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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뮤지션들 모아 앨범 내느라 2년 걸렸죠

음악감독 김정범

헤어진 남자친구를 찾아가 빌려 간 돈 350만 원을 당장 갚으라는 여자. 그 돈을 갚기 위해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는 남자와 그를 따라다니는 여자의 하루 여정을 담은 영화 〈멋진 하루〉. 하정우, 전도연이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를, 음악을 빼놓고 떠올릴 수 있을까?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이혼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된 암울한 처지에도 경쾌함과 여유,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 남자의 모습과 음악은 기막히게 어울렸다. 그래서 〈멋진 하루〉의 음악을 담은 OST는 영화 이상으로 인기를 얻었다.
영화 〈멋진 하루〉의 음악을 만들었던 음악감독 김정범이 세계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앨범을 만들었다.

그가 최근 내놓은 앨범 <푸디토리움> 1집에 참여한 뮤지션들을 열거하는 데만도 숨 가쁘다. 그래미상을 세 번 수상한 뉴욕대 교수 길 골드스타인, 2007년, 2008년 연속해서 그래미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드러머 마크 워커, 세계적인 뉴 에이지 첼리스트 유진 프리즌, 역시 그래미상 수상자인 베이시스트 오스카 스태그나로와 스티비 원더, 허비 행콕, 베이비 페이스 등 전설적인 뮤지션들과 작업해 온 드러머 테리 린 캐링턴, 브라질 최고의 싱어 송 라이터 파비오 카도레…. 그는 뉴욕,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상파울로 등지를 돌며 최고의 스튜디오에서 이들과 한 곡 한 곡씩 녹음해 1년 동안 앨범을 만들었다. 준비 기간까지 합해 2년이 걸린 작업이었다. 그는 그가 어릴 적부터 흠모해 왔다는 대가들과 어떻게 함께 작업할 수 있었을까?

“유진 프리즌은 중학생 때 심야 음악 프로그램에서 처음 듣고 좋아해 왔던 저의 우상이었죠. 꼭 그와 함께 음악을 하고 싶어 여러 번 편지를 보내고 집까지 찾아갔지만, 도통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버클리음대에 찾아가 ‘어디 가면 유진 프리즌을 만날 수 있는지’ 묻는데, 옆의 연습실에서 그의 첼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문을 여니 악보를 그리면서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브라질 투어를 앞두고 혼자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던 거죠. 제가 인사를 하자, ‘너, 나한테 편지 보낸 그 애구나. 미안하다. 내가 바빠서 답장을 못했어. 네가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라는 거예요.”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집으로 달려간 그는 자신이 그동안 낸 음악 CD와 새로 낼 앨범의 데모 CD를 가져와 건넸다.

“다음날 아침,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최고 뮤지션들과 작업하기 위해 그는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접촉했다. 그들이 어느 도시를 지나가는지, 어디서 공연하는지 정보를 입수하는 대로 날아가서 자신의 음악이 담긴 CD를 건넸다. 그는 아직 세계 음악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 그러나 음악은 국적과 나이, 명망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어 소통의 도구가 됐다. 연주자들 대부분이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했다. 그의 음악의 어떤 부분이 그들의 공감을 샀을까?

“제 음악을 우선 서정적이라고 평하더군요. 센서티브하고, 디테일이 돋보인다고도 하고요.”

이번 앨범의 주제는 ‘이별’. 설렘으로 시작했다 잔인하게 이별하고 재회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사랑에 대한 달콤 쌉사래한 기억을 더듬게 한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 브라질의 싱어송 라이터들이 한국어와 영어, 불어, 포르투갈어로 각기 노래를 부른다. 한국어 노래는 루시드 폴과 그가 불렀다. 작곡과 프로듀싱은 모두 그가 맡았지만, 작사는 싱어 송 라이터들이 자신이 부를 노래를 직접 썼다. 그래야 감성이 제일 잘 살아날 것이라 생각했다 한다. 다양한 국적의 뮤지션들이 참가해 다양한 리듬, 음악적 색깔이 조화를 이룬 게 이번 앨범의 특징. 기타, 드럼, 베이스 등 기본적인 사운드 외에 플루겔 혼, 페니 휘슬, 하모니카, 클라리넷 등 다양한 악기들이 활용됐다.

