.

“뚜또베네는 자유로움, 프렌들리, 펀, 와일드 이런 요소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새벽 2시까지 영업하고, 와인 마시던 손님들이 일어나 춤도 추죠.”

인터뷰를 마치고 뚜또베네에서 식사를 했다. 서 대표는 뚜또베네 상당수의 고객과 친분이 있었다. 어깨동무를 하는가 하면, 포옹도 했다. 단골 고객들은 일행이나 모임 성격에 따라 뚜또베네와 고몽을 오간다고 했다. 고몽에서 인터뷰하던 서 대표와 뚜또베네의 그는 완전 딴사람처럼 보인다. 고몽에서는 바른 자세로 앉아 절제된 언어를 썼고, 뚜또베네에서는 하우스 뮤직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며 편안한 옆집 오빠처럼 말했다. 음식 문화가 한 남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여실히 보여줬다.

사진 : 김진구
  • 200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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