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출신의 잘나가던 삼성맨들, 왜 요리사가 됐을까?

장순규 ‘토마토 이야기’ 대표, 조장현 ‘키친플로’ 대표

삼성전자에서 잘나가던 두 남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사가 됐다. 방배동 서래마을에 있는 퓨전 레스토랑 ‘키친플로’의 조장현(42) 대표와 프랜차이즈 이탤리언 레스토랑 ‘토마토 이야기’ 장순규(40) 대표. 둘은 신기하리만큼 닮은꼴이다. 둘 다 연세대 공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또 둘 다 회사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서양 음식 요리사가 됐다. 퇴사 시기도 비슷하다.

장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나같이 이상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며 조 대표를 소개해 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었는데, 최근 한 와인 시음회에 갔다가 알게 됐다고 한다. 기자의 주선으로 두 번째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은 인터뷰가 끝난 후 “소주 한잔하자”며 서로를 끌어당겼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을 버리고 자신들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제2의 인생길에 과감히 들어선 두 사람. 두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대사가 떠올랐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 시간의 제약은 없다. 시간은 그냥 지나간다.”


▣ 장순규 ‘토마토 이야기’ 대표

이탤리언 레스토랑 사장이 된 반도체 전문가


동글동글한 곰돌이 인상에다 장난기 가득한 개구쟁이 소년의 눈빛, 무슨 이야기를 하든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의 ‘토마토 이야기’ 장순규 대표는 누가 봐도 반도체 전문가보다 요리사가 더 잘 어울린다. 논현동 본점에서 만난 장 대표는 “제가 기삿거리가 되나요?”라며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간판도 공대 출신답게 치장이 없다. 널찍한 간판 한구석에 명조체로 ‘토마토 이야기’라고 쓰여 있고, 토마토 그림을 하나 덩그러니 넣었다.

그는 1996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1기가 D램 개발의 주역이다. 1995년 소문난 인재들이 모인다는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파트에 입사, 4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왜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사가 됐을까. 황창규 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특강할 때 종종 그를 언급한다고 한다. “반도체를 만들다가 피자를 만드는 이상한 사람도 있다”며 “닮지 말아야 할 선배”로 거론하는 것.

장 대표는 평범함을 못 참는 성격이다. 어려서부터 ‘괴짜’ ‘엽기’ ‘튀는 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삼성전자 근무 시절에는 머리카락을 빨간색으로 염색하고 다녀 회사에서 ‘빨간 머리’로 유명했고, 대학 재학 시절에는 반바지를 입고 넥타이를 매는 등 튀는 복장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재미’를 추구한다.

“반도체 연구도 재미있고 보람 있었어요. 하지만 소통의 벽을 느꼈죠.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이 일 이야기를 하면 대개 알아듣는데, 제가 친구나 지인들에게 회사 이야기를 하면 다들 ‘야, 머리 아프다. 그만 해’ 해요. 제 일을 이해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대여섯 명밖에 없었어요.”

사람 좋아하고, 대화 좋아하는 그에게 ‘소통 불능’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거기에 과중한 업무량은 그에게 ‘삶에서 소중한 것’을 진지하게 되묻게 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는 제 생활에 회사밖에 없었어요. 하루 네 시간 이상 잠을 잔 기억이 거의 없으니까요. 차는커녕 점심도 여유 있게 먹을 수 없었죠. 건강이 나빠져 6개월 휴직계를 냈는데, 일이 너무 밀려 3개월 만에 복직해야 했어요. 그때 생각했죠. ‘언젠가는 회사를 그만두게 될 텐데, 떠밀려서 나가지 말고 박수 칠 때 떠나자’라고요.”

그는 식도락가다.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취미인 그는 결혼한 후 요리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아내와 어머니의 손맛이 매우 달랐는데,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 직접 음식을 만들게 됐다. 어머니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면서 요리의 세계에 발을 디딘 그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내 손으로 실컷 만들어서 먹고 싶다’, ‘요리하면 잘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고, 제2의 인생길을 요리사로 정했다.

퇴사가 쉽지 않았다. 사직서를 제출한 후 2개월이 넘게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이유’를 윗사람에게 설득해야 했다.

“윗분들한테 ‘엔지니어가 아닌 전혀 새로운 길을 갈 겁니다’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으세요. ‘어느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느냐, 연봉을 얼마 준다고 하더냐, 더 공부시켜 줄 테니 그냥 있어라’라며 잡았죠. 요리사가 되겠다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했어요.”(웃음)

그는 퇴직하자마자 조리사 시험에 도전했다. “공부하던 사람은 시험에 강하잖아요”라며 웃는다. 요리 재료 손질 하나, 칼질 하나를 할 때에도 효율과 원리를 따진 그는 한식・양식 조리사 시험에 응시해 둘 다 한 번에 합격했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구나’ 하고 느꼈다 한다.


