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국제광고제 금·은·동상 석권한 ‘포스트비주얼’ 이정원 설은아 대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 창의력이 샘솟지요

광고기획 전문업체 ‘포스트비주얼’이 제작한 나이키 ‘인터랙티브 커스텀 덩크’ 프로젝트(운동화)와 ‘This is Love’(김연아), ‘Be the Legend’(박지성) 캠페인이 2009 뉴욕국제광고제 인터랙티브 부문에서 금·은·동상을 석권했다. 한국 작품이 국제광고제에서 금·은·동상을 휩쓴 것은 처음 있는 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 프로젝트와 캠페인은 컴퓨터라는 이기(利器)가 어떻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 소통시키면서 마케팅에도 활용될 수 있는지,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PC통신으로 만나 인생과 사업의 동반자가 된 이정원(오른쪽) 설은아(왼쪽) 대표.
‘포스트비주얼’은 1999년, 대학생이던 설은아 씨가 만든 개인 홈페이지에서 출발했다. 그의 홈페이지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화제를 모았고, 이듬해 출범한 ‘포스트비주얼’은 내놓는 작품마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칸 광고제, 뉴욕 광고제, 클리오 광고제, 런던 광고제, 레드닷 커뮤니케이션 어워드, 플래시 필름 페스티벌, 커뮤니케이션 아트 인터랙티브 디자인 애뉴얼 등 세계적인 광고상을 수십 차례 수상했고, 로테르담 영화제와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래도 한 광고제에서 금·은·동상을 한꺼번에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포스트비주얼’ 사무실. 보안장치가 되어 있는 현관문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는데, 한 여성이 문을 열어 줬다. 흰 물방울무늬의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파란색 머리띠를 한 그녀가 설은아였다. 직원 30여 명, 크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난 광고회사의 대표인 그녀는 자주 까르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또랑또랑 동화 구연하는 것 같은 말투에서 발랄함이 묻어났다. 대기업 회장 앞에서도 동화 구연하는 말투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금상을 받은 나이키 ‘인터랙티브 커스텀 덩크’ 프로젝트. 컴퓨터 조작으로 자신이 원하는 색상과 패턴의 운동화를 디자인하면, 2m에 이르는 거대한 모형 운동화가 나타난다. ‘내가 디자인한 운동화’는 스티커로 출력해 가지고 갈 수도 있다.
“원래 94학번으로 사학과에 입학했죠. 그런데 미대생들이 ‘샤방샤방해’ 보여 부러웠어요. 나도 미대에 가면 멋지게 살 것 같았죠. ‘미술 한번 해볼까?’ 하고 당장 미술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다시 시험을 치르고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했다. 그녀의 삶이 터닝 포인트를 맞은 것은 대학 2학년 때 플래시 프로그램을 알게 되면서였다. 동영상을 활용한 그 프로그램은 클릭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게 만들 수 있고, 방문자와 인터 액션을 할 수 있어 참 좋았다. 그 매력에 빠져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고,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때 남자친구가 “너도 네 이름을 딴 홈페이지를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만든 게 설은아닷컴. 이 홈페이지로 그녀는 단번에 ‘유명인’이 되었다. 색다른 느낌, 새로운 개념의 이 홈페이지는 대한민국 홈페이지 디자인 공모전 특선, 국제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 대상을 차지했고, 그녀는 세계의 디지털 아티스트들 사이에서도 ‘알려진 존재’가 되었다.

동상을 받은 ‘Be the legend’. 수많은 악의 무리를 축구공 하나로 맞서 물리친 박지성이 결국 불사조(不死鳥)가 된다는 독특한 수묵 3D 애니메이션.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 방학 내내 틀어박혀 작업했습니다. 그런데 방학을 지내고 나자 평범한 학생이 갑자기 유명인이 되어 버렸죠. 2000년을 앞두고 한 방송국이 ‘21세기를 빛낼 5인의 젊은이’를 선정했는데, 배두나 고종수와 함께 제 이름이 올랐을 정도니까요. 당시 개인 홈페이지들은 나이, 국적, 성별, 혈액형 등 자신에 대한 개인 정보들을 나열했는데, 저는 방문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쌍방형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생각과 느낌을 중심으로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죠.”

대학 졸업 때 이미 이 분야의 기린아가 된 그녀는 취업을 할까 창업을 할까 고민하다 일단 사업자 등록을 하고 집에 있던 컴퓨터 2대를 가져와 일을 시작했다. 하다 안 되면 취업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배짱으로. 이렇게 만든 회사 ‘포스트비주얼’은 초창기 〈와니와 준하〉 〈엽기적인 그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등 독특한 감성의 영화 사이트로 주목받은 후 점차 영역을 넓혀 나갔다.