“녹음하는 과정에서 뮤지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녹음한 것을 함께 들으면서 이야기하다 다시 녹음하는 과정을 거치며 음악적 합일을 이뤘죠.”


함께 작업해 온 이윤기 감독과는 옷 입는 취향까지 비슷해요

그는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 정식 교육과정에서 음악공부를 한 것은 2004년 버클리음대로 유학간 게 처음이었다. 현재 그는 뉴욕대 석사과정 중이다. 미국 유학 전 그는 이미 독학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재즈와 팝, 월드뮤직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어느 한쪽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게 김정범 음악의 특징. 처음 그의 음악을 들었을 때는 외국 작곡가가 만든 것 같았는데, 다시 들어보니 어딘가 한국적인 느낌도 강했다.

“제가 추구하는 한국성은 ‘조선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회고적인 게 아닙니다. 요즘 서울을 다녀 보십시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여러 문화들이 섞여서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 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현재의 우리를 대변하는 한국성이지요.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하는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처음 음악에 빠져든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초등학교 때는 유로댄스팝, 중학교 때는 헤비메탈, 고등학교 때는 재즈에 차례로 빠져들었다. 어릴 때부터 CD를 모으고, 일본 음악잡지에 실린 차트 순위를 외우던 아이. 고등학교 때는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녹음한 테이프를 친구들에게 나눠 주고, 대학교 때부터는 클럽을 다니며 연주했고, 군대에 들어가서는 국방부 군악대에서 연주했다. 군악대에서 만난 친구들과 음악밴드 ‘푸딩’을 결성, 1집과 2집을 내면서 고정 팬을 만들었다.

“보통 밴드라면 록이나 헤비메탈 밴드를 떠올리잖아요? 첼로나 남미 타악기인 퍼큐션 등을 활용해 편안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죠.”

왜 밴드 이름을 ‘푸딩’으로 정했느냐고 물었더니 “어려서 처음 먹은 푸딩은 충격적이었어요. 촉촉하고 말랑말랑하면서도 탄력 있고, 달콤하고 향긋하고. 그런 음악을 하고 싶었죠”라고 답한다. 2003년 발표한 푸딩 1집 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쓴 곡들로 만든 앨범이다. 오래 병상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는 “괴로워서 뭐라도 해야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위로한다고 ‘누구나 겪는 일이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다’라며 뻔한 말을 하는 게 싫었어요. 말없이 그냥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죠.”


김정범의 음악은 이윤기 감독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5년 〈러브 토크〉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후 〈멋진 하루〉에 이어 신작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도 그가 음악을 맡는다. 이윤기 감독에 대해 “나이 차는 10년이나 나지만 정서나 취향이 놀랍도록 닮았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음식, 술도 비슷하고, 옷 입는 취향까지 닮았죠. ‘야, 네 재킷 멋지다’ ‘형, 가방 탐나는데’라고 주고받다 결국 ‘그래, 네 재킷과 내 가방을 맞바꾸자’고 할 정도죠. 이윤기 감독이 제 음악을 너무 좋아해 음악을 살리기 위해 영화 편집을 조율할 정도입니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처음 계획에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는데, 감독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음악을 만듭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헌팅 장소, 의상까지 꼼꼼히 체크하기도 하고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음악뿐 아니라 책, 영화, 연극에 고루 빠져 있었다. 주말이면 하루에 서너 편씩 연극과 영화를 봤다고. 대학 들어가서는 영화 서클에서 활동했다. 서클 선배가 박찬욱, 최동훈 감독.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뽑아내 스크린에 던진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영화나 심장이 녹아내리는 듯 공감을 자아내는 음악이나 모두 좋았다. 그는 지금, 영화에 음악적 색깔을 입히고 있다.

이번에 내놓은 앨범 <푸디토리움>은 푸딩에서 더 진화했다는 의미. “이제까지 ‘내가 음악하는 사람인가?’라는 회의가 있었다면, 이번 앨범은 음악하는 사람으로 처음 출발하는 자세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푸디토리움>은 6월 한 달간 예측불허의 장소에서의 게릴라 콘서트를 거쳐 7월 1일 세종 M 시어터에서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콘서트를 연다.

사진 : 이창주
  • 200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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