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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 작가를 주목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초청받은 사진작가 김아타

빨강 만장을 두른 대형 리프트가 서서히 올라온다.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차이니스칼라 정장 차림의 김아타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원대 이주향 교수가 그를 향해 절을 한다. 다른 여자 한 명이 “Who are you?”라고 묻는다. 또 한 명은 옆에서 뛰고 또 한 명은 멀뚱거리며 이 상황을 지켜본다.
잠시 후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던 관객들의 함성과 함께 1만장의 사진이 뿌려졌다. 한지에 인쇄된 사진은 부드러운 활강으로 운하에 떨어져 수로를 따라 헤엄쳐 간다. 때 이른 더위에, 이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로 베니스의 열기는 한층 고조되었다.
2009년 6월 5일 오후 1시, 베니스의 팔라초 제노비오에서 열린 사진작가 김아타의 특별전 개막식 풍경이다.


김아타
1956년 창원 출생. 창원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2002년 영국의 파이든(Phaidon) 사 주최 ‘세계 100대 사진가’에 선정. 2002년 25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참여. 2005년 사진 전문 출판사 ‘어패처(Aperture)’에서 사진집 《뮤지엄 프로젝트》 발간. 2006년 뉴욕 국제사진센터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개인전 . 2007년 마이애미 아트 바젤 소더비 특별전 , 2008년 Leeum에서 개인전 , 2008년 조선일보 기획 ‘100년 후에도 잊혀지지 않을 미술작가’ 10인 선정. 2009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1997년 사진예술사 올해의 작가상 수상. 2002년 제1회 하남국제사진 페스티벌 국제사진가상, 2003년 이명동 사진상, 2007년 제6회 동강사진상, 2008년 하종현미술상. Microsoft Art Collection, Museum of Fine Arts(Houston), L.A county Museum of Art(Los Angeles)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 소장.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맞이하여 개최된 이 특별전에는 11월까지 장장 6개월간에 걸쳐 김아타의 15년간의 예술 역정이 펼쳐진다. 김아타의 이 특별전 참가는 한국 미술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각 나라가 자국 대표 작가들을 선보이는 비엔날레 본전과 달리 각국의 대표 작가들이 치열한 경합 끝에 전시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특별전의 의미는 더 각별하다. 2005년 재일교포 이우환의 전시가 있었지만 전시를 제안한 주체가 일본이어서 김아타는 한국 대표로는 처음으로 이 전시에 참여했다.

오프닝에 사용된 1만 장의 사진은 김아타가 로마 곳곳을 돌며 찍은 것 중 골라낸 1만 컷이다. 서양 문화의 원류로 영원한 보존 가치를 지닌 도시 로마는 김아타의 퍼포먼스를 통해 그렇게 공기 중에 흩어져 갔다. 이 도발적인 퍼포먼스는 그의 작품 세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팔라초 제노비오의 커다란 전시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해체’(1991~1995년), ‘뮤지엄’(1995~2001년), ‘온 에어’(2002~2009년)’ 시리즈는 다시 한 번 감탄과 경외심을 자아낸다. 이번 전시는 설치만도 보름이 넘게 걸렸다. 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면 마치 오래전에 짜놓은 각본이 있었던 것처럼 매우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그렇다. 그에게는 깊은 사유의 힘이 있다. 명징한 철학적인 사상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예술품으로 풀어 내는 집요한 힘! 이것이 바로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가장 큰 힘이었다. “편안하다. 지고 있던 것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오프닝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낸 직후 김아타의 소감이다.

그는 크다. 키가 185cm이다. 웃음소리도 호방하고 크다. 발걸음도 크고 생각도 크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보통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강한 카리스마가 풍겨 나온다. 그러나 그의 미소는 세상 모든 것을 껴안을 듯 선하고 부드럽다. 해외활동이 많은 김아타가 잠시 귀국했을때 평창동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가 활달하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문학과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던 공학도 김아타는 1980년대부터 카메라를 잡고 작품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처음에는 아들의 선택을 인정하지 못했다. 10년간의 긴 방황 끝에 아버지와 비로소 화해했다. 그는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길가의 돌멩이나 하루살이 같은 흔하고 하찮은 사물들에 관심을 갖도록 해 주셨다. 아버지는 나의 가장 큰 정신적 지주였다”라고 회고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신’에 관한 문제다. 그 정신을 찾아 광부, 원폭 피해자들, 정신병원 환자 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찍었다. 인간문화재들의 모습을 담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한국 최고의 강신무 김금화 씨의 초상 사진은 작은 이미지로만 보아도 강렬한 기가 느껴진다. 촬영을 거부하는 김금화 씨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김아타는 선언한다. “나는 정신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이 젊은 시절의 선언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Museum Project, # 019, Field series, 1997
알몸의 사람들을 밭에 볍씨를 뿌리듯 세팅하고 촬영한 <해체> 시리즈는 정신을 배제한 진보의 결과는 단지 파멸일 뿐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1995년부터 발표한 <뮤지엄 프로젝트> 시리즈는 유곽의 창녀들이나 불구의 몸을 한 상이군인들이 마치 박물관의 기념물들처럼 아크릴 박스 속에 담겨져 포즈를 취하고 있는 파격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허약하고 하찮은 것들을 박물관의 기념물처럼 영원한 존재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모든 개별자는 우주의 축소판이라는 그의 철학이 성숙하게 표현된 작품들이기도 하다. 삭발한 여인이 부처처럼 앉아 있는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그는 모델에게 삭발할 것을 설득하다 스스로 삭발을 감행했다. 삭발에 동그란 안경을 쓴 김아타의 모습이 이 무렵에 탄생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도상과 불교의 도상이 결합되거나, 아크릴 박스 안에서 처음 만나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은 발표 당시 한국 미술계에 큰 충격이었다.

