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박쥐〉에서 뱀파이어 신부가 된 한국영화의 얼굴 송강호

송강호(42)는 지금, 한국영화 최고다. 그리고 송강호는 당대 최고의 한국영화 감독들과 작업을 해 왔다.
박찬욱과 세 편을 같이했고, 김지운과도 세 번(〈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만났다. 이창동과는 두 편(〈초록물고기〉 〈밀양〉), 봉준호와도 두 편(〈살인의 추억〉 〈괴물〉)을 했다. 그렇게해서 총 17편(목소리 연기, 카메오 출연 제외)의 영화에 출연했다. 송강호는 감독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순으로 말한다. 그리고 ‘가나다순’임을 밝혀 달라고 한다. 송강호는 그들과 닮아 간다고 했다.
“감독마다 세계와 스타일이 다른데, 그들의 세계가 다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장르적인 변주가 주는 김지운 감독의 묘한 매력, 박찬욱 감독의 창의적이고 예술가적인 기질과 건강한 냉소, 치밀하고 정교한 드라마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봉준호 감독의 시선, 이창동 감독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등이 내 안의 세계와 조금씩 닮아 가는 것 같다.”

송강호는 박찬욱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영화 〈박쥐〉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황금종려상을 노리는 경쟁 부문으로는 〈밀양〉(2007년) 이후 두 번째, 비경쟁이나 비공식 부문 초청작이었던 〈괴물〉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까지 포함하면 벌써 네 번째 칸으로 향하게 됐다.

〈박쥐〉의 개봉을 앞둔 지난 4월 말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송강호를 만났다. 역시나 전날 박찬욱(46) 감독과 “간단히 한잔하자는 게 그만 끝까지 가는 바람에” 송강호는 해장도 못한 속을 움켜쥐고 얼굴은 부기도 빠지지 않은 아침이었다. 송강호와는 인터뷰와 이런저런 자리에서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느낀 것은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걸어가는 ‘괴물’ 같은 배우의 초상이었다.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감독들의 경지와 세계가 영화 속에서는 송강호의 몸으로, 인터뷰에서는 입으로 표현됐다.

박쥐가 쥐의 몸과 새의 날개를 가진 동물이라면 〈박쥐〉는 박찬욱의 머리와 송강호의 몸으로 빚어진 영화다. 송강호는 욕망, 쾌락, 범죄, 죄의식, 속죄, 구원 같은 단어로 표현되는 박찬욱의 세계를 완벽하게 육화했다. 박찬욱 감독이 송강호에게 〈박쥐〉프로젝트를 처음 말한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 때였으니 10년 전이다. 당시 박찬욱의 머릿속에서 송강호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신부였다. 몇 년 후 구상에선 뱀파이어가 됐으며, 최종적으론 불륜과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 사제로 세상에 나왔다.



미래를 알 수 없던 무명 시절, 술친구로 만난 박찬욱과 송강호

지금이야 박찬욱, 송강호가 한국영화의 최고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지만, 둘이 처음 만난 10여 년 전엔 둘 모두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30대 청년들이었다. 36세의 박찬욱은 첫 두 편의 영화를 모두 ‘말아먹은 뒤’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돌아다니며 이른바 ‘보따리’ 장사를 하다가 새 작품에 고용돼 겨우 백수 신세를 면한 때였고, 32세의 송강호는 〈초록물고기〉 〈넘버3〉로 주목받으며 단역에서 일약 주조연급으로 떠오른 때였다.

“처음 만난 때 기억하죠. 〈공동경비구역 JSA〉에 캐스팅된 때였어요. 저는 당시 얼굴도 모르던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기로 했다더군요(‘JSA’는 영화사가 가지고 있던 기획이었고, 송강호와 박찬욱은 모두 영화사에서 따로 기용된 입장이었다). 한옥이던 영화사에서 처음 만났는데, 길게 복도식이었어요. 저쪽에서 ‘바바리’(트렌치코트)를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박 감독이 씩 웃으면서 걸어 들어오더군요. 지금만큼 살도 안 붙었을 때였거든요. ‘영화감독이 저렇게 멋있을 수도 있나’라는 생각이 듭디다.”