언제나 낙천적인 아내와 신중하고 정확한 남편

은상을 받은 ‘This is Love’. 멋진 포즈로 스케이팅을 하거나 요가, 스트레칭을 하는 김연아 선수. 그 모습을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에 손을 가져다 대자 김연아 선수가 하던 동작을 멈추고 달려와 손을 맞댄다. “내 손에서 열정이 느껴지시나요?”라고 말하며.
‘네 홈페이지를 만들라’고 충고했던 남자친구, 그는 설은아와 결혼했고, 현재 ‘포스트비주얼’ 공동 대표로 있다. 두 사람 명함에 설은아 대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정원 대표는 ‘CEO & Strategic Director’라고 적혀 있다. 두 사람의 성격과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명칭이다. 설은아 대표는 소위 ‘필 받는 대로’ 곧장 행동에 옮기는 성격인데, 이정원 대표는 신중하고 정확하다. 설은아 대표가 일단 일을 벌이면 이정원 대표가 꼼꼼하게 챙긴다. 환상의 커플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을까? 사이버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들답게 사이버 공간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초창기 PC통신인 천리안에서 채팅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습니다. 서로 사는 곳이 목동, 신월동으로 가까워 ‘한번 볼까요?’ 했고, 목동 아파트 3단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죠.”

설은아 대표는 사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이정원 대표는 법대에 다니며 고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설은아 대표는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일기장에 ‘아무래도 이 남자와 결혼할 것 같다’고 썼다.

“제 이상형이 자상하고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남자였거든요. 이 사람을 봤을 때 그런 느낌이었어요.”

첫 만남 후 지금까지 두 사람은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만났다고 한다. 이정원 대표는 “연애하느라 고시는 포기했다”고 농을 한다. 설은아 대표는 언제나 재잘재잘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이정원 대표는 한마디씩 충고했다. 그러다 꿈도, 일도, 인생도 공유하는 짝꿍이 됐다. 출발점인 설은아닷컴도 설은아 대표가 디자인, 이정원 대표가 프로그래밍을 맡아 함께 만들었고, ‘포스트비주얼’에서 설은아 대표가 크리에이티브 부분을 맡으면, 이정원 대표는 기획과 경영을 책임진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설은아 대표는 “어쩔 수 없어. 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며 언제나 낙천적인 데 반해, 이정원 대표는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해 꼼꼼히 대비책을 만들어 둬야 마음이 놓인다고.

“난 지루한 게 너무 싫어”라고 말하는 설은아 대표.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어느 누구도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할 때 에너지가 샘솟는다는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딱 맞아 보였다. 이정원 대표는 “즉흥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실행이 진짜 빨라요. 그 속도를 못 따라가서 당황할 때도 많지요”라고 말한다. 이정원 대표의 관심은 회사를 안정적으로 키워 가는 것. 그는 “큰 회사가 아니라 강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이제 ‘포스트비주얼’은 두 사람만의 회사가 아니다. 어떤 인재들이 포진해 있느냐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 “채용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게 뭐냐”고 묻자 설은아 대표는 “난 모범생보다는 서툴러도 열정이 있는 괴짜를 좋아해요. 우리 회사에는 음악, 일본 애니메이션, 로봇 등에 정통한 ‘오타쿠’들이 많아요. 휴일에 한 집에 몰려가 함께 로봇을 조립할 정도로 로봇 마니아들이 많아 수시로 공동 구매하기도 하죠.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 때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인텔 본사에 수출한 ‘센트리노’ 광고 이미지.
회의실은 이런 괴짜들이 모여 ‘아이디어 배틀’을 벌이는 현장. 계급장 떼고 붙는 것이라 설은아, 이정원 대표도 다른 직원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둬들여야 한다. 그 덕에 늘 새로운 것을 내놓을 수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이 회사가 만든 인텔 ‘센트리노’의 광고 이미지를 인텔 본사에서 사가 첫 번째 수출을 이루기도 했다.

설은아 대표의 명함 맨 위에는 조그만 글씨로 ‘꿈 2막’이라고 쓰여 있다. 무슨 뜻이냐고 묻자 “돌아보니 그동안 열심히 달려 원래 꿈 대부분을 이루었더라고요. 이젠 좀 쉬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지난 해는 좀 여유 있게 보냈습니다. 이제 2막을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뛰겠습니다.”

쉴 때 뭐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1초도 망설임 없이 “아기랑 노는 것을 완전 좋아해요”라고 말한다. 네 살짜리 아들이 있다면서. 보통은 일에, 육아에 너무 지친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는 매사에 너무 밝고 긍정적이었다.

“요즘은 조금 더 빨리, 일을 잘해 내서 최대한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저, 아기랑 정말 잘 놀아요. 모든 아이가 절 좋아한다고요.”

곁에 있던 이정원 대표는 “제가 맨 끝 순위로 밀려났다”며 투덜댄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 그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창조력의 원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 신규철
  • 200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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