Museum Project, # 026, Holocaust series, 1997
“나는 실존주의의 거창한 담론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작품이 무겁고 어렵다고 했다.” 작품의 미학적인 성취를 알아보는 사람들조차 김아타의 작품은 한국 미술시장의 논리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과 이해부족이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김아타의 강인한 정신력 덕분이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수련 방법은 그를 더욱 강하게 해 주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사물과 대화하면서 나의 실존을 확인해 가는 트레이닝 방법이다. 이는 내 삶과 예술 행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새로운 세계를 찾으려는 예술 행위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무서운 것은 기성관념이라는 사실을 이 트레이닝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철학을 담은 작품

김아타는 처음부터 보폭을 넓게 잡고 걸었다. 그의 이름 ‘아타(我他)’란 ‘너와 내가 같다’, 여기서 ‘너’를 우주로 해석하면 ‘내가 곧 우주와 같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작품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는 이 이름은 김석중이라는 본명보다 외국인들에게 쉽게 다가갔다. 그의 작품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는 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002년 영국의 미술전문 출판사인 파이든(Phaidon) 사는 4년마다 선정하는 ‘세계 100대 사진가’에 그를 뽑았고, 2005년에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사진 전문 출판사 ‘어패처(Aperture)’가 20만 달러를 들여서 그의 사진집을 발간하였다. 2006년 김아타는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의 국제사진센터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개인전 전을 가졌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사진 전문기관인 ICP의 전시가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되며 세계 현대미술 무대에 김아타는 성공적으로 입성하게 된다. 당시 이 전시를 진행한 큐레이터 크리스토퍼 필립스는 “뉴욕에서 김아타의 작품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뉴욕의 정신적, 철학적 공허함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라며 그의 작품을 정확하게 읽어 냈다. 바로 철학을 먹고 자란 작가 김아타의 작품이 뉴욕에서 제대로 먹혔던 것이다.

이 전시에 출품되었던 작품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얼음으로 된 모택동의 흉상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것을 찍은 세 컷의 사진이었다. 그는 그렇게 사회주의의 우상을 녹여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것은 어떤 것보다 강력한 우상 파괴였다. 대상을 얼음으로 조각하고 그것이 녹아 사라지는 과정을 작품으로 표현한 아이스 모놀로그는 세계 사진계를 놀라게 했다.

On-Air Project #113, Monologue Ice, portrat of Mao, 2006
뮤지엄 프로젝트가 ‘모든 사물은 존재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표명했다면 <온 에어> 시리즈는 반대로 ‘모든 사물은 결국 사라진다’ 것을 보여준다. <온 에어> 시리즈 중에서 8시간의 장노출을 사용한 작품 시리즈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번잡한 뉴욕의 타임 스퀘어를 8시간의 장노출로 찍은 사진에는 거리를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물결무늬로 남는다. 단순히 텅 빈 광장을 찍은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들의 흔적을 찍은 것이다. 뉴욕의 성공적인 입성을 통해서 그의 작품은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컬렉션, 사진 컬렉션으로 유명한 휴스턴 뮤지엄, LA 카운티 뮤지엄 등에 소장되며 작가로서의 주가를 높였다. 그 이후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그의 보폭은 더 커졌고, 베니스 특별전으로 그의 명성은 더 공고해졌다.

Indala, Washington DC-, 2008
8시간 장노출 작업은 뉴욕・베이징・베를린・델리・모스크바로 이어져 갔다. 그러나 이 작업은 진실의 상대적인 측면만 보여주었다. 사라진 것은 결국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것들, 즉 사람과 움직이는 것들뿐이었다. 건물은 남아 자리를 지켰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모든 것이 회색으로 사라져 간 <인달라> 시리즈일 것이다. 2008년 서울의 로댕갤러리 개인전에서 처음 이 작품을 선보였다.

On-Air Project #110-2, from the New York series, 2005 / #160-3, from Indo series, 2008 / # 210-1, from Paris series, 2008
이 작품을 보았을 때 내 존재의 하찮음과 유한함에 가슴이 저미듯 아파왔다. 예술 작품 앞에서 종교적인 숭고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인달라란 인도와 만다라를 합친 말이다. 가장 활기찬 인도의 시장을 1만 장 촬영해 디지털로 합성했는데, 그 결과는 그냥 회색의 뿌연 화면이다. 공(空)! 색즉시공이라는 말을 이렇게 정확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또 있을까? “서양에서의 공간(Space)이란 텅 빈 것(empty)이지만, 동양에서의 공(空)은 꽉 찬 것이다. 나는 이것을 작업을 통해서 확인해 나가고 싶었다.”

이 작품을 한국에서 처음 보았을 때 영화배우 김혜수는 눈물을 흘렸다 한다. 김아타의 팬인 그녀는 오프닝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베니스로 날아왔다.


이번 특별전 초청장은 얼음으로 된 파르테논 신전이 녹아내리는 것을 촬영한 아이스 모놀로그 시리즈다. 서양 문화 원류의 한복판에서 로마를 공기 중에 날리고, 파르테논을 녹이는 이 도발적인 행위들이 바로 동양철학의 깊이와 포용력을 보여주려는 그의 작가적인 시도이다. 그는 말한다.

“모든 개체는 소중하다. 거기에는 우주가 담겨 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진다.”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릴 것이다. 콧대 높은 서양 문화의 아이콘도, 무소불위의 권력자도 결국은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김아타의 명성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사진 : 김선아
  • 200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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