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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치는 힘으로 살아내기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22) 배한봉 <육탁(肉鐸)>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이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새벽 어판장 바닥에 막 쏟아 낸 고기들은 살아서 파닥거린다. 시인은 그것을 “육탁”이라고 말한다.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는 것은 삶의 어떤 계기에서 얻은 시인 자신의 깨달음이다. 바닥을 친다는 것은 생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상황을 가리킨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피투적(被投的) 기투(企投), 즉 세계에 내동댕이쳐짐이 바로 그것이다. 바다에서 포획된 생선들에게 어판장 바닥은 그야말로 낯선 세계다. 생존의 영도(零度), 즉 바닥이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추락도 있다. 바닥을 치고 난 뒤의 바닥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현실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육탁은 온몸으로 바닥을 쳐서 제 살아 있음을 알리는 일이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몸짓이다. 그렇게 힘껏 바닥을 치다 보면 온몸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눈물이 나는 은유다.

이 시의 화자는 고달픈 아버지-가장이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김현승 〈아버지의 마음〉)할 때의 그 아버지-가장이다. 그에게는 집에 가면 까만 눈빛을 반짝이며 달려들 새끼들이 있다. 삶은 온몸으로 바닥을 치는 생선만큼이나 고달픈 것이지만 아울러 목탁을 치는 수행자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숭고한 수행이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은 뒤늦은 깨달음이다. 시인은 어판장 바닥을 온몸으로 치고 있는 생선의 눈에 비친 알전구의 불빛을 주목한다. 절망과 공포속에서도 끝내 닫을 수 없는 그 눈! 그 눈이 흘리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불빛이다. 시인은 생선의 눈이 흘리는 불빛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의 불빛을 겹친다.

살아 냄의 몫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때 절망은 현실로 닥친다. 그러나 모든 걸 도도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절망의 탁류를 희망의 동력으로 바꿀 줄 아는 게 사람의 지혜다.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마음에 맺힌 울분과 절망을 풀어 《사기열전》을 끝냈다. 거렁뱅이 꼴로 떠돌던 한신을 한 젊은이가 여러 사람 앞에서 겁쟁이일 거라고 모욕했다. “네 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고 했을 때 한신은 울분과 모욕감을 숨기고 묵묵히 몸을 구부려 젊은이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나중에 한신은 한나라의 군대를 다스리는 최고 장수가 되었다. 비록 현실이 그들을 모욕했지만 사마천이나 한신은 가슴에 푸른 별을 품고 참았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일과 이거니…”(신석정 <들길에 서서>) 집 밖에 나온 모든 존재는 온몸으로 수고와 노동을 감당하는 자다. 뼈가 휘는 수고와 노동을 감당하는 삶을 내 능력과 의지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더 큰 힘이 짓누를 때 절망은 낮아져서 바닥이 된다. 온몸으로 바닥을 치는 생선들은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누운 노숙자들로 바뀐다.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한밤중에 눈을 뜰 때도 있을 것이다. 눈 뜨면 제가 누워 있는 지하도의 차가운 바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살아 봐야 한다. 물은 백도가 넘어 끓어오른다. 끓는 물만이 주전자 뚜껑을 들어 올린다.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고, 절망도 극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뚜껑을 밀어 올리지 못한다. 배한봉의 〈육탁〉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시다. 어쩌면 우리는 흰 것을 검다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고 모욕하는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봉황은 새장에 갇혔는데, 닭과 꿩은 하늘을 훨훨 날며 노닌다. 그래도 우리의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바닥을 온몸으로 치며 치열하게 살아 내야 할 이유다.



배한봉(1962~ )은 경상남도 함안 사람이다. 1998년 시 전문지 <현대시>로 등단했다. 그동안 《흑조(黑鳥)》(1998), 《우포늪 왁새》(2002), 《악기점》(2004),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2006) 등 네 권의 시집을 냈다.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 소리꾼이 있었다, 신명 한가락에 /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의 소리에 우포늪 왁새의 울음 완창을 겹쳐 내던 (〈우포늪 왁새〉) 이 우포늪의 시인이 《악기점》에 와서는 과수원지기로 변신한다. 과수원에서 삶과 노동을 하나로 겹쳐 보는 가운데 자연 생명을 지배하는 원리를 깨달았다면 과수원은 수행자의 청정도량이었을 터다. “그 주렁주렁 열린 열매 아까워 / 제대로 솎지 못했다네 / 한 해 실농(失農)하고서야 솎는 일이 / 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정이란 걸 알았네”(〈복숭아를 솎으며〉)에서 볼 수 있듯 열매를 솎아 주며 버리는 일의 어려움을 깨닫고, “제 몸 불볕에 내맡기면서도/넓은 그늘”(〈나무는 스스로 그늘이다〉)을 만드는 나무에게서 “늙은 수도승”(〈나무의 혀〉)의 모습을 본다. 시인은 농업 노동의 두터운 깊이 속에서 땅과 나무와 사람이 생명의 범주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그런 바탕 위에서 자연과 생명을 두루 감싸는 상상력은 발효되었을 텐데, 그 농경적 상상력이 그를 우리 ‘생태시’의 전위로 우뚝 서도록 밀어 올렸을 것이다.
글쓴이 장석주님은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같은 해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이 입선되어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이다. 그동안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붉디 붉은 호랑이》, 《절벽》 등의 시집을 내고, 《20세기 한국문학의 모험》(전 5권) 등 50여 권의 책을 냈다. 지금은 국악방송에서 생방송 <장석주의 문화사랑방>을 진행하고 있다.
  • 200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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