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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스트라이커’

화제 영화 〈마더〉 만든 봉준호 감독

축구로 치자면 봉준호(39)는 한국영화에 괴물처럼 등장한 스트라이커다. 전성기 때 게임마다 골을 꽂아 넣었던 브라질의 호나우두에 비견할 만한 ‘천재형’ 스트라이커다. 절친한 선배 감독이기도 한 박찬욱의 영화가 ‘골이 없어도, 혹은 골이 없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축구’라면 봉준호의 영화는 늘 그물이 출렁거리는 끝을 보고 나서야 완성되는 축구다. 취향에 따라 선호가 갈릴 수는 있다. 어떤 영화가 더 아름다운가도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영화가 더 재미있느냐에 대해서라면 적어도 한국 관객들의 경우엔 대체로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지 않나 싶다. 흥행기록이 말하는 바다. 〈괴물〉로 역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2007년, 1302만 명)을 보유한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화의 미학적, 상업적 최전방에 선 걸출한 스트라이커다. 한 번만 더 축구의 비유를 허락한다면 걸출한 스트라이커는 공을 갖고 있거나 말거나 관중석의 모든 시선을 자신에 집중시킨다. 그만큼 움직임 하나하나가 압도적이다.

봉준호도 그렇다. 〈괴물〉도 그랬고, 〈마더〉도 그랬다. 두 작품은 봉준호의 겨우 세 번째와 네 번째 장편영화였다. 처음 만날 때도, 늘 다시 마주칠 때도 봉준호에게서 가장 압도적인 면모는 182cm, 100kg에 이르는 거구다. 방에 처박혀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시나리오를 쓰는 수개월간은 몸무게가 100kg를 넘어서는데, 촬영과 후반작업을 하는 동안 두 자리로 돌아온다. 영화 완성 후 개봉 무렵, “요샌 자전거를 타고 있다”고 했다. 특유의 곱슬머리와 더불어 한번만 봐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그의 달변이다. 그의 말은 그의 영화처럼 늘 반론과 질문을 예상한 듯 주저 없고 빠르며 단호하고 명쾌하다. 좀처럼 허점이 없다. 5월 말 다시 만난 봉준호의 거구와 달변은 여전했다.


봉준호, ‘어미’를 말하다

“‘마더’에서 핵심은 물론 모성입니다. 숭고하기 이를 데 없는 모성이 일순간 집착이나 광기에 사로잡힌 행동으로 변할 때 감정을 떠나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이 엄마를 과연 인정할 수 있는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죠. 주연을 맡은 김혜자 선생님이 완성된 작품을 처음 보고 나서 ‘이 엄마는 짐승 같아요’라고 했어요. 짐승은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벗어나 있죠. 인간이 광기를 통해 짐승이 된 겁니다.”

〈마더〉는 봉준호의 격렬하고 압도적인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영화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일 자식, 좀 모자라지만 한없이 예쁘게 생긴 20대 아들(원빈)이 소녀를 끔찍하게 살해했단다. 아들은 그날 밤 일을 기억도 못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아니라고 해봐야 변호사는 돈만 밝힌다.

경찰은 아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사건을 덮었다. 엄마의 사투가 시작된다. 직접 증거를 모으고,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주하는 충격적 진실들. 관객의 감정은 철저하게 어머니(김혜자)의 감정을 따라간다. 처음엔 무기력하고, 그 다음엔 측은하다. 공포에 떨었다가 분노가 폭발한다. 진짜 범인을 미칠 듯이 잡고 싶었다가는 그 다음엔 죽이고 싶어진다. 마지막엔 이 모든 걸 잊고 싶어진다. 남는 것은 하염없는 슬픔이다. 누가 이 가여운 어미에게 돌을 던지랴. 봉준호 감독은 “애 엄마들을 불러서 영화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나라도 저러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윤리고, ‘어미’는 본능이라면 ‘마더’는 ‘어미의 윤리’를 다룬다. ‘어미’의 본능과 세상의 율법이 충돌하는 자리에서 빚어진 드라마는 격하다. 정서는 압도적이다. 영화는 ‘아들의 살인누명을 벗기려는 엄마의 사투’, 단 한 줄로 요약되지만 거대한 격랑은 어미의 싸움이 끝나는 바로 그곳에서 일기 시작한다. 영화의 오프닝, 기괴하고 낯설던 어머니의 춤은 엔딩에서 서러운 살풀이가 돼 관객의 가슴에 깊은 파문을 남긴다. 지난 5월 24일 폐막한 칸국제영화제에서 “왜 ‘경쟁부문’으로 초청되지 않고 ‘주목할 만한 시선’으로 왔는지 모르겠다”는 해외 언론의 평가를 받은 ‘마더’는 그만큼 그가 더 이상 재기 넘치는 젊은 작가이거나 대중영화를 잘 만드는 흥행감독이 아니라 거장의 시선과 호흡을 갖춘 감독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TV를 밝히던 중산층 집안의 소년

봉준호는 연세대 사회학과 출신이다. 학교 동아리에서 영화를 처음 시작해 졸업 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본격적인 영화수업을 받았다. 브라운관이 아닌 실제의 김혜자를 처음 본 것은 홍대 앞에 마련했던 대학시절 동아리 사무실에서였다. 그러니까 1980년대 말일 텐데, 무슨 드라마였는지 촬영지가 신촌이었다. 당시 김혜자의 집이 홍대 바로 근처였고, 김혜자는 동네 구멍가게 가듯 슬리퍼를 끌고 나와 촬영을 뚝딱 끝내고는 슬리퍼를 신고 도로 집으로 들어갔다. 경지에 이른 도사 같은 모습이 봉준호의 기억에 깊이 각인됐다.