〈JSA〉에선 북한 사투리가 잘 안 돼 고생하긴 했지만 박찬욱 감독과는 금방 궁합이 맞았다. 술자리에선 더욱 그랬다. 당시엔 영화 관객 대부분이 이름만 듣고는 “누구?”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할 감독과 배우였지만 그들은 서로 평생 갈 술친구이자 영화적 동지를 만난 것이다. 당시 〈박쥐〉에 관한 아이디어, 정확히 말하자면 계명을 어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신부의 이야기를 두 사람이 했고, 결국 10년 만에 약속이 지켜졌다.

“박찬욱 감독과는 작품을 같이하지 않아도 거의 매일 보는 사이예요. 그래도 저는 ‘감독님’, 감독님은 ‘강호 씨’라고 서로 불러요. (이)병헌(39) 씨는 〈JSA〉 끝나고 어느 순간부터 형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래서 ‘언제부터 저 두 사람이 저렇게 됐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죠.(웃음) 배우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게 배우로서 예우를 다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술 마시면서는 거의 서로 반말하죠.”

송강호를 영화판으로 불러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이창동 감독이었다. 연극 〈비언소〉에 출연 중이던 송강호를 이창동 감독이 보고 〈초록물고기〉에 기용했다. 이때까지 송강호는 낮에는 영화 촬영, 밤에는 연극 공연 등 닥치는 대로 연기하면서 갓 태어난 아들과 아내를 먹여살려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작품으로는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가 있다. 모두 연극 공연 중 출연한 단역이었다. 〈돼지…〉에서는 주인공이 술자리에서 만나는 여러 친구 중 한 명으로 등장하고, 〈나쁜 영화〉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카메라에 행려 노숙인으로 잠깐 모습을 비춘다.

그전까지 송강호는 1991년 연극 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6~7년간 소위 ‘대학로 밥’을 먹었다. 당시에 대해 송강호는 “영화는 안중에도 없었고 먹고사는 것이 급해서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꿈도 꾸기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떠올린다. 지금이야 연극계도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90년대 초반 연극계에 입문한 송강호는 2년이 지나서야 첫 개런티를 받을 수 있었다. 스물다섯 살 때였다. 2개월간 연습하고 2개월간 공연해서 4개월치 보수로 35만 원을 받아 쥐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너무 각박했다”던 시절이다.

김해고를 졸업한 송강호의 10대 후반~20대 초반도 녹록지 않았다. 두 번의 낙방 끝에 간신히 입학한 대학(부산 경상대)마저도 집안 형편 때문에 휴학하고 입대했다. 제대 후엔 대학에서 풍물패를 하던 여대생과 만나 6년간 연애 끝에 스물여덟에 결혼했다. 하지만 신혼여행조차 가지 못했다. 송강호는 지난 2005년 〈괴물〉 촬영을 끝내고 다녀오지 못한 신혼여행을 가족여행으로 대신하며 한을 풀었다. 송강호가 배우로서 주목받은 것은 〈초록물고기〉와 〈넘버3〉에서 연이은 깡패 연기였다. 특히 〈넘버3〉에서 더듬거리면서 “배배배배신이야…”라고 말하는 순간의 연기는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할 만하다.

〈초록물고기〉와 〈넘버3〉는 충무로에 즉각 심상치 않은 기류를 만들었다. 송강호에 열광하는 팬과 제작자, 그리고 감독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9년 〈JSA〉에서도 주연을 맡았지만 이병헌이 있었고 신하균도 있었으며 이영애도 나왔다. 그가 명실상부한 ‘원톱’이 된 것은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서였다. 2000년 〈반칙왕〉이었다. 이 작품은 〈조용한 가족〉에 이어 김지운 감독과 두 번째 작업이었지만 첫 단독 주연작이었던 만큼 배우로서 가장 외롭고 힘들게 찍었던 영화다. 스크린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연기는 전투 같았다. 그 힘든 여정 속에서 둘째인 예쁜 딸을 얻었고, 그 딸은 김지운 감독과 세 번째 만났을 때(〈놈놈놈〉) 아홉 살이 돼 의젓하게 시사회 객석 하나를 차지했다. 딸이 재미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으니 기분이 좋았다. 열네 살이 된 맏이는 〈놈놈놈〉과 〈괴물〉 〈반칙왕〉을 가장 좋아한단다. 일부 팬들은 여전히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으로 꼽는 〈복수는 나의 것〉이나 이번 작품 〈박쥐〉를 못 보여주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많이 ‘하드’한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이기 때문이다.

