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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진출한 디자이너의 ‘튀는 상상력’

제너럴 아이디어 최범석 대표

최범석은 담치기와 결석이 취미인 소위 날라리 중학생이었다. 떡집 아들이었던 그는 멋쟁이 아버지를 닮아 옷을 좋아했다. 아버지 옷장에서 몰래 꺼낸 흰색 셔츠에 버버리 코트, 백구두에 흰색 머플러를 걸치고 홍콩 영화에 등장하는 주윤발 패션을 흉내 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옷에 더욱 미친 그는 옷 장사를 하기로 결심한다. 동대문에서 구제, 스탁(상표를 자른 명품 의류) 등을 싸게 사 홍대로 진출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 홍대 앞에서 벽 하나를 빌려 옷 장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 빈티지는 시기상조였다. 2003년 제너럴 아이디어를 만들 때까지 10년 동안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자 바닥부터 다지는 시간이었다. 한 달에 40만 원 받는 원단 시장 아르바이트, 남대문 시장에서 “골라 골라”를 외치는 신발 장사도 했다. 그의 안목이 두각을 드러낸 건 신발 장사를 해서 모은 돈으로 의정부에 ‘치즈’라는 옷가게를 차리면서다. 규모가 크지도 않고, 접근성도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치즈는 패셔니스타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해져 “의정부 치즈에서 옷을 안 사 입으면 멋쟁이가 아니다”라는 말이 일대에 떠돌았다.

1997년 동대문에 진출,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Mu(무)’라는 남성복 브랜드를 론칭한다. 이듬해 같은 이름의 여성복 브랜드 론칭, 2002년엔 프리미엄 데님 브랜드 A.N.B를 론칭한다. 2002년 파리 컬렉션에 참가한 패션 디자이너 홍은주의 옷을 보고 자극을 받은 그는 세계적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다. 2003년 SFAA 컬렉션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테마로 데뷔하면서 신데렐라가 됐다. 투자회사 C3 e-commerce를 설립, 제너럴 아이디어로 개칭하면서 더욱 비상한다. 2005년부터 해외 진출, 런던의 셀브리지스 백화점, 홍콩 최고의 편집숍 조이스, 파리 프랭탕 백화점 입점을 시작으로 모스크바, 캐나다 등지에도 진출한다. 그의 몸에는 문신이 세 개 있다. 등, 허리, 팔뚝. 팔뚝에는 ‘general idea’라고 새겨 있다. 제너럴과 평생 함께하겠다, 제너럴이 죽으면 그도 죽는다는 비장한 각오다.

그의 사전에는 틀, 얽매임,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따위의 말이 없는 듯하다. 대신 아방가르드, 전복적 상상력, 역발상, 파괴와 혁신, 도전과 패기, 자유와 비상 등이 가득하다. 스타일리시한 남성 패션 브랜드 ‘제너럴 아이디어’를 만든 최범석 대표. 제너럴 아이디어의 옷은 ‘제너럴하지’ 않다. ‘너무 캐주얼하고 너무 진지한 건 별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제너럴 아이디어의 옷은 고급스런 틀이 있으면서도 그 틀을 과감히 비틀어 흉내 내기 힘든 개성을 표현한다. 왕궁을 뛰쳐나온 창백한 반항아 왕자의 옷 같다고나 할까. 내면의 폭발적인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남자의 선택, 혈통 좋은 보헤미안의 선택 같기도 하다. 장동건, 조인성, 공유, 세븐, 비, 에릭, 이준기 등이 그의 옷을 입었다. 제너럴 아이디어 옷은 한국을 넘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홍콩 등지에도 진출해 있다.



제너럴 아이디어의 홈페이지(www.generalidea.co.kr)에 접속한 순간, 해머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홈페이지는 이래야 한다’는 틀을 과감히 파괴, 창조적인 상상력의 한 극점을 보여주는 이 홈페이지는 2007년 홈페이지대상 동상을 수상했다. 제너럴 아이디어를 만든 남자가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살아왔고, 그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차 있는지 궁금했다.

신사동 제너럴 아이디어 본사에서 최범석 대표를 만났다. 가슴 한가운데 배트맨이 커다랗게 그려진 1989년산 빈티지 티셔츠, 여기저기 북북 찢은 흰색 스키니 진에 백구두를 신고, 꽁지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그가 부드러운 미소로 맞았다. 술과 담배에 절어 산다는 그는 거짓말처럼 윤기 나는 피부를 가졌다. 어릴 때부터 여성 화장품만 썼고, 1주일에 한 번 스크럽을 하고, 1년에 한 번 피부과에서 레이저 박피 시술을 받는다고 한다.


최범석은 최근 화제의 중심에 있는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이다. ‘상식을 파괴하는 전복적 상상력’으로 젊은 남성 패션의 트렌드세터가 된 그는 최근 라세티 자동차 TV CF 모델로 인지도를 확 넓혔다. 2006년엔 ‘마일드세븐르노 F1’팀의 레이싱카를 디자인했다. 이때 그는 남성의 근육을 모태로 한 상어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살린 디자인으로 카메라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2009 F/W 뉴욕 컬렉션에서 호평을 받은 그는 올 9월 2010 S/S 뉴욕 컬렉션에도 초대됐다.


