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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 줄 아이디어 그게 디자인이죠

‘2009 차세대 디자이너’ 김현빈

글 : 김민희 TOPCLASS 기자・이근평 인턴기자
지식경제부, 한국디자인진흥원, 매일경제신문이 선정한 ‘2009 차세대 디자이너’ 작품 중 “아하” 탄성을 자아낸 것이 있다. 책상 모서리에 끼워 넣을 수 있는 컵 받침대 ‘드링클립’. 복잡한 책상 위에 컵을 올려놓았다 실수로 쏟아 낭패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탁’ 무릎을 칠 만한 아이디어 제품이다. 자투리 공간에 끼우는 연두색 클립은 시각적으로도 예쁘다. ‘드링클립’은 주전자 뚜껑에 만든 구멍이나 지우개 달린 연필처럼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제품의 디자이너 김현빈 씨가 인터뷰 장소인 스튜디오에 들어서는데, 모델 같았다. 174cm 후리후리한 키에 길게 찢어진 외꺼풀 눈, 시원스런 입매, 잘록한 허리와 긴 다리.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델이라 해도 손색없을 것 같았다. 그는 LG전자 디자인연구소의 주임 디자이너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 사이트 ‘빈닷컴(www.beeeen.com)’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차세대 디자이너’에 선정된 그는 하루 네 시간씩 자며 두 가지 일을 해낸다고 한다.

‘드링클립’ 이외에도 그가 고안한 반짝반짝한 아이디어 제품들이 더 있다. 소리의 크기에 따라 빛의 모양이 달라지는 조명 ‘미스터 오케스트라’와 납작한 뒤집개처럼 생긴, 열판을 대기만 하면 식빵이 구워지는 ‘포터블 토스터’. 이날 그는 ‘미스터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왔다. 조명 기기는 박수 소리와 목소리의 크기에 따라 꽃 모양이 됐다가, 겹겹의 원 모양이 됐다 햇살처럼 퍼지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는 “카페나 클럽같이 비트가 있는 곳에 가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형태의 조명이 나와요. 또 바닥에 아주 근접하게 설치하면 베이스음이 울릴 때마다 빛의 패턴이 바뀌죠”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2007년 광주 비엔날레에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포터블 토스터’는 선행 디자인으로, 관련 기술을 수집해 2~3년 후 실제 제품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드링클립’에 쏟아진 관심은 뜨겁다.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 판매된 바 있고, 중국 북경에서 열린 ‘산업디자인 엑스포’에서 개인전에 초대됐다. 홍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제품 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마인드는 “작품이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고안한 아이디어 제품은 머리를 싸매고 끙끙 고심한 혈투의 결과가 아니라 ‘생활 속 편리’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들이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자신의 방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제 작업실 책상이에요. 굉장히 지저분하죠? 시간 날 때마다 정리하지만 금방 이렇게 꽉 차 버려요. 그래서 책상 위에 음료수를 놓을 공간이 없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엎지르죠. 그러다가 (책상 모서리 공간을 가리키며) 이 공간을 활용할 수 없을까? 생각했고, 드링클립이 떠올랐죠.”

그는 인터뷰 중 ‘활용’, ‘효용’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어떻게 하면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까’라는 생각으로 꽉 찬 듯했다. 그가 “구석하면 뭐가 떠오르세요?”라고 묻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그는 “저에게 구석은 쓰지 않는 공간이에요. 지금 저 구석 공간을 보면서 ‘뭘로 쓰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은 그가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대상 1호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자아상을 ‘자기 계발, 비즈니스, 사회생활 세 가지가 균형 잡힌 삶’으로 정하고, 그 삶을 위해 자기만의 다이어리를 제리 코라는 친구와 함께 만들었다. 그가 보여준 다이어리는 날짜별로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있고, 활동 내역이 꼼꼼히 적혀 있다.