“식당 열 때도 데이터 수집 후 예상 고객 분석부터 했죠”

‘토마토 이야기’는 ‘고객이 원하는 파스타를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콘셉트의 이탤리언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다. 논현동 본점 외에 방배점과 역삼점 분점이 있다. 이곳의 메뉴는 100가지가 넘는다. 소스와 토핑, 면 종류의 조합에 따라 메뉴가 결정되는 것. 소스를 토마토, 크림, 올리브오일, 아라비아타 중 무엇으로 할 것인지, 토핑을 버섯, 해산물, 봉골레, 미트 소스, 치킨, 베이컨 중 무엇으로 할 것인지, 파스타 면을 펜네, 페투치니, 스파게티 중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고객이 취향대로 고르면 된다. 이탤리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고객을 위해 김치 필라프, 돈가스 등의 메뉴를 추가했다. 경우의 수에 따라 조합하는 메뉴 스타일이 반도체의 퍼즐을 맞추는 것과 흡사하다.

이곳은 ‘집같이 편안한 식당’을 추구한다. 내부 인테리어는 세련되지 않지만 편안하고, 파스타도 집에서 엄마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는 맛 같다. 가격대는 7000~8000원 수준. 기자 일행은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와 크림치즈 스파게티, 돈가스를 맛봤는데, 가격 대비 훌륭했다. 재료를 아낌없이 넣었고, 정형화되지 않은 맛이라 정감이 갔다. 그래서인지 고객 대부분이 단골 손님이라고 한다.

퇴사한 해인 2002년 오픈한 ‘토마토 이야기’는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사업 근처에도 가 본 적 없는 그가 초창기부터 손님몰이를 한 비결은 뭘까? ‘재료를 아끼지 않고, 고객 맞춤형 파스타를 만든다’는 콘셉트가 고객에게 어필한 것이 첫 번째 비결. 거기에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철저한 준비 과정이 있었다.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조사했다”고 말했다. 가게 터가 정해지자 두 명이 하루 종일 가게 앞에 앉아서 유동인구를 분석했다. 시간대를 나누어서 성별, 나이별로 유동인구의 그래프를 만들었는데, 그 결과 점심 시간대에 30대 여성이 가장 많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데이터에 근거해 메뉴를 구상했고, 인테리어에도 참고했다고 한다. 파스타에 들어가는 재료는 그램 단위까지 정량화했다.

무엇이든 “왜?”라고 의문을 품는 과학적 자세가 요리 연구에도 적용됐다. 그의 요리는 철저히 독학의 산물이다. 어떤 음식이든 맛을 보면 재료와 조리법이 대충 머릿속에 그려진다니 미각은 타고난 것 같다. 요리책에 나온 레시피를 따라 만들기보다 자신의 미각을 바탕으로 ‘실험’한 후 이를 표준화하여 메뉴를 짰다. 반도체 전문 지식과 기술을 버리고 과감히 요리사의 길을 택한 그에게 후회는 없는지, 전문 지식이 아깝지 않은지 물었다.

“일을 통해 쌓아 놓은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까워요. 하지만 거기에서 일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가지치기라고 해야 하나요? 큰 방향을 잡을 때, 확률이 낮은 것을 잘라 나가는 방법을 배웠어요.”

전직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저지르고 보는 거 아닌가요? 단 계산을 치밀하게 해야 해요.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과 실제로 뛰어드는 건 달라요. 저도 요리사가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어요. 매일 발바닥이 납작해지는 느낌이에요. 처음 6개월 동안은 팔이 퉁퉁 붓고, 어깨가 뻐근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죠.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요.”

사진 : 문지민


▣ 조장현 ‘키친플로’ 대표

35세에 요리 배우러 영국으로 떠났죠


트렌디한 레스토랑이 즐비한 방배동 서래마을에 위치한 ‘키친플로’는 미식가들 사이에 손꼽히는 곳이다. 소품 가게를 방불케 하는 아기자기한 외관, 아늑한 내부, 오픈 주방 등 분위기에서도 빠지지 않고, 프랑스 요리를 기본으로 아시안 스타일을 덧입히는 ‘프렌치 아시안 퓨전 요리’는 웬만한 호텔 요리에 비견해도 손색없다.

이 레스토랑은 삼성전자 출신의 남편 조장현 대표와 교사 출신 아내 한혜선 씨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둘은 손님들로부터 ‘남매 같은 부부’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메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 정다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부부가 직접 요리도 하고, 손님을 가족처럼 맞이할 것입니다.”

조장현 대표는 ‘토마토 이야기’ 장순규 대표와 완전 딴판이다. 장순규 대표가 ‘유들유들한 곰돌이’ 이미지라면, 조장현 대표는 ‘예민한 장인’의 이미지다. 그가 요리하는 모습은 진지하다 못해 신성한 기운마저 감돈다. 말투도 다르다. 장 대표의 말은 유창하고 논리 정연하지만, 조 대표는 꼭 필요한 말만 천천히 이어간다.

조장현 대표는 연세대 기계공학과 졸업 후 삼성전자 해외영업부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해외 출장을 가면 바이어들이 반들반들 윤이나는 외제차로 모시고, 으리으리한 호텔 컨퍼런스 홀에서 회의를 하던 그는 정장을 벗어던지고 하루 종일 요리사 복장으로 지낸다. 그는 “너무 많이 돌아왔어요”라며 운을 뗐다.

