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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이 백수의 지루한 일상을 그렸다고요?

《부코스키가 간다》로 창비 장편소설상 수상한 한재호 씨

“나는 ‘대학 졸업 3년차 취업 준비생’이다. 그런데 남들은 나를 ‘백수 생활 3년차 서른 살 소년’이라 부른다. 그래, 난 그 유명한 ‘백수’다. 어느 여름, 나는 비 오는 날 아침이면 가게 문을 닫고 어디론가 외출한다는 ‘부코스키’의 소문을 듣는다. 그날 이후 비가 내릴 때마다 나는 ‘부코스키’의 뒤를 쫓는다.”

제2회 창비 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소설 《부코스키가 간다》는 수상한 인물 ‘부코스키’와 그를 따라 충무로와 종로, 여의도, 이대 입구 등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는 ‘나’의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날, 또 다른 수상한 남자가 내 뒤를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나는 부코스키를 따라다니고, 그 남자는 나를 따라다니고, 중간중간 서울의 풍경과 빗속에서 조깅하는 여자 등 뭔가 수상쩍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을 쓴 한재호 씨에게 ‘부코스키’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읽은 심사위원들은 “작가가 어느 지방 출신일까?” 내기했다 한다. 등장인물들이 서울 구경에 한 맺힌 사람들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는 스타벅스 커피와 흑인음악을 좋아하는 ‘서울 청년’이었다. 원래 소설 제목도 잼처럼 끈적하고 느린 흑인음악《슬로 잼(slow jam)》으로 지었을 정도다. 흑인음악이 거리에서 태어났듯, 그의 작품도 서울 거리에서 잉태됐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광화문 사거리. 광화문 사거리에 있는 커피전문점에 출근 도장 찍듯 매일 가서 글을 썼다.

“사람들 많은 데서 글이 잘 써져요. 옆 테이블 대화도 듣고, 건너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상도 하고요. 때로는 그중 한 명을 미행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는데, 상상이 뜻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발길 닿는 대로 거리를 걸었지요.”

부코스키가 헤매 다닌 서울 거리는 그가 걸어다닌 동선이기도 했다. 상을 받은 후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묻자 “계속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소설이 당선돼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그는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취업 준비생, 즉 백수였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꿈이었고 그래서 대학도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소설가로의 길은 멀고도 막막했다. 소설을 쓰더라도 먼저 어디든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소설 속 ‘나’처럼 수없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봤다. 면접이 끝나면 다시 커피전문점으로 와서 그 이야기를 글로 썼다.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기가 번거로워 그는 커피전문점에 앉아 손으로 글을 썼는데, 사람들은 그걸 색다르게 보더라고 한다.

그의 소설은 독자에게 끝까지 해답을 주지 않는다. 부코스키가 누구인지, 왜 비 오는 날이면 서울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지, ‘나’의 뒤를 쫓는 자는 누구인지 끝내 밝히지 않는다. 짤막하게 등장하는 인물들도 호기심만 자아낼 뿐, 적절한 설명이 없다. 소설 속 인물이나 소설을 읽는 독자나 서울 거리를 쏘다닐 뿐이다. 별 소득 없이 부코스키를 쫓는 주인공이 애착하는 대상은 하나도 없다. 별 희망도 없이 ‘구직 활동’을 기계적으로 계속하고, 술김에 하룻밤을 지낸 대학 후배 ‘거북이’와 애정 없는 동거생활을 이어간다. 그게 출구 없이 미로를 헤매는 요즘 ‘취업 준비생’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부코스키가 간다》를 백수 소설로 본 것에 대해 “내가 백수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백수 생활이 드러난 것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실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 새롭게 접근한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비 오는 날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데서 오는 재미, 비 오는 날 서울 거리와 사람들의 묘사,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끝나는 결말 등에서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소설로 구상했다는 것이다.


서울 거리를 누비며 미행하지만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부코스키’

책을 읽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부코스키의 정체는 무엇인가?’이다. 한재호 작가는 “작품 곳곳에 나타난 힌트를 바탕으로 독자들이 상상한 것, 그게 바로 부코스키”라고 대답한다.

“부코스키는 그냥 부코스키예요. 특정한 답은 없어요. 책을 읽은 분들이 그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한 것, 궁금하지만 알 수 없는 인물 그 자체가 바로 부코스키의 정체예요.”

작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읽었을지 가장 궁금하다고 했다.

기자가 “부코스키의 정체는 무엇인지, 검은 우산을 쓰고 주인공을 뒤쫓는 사람은 누군지 정말 궁금했다”고 답하자 작가는 “오, 오”라고 맞장구치며 그런 반응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백수의 지루한 일상을 표현한 소설’이라는 평도 있는데, 그러면 누가 읽고 싶겠느냐며 억울해한다.

“큰 스토리 없이 재미를 살리려면 작은 요소들의 리듬이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 중간중간 추리극 같은 요소와 유머 등을 넣어 책장이 술술 넘어가도록 했지요.”

부코스키와 ‘나’가 쫓고 쫓기는 장면에서는 추리물 분위기가 난다고 했더니 그는 추리소설을 굉장히 좋아한다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 추리소설 같지 않느냐”고 했다.

“등장인물들의 미행에서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느껴지지 않나요? 쫓고 쫓기는 시간에 생각을 많이하게 되잖아요? 남을 쫓다 보면 남은 나를 어떻게 볼까를 신경 쓰고, 자신을 자꾸 돌아보게 되지요.”


인생이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작품에 거리를 걷고 미행하는 요소를 많이 두었는데, 사람들은 주인공이 백수라는 이유로 ‘백수의 생활’에 초점을 맞춰 소설을 보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한다거나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고민은 항상 존재한다고 봐요. 저에게 백수 생활은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직장 생활을 한다면 자신이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 같아요.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진 요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이 늘어났지요.”

그에게 2009년은 특별한 해다. 공모전 수상과 함께 질풍노도의 20대를 지나고, 책이 출판되면서 어엿한 작가의 타이틀을 달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20대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성장하면서 지칠 수도 있고, 백수 생활을 할 수도 있잖아요? 사회가 뭐라 하든 주눅 들고 꿀리면 안 돼요. 학교에서 후배들을 만나면 부러워요. 생김새도 예쁘고 말하는 것도 통통 튀어요. 세상에 움츠리지 말고 그런 매력을 살리면 좋겠어요.”

《부코스키가 간다》 속의 인물이 툭 튀어나온 듯한 인상의 한재호 씨. 다음 작품은 위험에 빠진 샐러리맨을 추리소설처럼 다룬 것이라고 한다. 《부코스키가 간다》가 서울의 여름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번에는 서울의 겨울 거리가 배경이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사진 : 신규철
  • 200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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