“김혜자 선생님의 얼굴에서 어떤 불안과 히스테리를 느꼈죠. 제 추측이지만 김혜자 선생님도 국민엄마라는 수식어가 대단한 영광이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시겠어요? 문근영도 국민 여동생이란 말이 얼마나 싫겠어요? 저는 영화를 통해 (익숙한 것들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고,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충돌시키고 싶은 충동이 있어요. 김혜자와 살인사건, 혹은 김혜자와 섹스(극중 김혜자가 진범을 찾는 과정 중 다른 젊은이들의 섹스 장면을 몰래 지켜보는 장면이 있다), 얼마나 부조화스러운 것들입니까. 다행히 김혜자 선생님이 시나리오가 나온 지난 2005년 흔쾌히 출연을 응락해 주셨죠.”

모든 한국인처럼 봉준호도 TV를 통해 국민엄마를 줄곧 봐 왔다. 사실, 봉준호는 할리우드 키드이기 이전에 ‘테레비 키드’였다. 영상과 이야기에 관한 한 봉준호의 원체험은 스크린보다는 브라운관에 있다. “가족들과 함께 TV 앞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게 봉준호의 말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와 피의자가 자장면을 먹으며 〈수사반장〉을 지켜보던 장면, 그가 재발견한 중견 배우 변희봉은 TV를 유난히 밝히던 소년의 추억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드라마의 단골 조연이었던 변희봉은 봉준호가 어린 시절부터 영화감독이 되면 꼭 배우로 캐스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배우다. 변희봉은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뿐 아니라 단편영화 〈둔치〉에도 등장한다. 봉준호에게 김혜자는 ‘테레비’를 향한 소년의 열광, 그 정점인 셈이다. 그가 지켜봤던 김혜자는 〈전원일기〉의 국민엄마도 있었지만, 예컨대 1990년대 초 방영된 미니시리즈 〈여(女)〉 같은 작품도 있었다. 유괴한 아기를 친딸로 속여 애지중지 키웠으나 뒤늦게 진실을 안 딸에게 버림받고 미쳐 버리는 엄마다.



사회비판적인 시선, 모성에 꽂히다

봉 감독은 전형적인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미대 교수 출신의 중견 화가, 누나와 형은 모두 대학교수다. 외조부가 월북 소설가 구보 박태원이라는 사실도 유명하다.

“나도 몰랐는데, 어느 날 돌이켜보니 정말로 세 작품째 연속으로 교복 입은 여학생이 죽더군요. 사회에 비판적이라기보다는 내 속에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가 있는 것 같아요. 온실 같은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으니까 오히려 바깥세상으로 한 발 내딛는다면 추락할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이 더 컸던 것 아닐까요? 우리 집안도 물론 여느 가정과 다르지 않게 복잡한 사연도 있고, 히스테리컬한 문제도 있지요. 만약 내가 회사원이 됐다면 부적응자가 됐을 겁니다. 영화를 하게 돼 다행이지.”

많은 청년들이 그랬듯 강의실보다는 거리의 최루탄에 더 익숙했던 1980년대 말 대학가의 이념적 분위기도 봉 감독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터이다. 그는 집시법 위반 경력도 갖고 있다. 권력에 대한 비틀기와 비판은 그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살인의 추억〉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누구보다도 강하고 폭력적이지만 범인을 잡는 데는 무능력했던 1980년대 권위주의 시대를 풍자한다. 〈괴물〉은 괴물 대신 피해자를 감금하고 통제하는 권력을 보여준다. 〈괴물〉과 〈마더〉 모두 경찰 대신 얼핏 결핍되고 무능력해 보이는 존재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나선다. 공교롭게도 연속된 세 편 모두에서 소녀들은 교복을 입은 채 죽어 간다. 소녀들은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사회의 가장 약자다. 권력은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또 하나, 봉준호의 영화는 그의 첫 단편영화 제목인 〈지리멸렬〉을 빌려 말하자면 지리멸렬한 것들의 성스러움과 성스러운 것들의 지리멸렬함을 증명하는 데 바쳐진다. 〈지리멸렬〉에선 아침운동을 하면서 남의 문 앞에 놓여 있는 우유를 습관적으로 훔쳐 먹는 신문사 논설위원과 만취해 길가에서 용변을 누려다가 경비원에게 들키는 엘리트 검사, 그리고 도색잡지를 즐겨 보는 교수, 이들 세 사람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회문제에 관한 대담을 나눈다. 성의 혹은 법복으로 위장했던 존재들이 실상은 하잘 것 없고 비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음을 폭로하고, 열등하며 우스꽝스러웠던 것들이 사실은 숭고하고 뜻 깊은 존재였음을 드러낸다. 그 역설이 수반하는 웃음과 감동, 통쾌함이 봉준호 영화가 갖는 정서의 힘이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선 사회와 권력이 풍자의 대상이었다면, 〈마더〉는 절대적인 존재인 모성을 바닥까지 해부한다.

봉준호의 다음 여행은 〈설국열차〉다. 프랑스 작가 장 마르크 로셰트의 동명만화가 원작이다. 빙하시대로 다시 들어선 지구, 마지막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는 멈출 수 없는 열차에 오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묵시록적인 SF다. 칸마다 다른 계급과 인종, 직업의 사람들이 서열화돼 승차한 열차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봉 감독은 “만화에서 뼈대와 설정만을 빌려올 것”이라며 “6월부터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하고, 다국적 자본과 인력, 배우들이 투입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용의주도한 봉준호답게, 그 다음 작품도 머릿속에 있다. 〈마더〉의 폭발적인 마지막 30분이 이미 2004년 다 구상돼 있었듯이 말이다. 내용에 대해선 말을 아꼈지만, 김혜자 씨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사진 : 이창주
  • 200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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