“고등학교 때까지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저 남들이 선망하는 대학의 인기 학과, 직장을 택했던 겁니다.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생각하는 인생을 살아왔어요. 해외영업은 멋있는 일이지만 제 적성에는 맞지 않았어요.”


그의 관심 분야는 미술이었다. 장남이자 어른 말을 거역하지 않는 모범생이었던 그는 집안의 반대로 미대 진학을 포기했고, 주변의 권유로 기계공학과를 택했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의 당시 꿈은 임원이 되고, 최고 경영진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회사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앞만 보고 달려가던 그에게 제동을 건 사건들이 이어졌다. 당시 삼성전자는 컴팩의 프린터를 OEM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었다. 곧 미국 휴스턴에 컴팩 관련 지사가 생기고 그가 파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컴팩이 HP와 합병하면서 지사 설립이 무산됐다. 또 하나, 헝가리에 지역전문가로 파견될 예정이었으나 IMF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 봤죠.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그러다 우연히 미국의 스타 요리사 찰리 트로터의 이야기를 알게 됐죠. 정치학을 공부하다 요리사가 됐더라고요.”

이 순간 해머로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저거다’ 싶었다. 요리도 예술의 한 분야이기에 미적 감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요리에 관심이 없었고 식도락가도 아니었지만,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다. 레스토랑 곳곳에는 그의 감각이 녹아들어 있다. 2층 벽을 한 가득 메운 꽃 그림은 갤러리를 방불케 하고, 접시에 담긴 요리는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입으로 먹기 전에 눈으로 즐기는 요리다. 그에게 지금의 삶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상당히 만족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마흔세 살인데,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나와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무엇보다 일 자체가 재미있어요. 요리에 몰입하는 순간만큼 황홀한 순간이 없어요.”


끊임없는 실험으로 새로운 요리 내놓아

부부는 캠퍼스 커플로 만나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아내 한혜선 씨는 “이 사람은 쉬지 않아요. 영업 시간이 끝나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요”라고 말했다. 이곳의 ‘오늘의 코스’는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을 대변한다. 주로 제철 재료로 만드는데 2~3일 간격으로 바뀐다. 기자가 찾은 날, 파스타는 멍게 크림소스 스파게티, 메인 요리는 거제도산 숭어구이와 닭 된장 숯불구이였다. 숭어 요리는 으깬 감자 위에 구운 숭어를 얹고, 아스파라거스와 얇게 저며 튀긴 마늘을 곁들였다. 닭 요리는 된장과 청주에 하루 재워 둔 닭을 숯불에 구워 바나나 잎에 싼 찰밥과 함께 냈다. 애피타이저와 빵, 수프, 파스타, 메인 요리와 아이스크림, 커피가 차례로 나오는 ‘오늘의 코스 요리’의 가격은 평일 점심 기준 2만 원. 수준 높은 음식,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2001년, 요리를 배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 ‘황당하다’ ‘어처구니가 없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는 “이때가 아니면 다시는 못 할 것 같아서 용기를 냈다”고 한다. 그를 움직인 건 무엇보다 아이들이었다.

“어차피 요리 유학을 가야 한다면 아이들 영어 교육에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1, 2학년일 때 영어권 국가로 가자고 했죠. 그래서 영국의 르 코르동 블루를 택했지요.”

퇴직금과 살던 집 전세금을 탈탈 털어서 영국으로 갔지만 영국의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3개월 만에 돈이 바닥났다. 그래서 하게 된 아르바이트가 ‘글라스 컬렉터’. 테이블의 그릇들을 수거해 설거지하는 일이었다. 요리 수업이 없는 날엔 하루 10시간을 일했다. 아르바이트생에겐 점심을 제공하지 않아 손님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설거지하다 운 적도 있어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이렇게 고생한다고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독하게 마음먹었죠. ‘과거를 돌아보지 말자. 뒤돌아보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내 자신이 소금기둥이 돼 버린다’고요.”

코르동 블루에서 공부를 마친 후에는 런던의 레스토랑에서 실전을 다졌다. 클래식한 프렌치 레스토랑 ‘셰 니코’, 셰니코에서 만든 캐주얼 레스토랑 ‘데카’,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 ‘아시아드 쿠바’, 일식 퓨전 레스토랑 ‘주마’ 등 다양한 스타일의 레스토랑을 다니면서 경험을 쌓았다. ‘주마’에 취직할 때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요리를 수채화로 그려 갔더니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2005년 오픈한 키친 플로는 오픈 3개월 만에 안정을 찾았다. 매너리즘에 빠질 법도 하지만 조 대표는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를 연구한다. 하몽, 수제 햄, 모차렐라 치즈까지 직접 만든다. 그는 “이게 진짜 내 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용기 있는 결단과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죠. ‘아빠는 35세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너희들은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용기를 내서 시작해라’라고요.”

사진 : 신규철
  • 200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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