“다이어리 이름을 ‘Balance your life’라고 했어요. 한 주를 돌아보며 ‘이번 주에는 일만 하느라 친구들을 못 만났구나’ 혹은 ‘자기 계발에 빠져서 일을 소홀히 했구나’ 하는 걸 깨달을 수 있죠.”


학교 가는 대신 책 읽고 동물 키우던 어린 시절

소리의 크기에 따라 빛의 모양이 달라지는 조명 ‘미스터 오케스트라’(위). 책상 모서리에 끼우는 컵 받침대 ‘드링클립’(아래).
그는 어릴 때 ‘게으른 말썽꾸러기’로 자랐다. 오빠와 남동생 틈에 끼여 남자처럼 뛰놀면서 학교도 제대로 가지 않았다. 그의 취미는 독서와 동물 키우기. 책을 읽으며 공상에 빠져 있든가 각종 동물 돌보기가 큰 낙이었다. 학교 앞에서 병아리, 오리새끼를 사 와 닭과 어미오리로 키워 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런 그를 나무라는 대신 볏단을 구해 와 아파트 베란다를 동물농장처럼 꾸며 주었다 한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하던 경험이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게으름뱅이던 그가 어떻게 시간 관리의 달인이 됐을까? 대학교 1학년 때 그가 멘토로 여기던 한 교수님의 말 한마디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았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1학년 때까지 허송세월을 보냈어요. 뚜렷한 목표도 없었고, 하루에 14시간씩 자곤 했죠. 그런데 그 분이 당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캠퍼스 언덕을 걷는 시간이 아까워서 하루도 빠짐없이 뛰어다니셨다고요. 그 순간 제 자신이 한심해지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뼈저린 각성이 들었죠.”

그때부터 그는 딴 사람이 됐다 한다. ‘산업디자이너로서 뭔가 해보자’고 결심한 그는 세상에 널린 다양한 소스들을 향해 오감을 활짝 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작품들을 보며 자극을 받고, 영화와 독서, 여행 등을 통해 아이디어의 원소들을 머릿속에 넣었다. 남들과 다른 창조적인 발상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는 창조적 사고의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했다.

“은하계에도 자성을 가진 물질이 있잖아요. 우주 미아로 존재하는 원소나 분자가 외부 자극으로 뭉쳐서 은하계를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어떤 에너지를 가진 영감들이 자극이 되어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작은 소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전해요. 제 아이디어의 원소 중에서 소재와 관련 있는 원소들이 결합하면서 가치 있는 아이디어로 수렴되는 거죠.”

그는 늘 정형화된 사고의 패턴을 거부하려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LG전자에서 하는 일은 휴대폰 디자인(선행 디자인). 이 일만으로도 빡빡할 텐데 그는 왜,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 걸까? 그는 “동료들이 ‘피부 관리는 안 하고 밤에 뭐하느냐’며 농담해요” 하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1년에 5일밖에 못 쉰 적도 있고, 5일 동안 회사에서 밤을 샌 적도 있죠. LG전자 일도 물론 재밌고 보람 있지만 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강했어요.”

그는 “LG는 나에게 과분한 회사”라고 덧붙였다. 그의 나이 28세. 나이에 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한 그는 “철들면서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제 일에 대해 질투와 질시 어린 시선도 있지만, 대부분 응원과 격려를 해 주세요. 처음에는 ‘혼자 꿋꿋이 해야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죠. 주변 분들의 응원과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 일은 못했을 거예요. 도움도 받고 보답도 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앞으로 꿈이요? 당돌할 수도 있는데, 먼 훗날엔 디자인 학교도 세우고, 장학재단도 만들고 싶어요.”

밤 11시가 넘은 시각, 퇴근 후 저녁도 거르고 곧바로 인터뷰하고 사진 촬영에 응했는데도 그는 쌩쌩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자신의 차로 기자의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는 “아직 초저녁인데요, 뭘”이라고 말했다.

사진 : 김진구
  • 200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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