송강호는 영화 데뷔 12년째가 됐다. 넘버3로 시작해 넘버1으로 지냈던 지난 몇 년간 많은 일과 변화가 있었다. 분유 값을 걱정해야 했던 갓난아이들은 훌쩍 커서 아빠 영화를 보고 이리왈 저리왈 할 때가 됐다. 그동안 송강호는 한두 컷 나오기 힘들었던 단역에서 출발해 인상적인 조연을 거쳐 주연 배우로 성장했다. 그리고 수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연기와 흥행에서 송강호를 능가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한국 배우를 찾기란 어렵다. 변함없는 건 자기가 얘기하고는 지레 먼저 웃어 버리는 특유의 ‘딱따구리 웃음’(영화와 똑같다)과 사람 좋아 보이는 수작이다.

봉준호 감독이 송강호에게 발견했거나 선사한 가장 멋진 순간은 〈살인의 추억〉에서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커다랗게 스크린을 채운 송강호의 얼굴은, 앞으로 그 속에 담길 한국영화의 표정과 시대의 희로애락에 대한 빛나는 예고편이었다. 송강호의 연기는 언제나 삶에 내재한 본질적인 희극성과 비극성, 그 둘이 빚어 내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는 모든 장르에서, 모든 장면에서 삶과 현실을 환기하는 매혹적인 순간을 만들어 낸다. 송강호의 얼굴에 담기는 삶이란 결과가 의도를 배반하고, 선의를 악의로서 되돌려 받으며, 때로는 못난 자가 잘난 자를 이기거나 착한 놈이 가장 나쁜 놈이 되는 어떤 세계다. 〈놈놈놈〉의 윤태구는 가장 우스꽝스럽고 허술한 사내였지만 사실 나쁜 놈 중 가장 나쁜 놈이었고, 〈박쥐〉의 신실한 신부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몸 바쳐 희생했지만 흡혈귀의 피를 받음으로써 신으로부터 버림받는다. 시대는 매번 새로운 얼굴을 요구했으므로 그의 시대 또한 언젠가는 지겠지만 분명한 것은 21세기의 한국 영화사는 송강호라는 목차에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진 : 이창주

“〈공동경비구역 JSA〉 때는 경력이 대단한 배우가 아니었는데 다른 남자 배우들(신하균, 이병헌)과 어울릴 때는 모두에게 관심 가져 주고 앙상블을 이끌어 주는 모습이 형 같았다. 〈복수는 나의 것〉 때는 특유의 이성적이고 지적이며 냉정한 면이 소름 끼칠 정도였다. ‘이번 작품’(〈박쥐〉)에서는 송강호가 과연 사랑이야기에 어울릴 거냐, 주위에서 걱정들 할 때 나는 어떤 배우보다 더 멋진 로맨스를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맞았다.”
- 2009년, 박찬욱

“세상은 그를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송강호야말로 냉정하고 지적이며 세련된 연기를 하는 배우다.”
- 2008년, 박찬욱

“어떤 역할, 상황이라도 살아 있는 연기를 한다. 이모개 촬영감독의 말대로 송강호는 지금 찍고 있는 상황이 마치 실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순간적인 몰입과 집중력이 영화를 펄떡펄떡 살아 있게 한다. 모든 행위를 정감 있는 사람으로 보여준다. 그게 대단하다. 완벽하게 호흡조절을 하고 칼같이 정확하게 표현한다. 접착제처럼 짝 달라붙는 연기다.”
- 2008년, 김지운

“〈초록물고기〉 때 송강호는 당시도 동물적인 감각이 뛰어난 배우였지만 매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모습이 색다르기도 했고, 특이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주연이 아니라서 열심히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톱배우가 된 지금도 그렇게 연습한다. 촬영이 끝나고 돌아갈 때도 찍었던 장면을 계속 혼자서 연기하고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성실함이 천부적인 재능에 더해진 것 같았다.”
- 2007년, 이창동
  • 2009년 06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동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