“지난 시즌 뉴욕 컬렉션에서는 스파이 콘셉트였는데, 이번에는 스파르타가 테마예요. 제가 워낙 밀리터리 룩을 좋아하는데다, 스파르타의 멋진 정신을 표현해 보고 싶었거든요. 고대 그리스 시대 스파르타의 전사적인 느낌을 2010년 버전으로 풀어내는 거죠. 흥분되고 기대돼요. 물론 부담도 되고요(웃음).”

디자이너 최범석을 거론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고졸 학력의 동대문 출신 디자이너. 그의 옷이 아무리 잘 팔리고, 세계적 디자이너로부터 찬사를 들어도 이 꼬리표는 주홍글씨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언론과 방송에서 늘 학력에 대해 당당했다. “학력 콤플렉스가 없어 보인다”는 기자의 조심스런 질문에 그는 더 당당하고 여유 있는 말투로 답한다.


“네, 없어요. 대학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다면 콤플렉스가 있을 수도 있죠.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는 콤플렉스가 없잖아요. 또 숨기지 않고 당당히 밝히면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 가슴 작은 여자가 남자 친구한테 가슴을 보여주면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예요. 아, 학력 콤플렉스는 없지만 피터팬 콤플렉스가 있어요. 디자이너는 대부분 젊음에 대한 로망이 있죠. 40~50대가 돼도 젊은이들을 위한 옷을 만들고, 10대, 20대 모델을 세워요. 제 심리적 나이는 스물네 살에 멈춰 있어요. 스물다섯 살도 많은 느낌이에요(웃음).”


뉴욕 컬렉션은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성사됐다. 대개 해외 컬렉션은 홍보 대행사가 진행하지만, 최범석은 직접 나섰다. 미국에 있는 유명 에이전트 여러 곳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 제너럴 아이디어를 알리고, 컬렉션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하지만 묵묵부답. 단 한 곳도 답장이 없었다. 브로슈어와 회사 자료를 들고 직접 미국으로 날아갔다. 교포 친구를 통해 전화로 에이전트와 약속을 잡고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찾아간 모든 에이전트에서 계약을 맺자는 연락이 왔다. 그는 그중 가장 맘에 드는 에이전트를 골라서 뉴욕 컬렉션을 진행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같은 에이전트와 진행 중이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기에 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죠

그는 패션 업계에서 이단아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나와 정규 코스를 밟은 디자이너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방식으로 밀어붙였고, 결국 해냈다. 정규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그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게 아닐까.

“네, 맞아요. 저희 아버지는 공부를 많이 못 시켰다고 미안해하시는데, 그러지 마시라고 해요. 이번 뉴욕 컬렉션만 해도 그래요. 스폰서도 없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연고자도 없는 제가 거기까지 간 것에 대해 주위 분들은 ‘네가 못 배워서 겁이 없어 그렇다’고 해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단계를 밟지 않고 게릴라전하듯 살아온 제 삶이 오히려 좋아요.”

기존 패러다임을 뒤엎는 파격적인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의 머릿속에는 몸으로 직접 부닥치면서 얻은 경험과, 책과 영화 등을 통해 간접 경험한 이미지나 개념 등 사고의 원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는 낙서하면서 생각에 몰입하곤 한다고 말한다.

“키워드를 적어 놓고 연상되는 단어와 이미지를 그려 나가요. 새끼 치듯 말이에요. 그러다 보면 여러 갈래의 고리가 생기고, 수백 개의 관련 이미지가 구체화되죠. 생각할수록 시간과 공간을 잊은 듯 몰입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요.”

디자이너가 만들고 싶은 옷과 대중이 원하는 옷 사이에는 갭이 있게 마련이다. 그에게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지 물었다.

“10여 년 전 옷 장사를 시작할 때와 지금은 입장이 달라요. 그땐 욕망이라기보다 욕구, 생존 때문에 옷을 만들었죠. 이것 아니면 굶어 죽는다는 절박감에서요. 당시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도 못 꿨어요.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그땐 시장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여유가 좀 생기니까 욕심이 생겨요. 지금은 제가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들어요. 시장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없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포부죠.”


현재 제너럴 아이디어 본사의 직원은 40여 명. 그의 직원 채용 기준은 특이하다. 지원자의 학벌과 이력은 보지 않는다. 눈을 보고 대화하면서 눈빛이 살아 있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뽑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유머 감각. 아무리 일을 잘해도 팀워크를 해치는 사람은 사절이다. 그는 “잘 웃기는 애들이 좋아요. 일은 다 고만고만하지 않아요? 행복하게 살아야죠”라며 껄껄껄 웃는다. 그의 낙천주의적 태도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사흘 밤을 새워 일하고도 웃는 분이라고 한다. 잘 웃고, 사람 좋아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은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늘 사람이 들끓는다.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소통 능력 때문인 것 같아요.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을 살피면서 속 깊은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 말이에요. 소통 능력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디자인하는 데도 중요해요. 내가 원하는 디자인은 무엇이고,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소통이 기본이죠.”


그는 두 권의 책을 썼다. 《세상의 벽 하나를 빌리다》와 《최범석의 아이디어》. 그와 절친한 영화배우 류승범은 그의 책 추천사에 “최범석은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단골 많은 포장마차의 주인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썼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최범석은 희망의 아이콘이다. 《세상의…》는 2만 부 이상 팔렸다. 그는 매일 두 통 이상 팬레터를 받는다. 그에게 ‘제2의 최범석’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계산적이고 현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열심히 하고 옷에 미친 듯 빠져서 사는 건 기본이에요.”

사진 : 이창주
  • 200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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