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금메달 2개 획득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황무지를 딛고 하늘로 비상(飛上)하다!

“3년쯤 입어 해지고 구멍 난 점프복 하나로 매일 훈련하고, 심지어 대회 때도 그 옷을 입고 점프를 했어요. 독일 선수들과 코치가 궁금했는지 ‘이 옷, 혹시 부적(符籍)이냐’고 묻더군요. ‘점프복이 이것 하나밖에 없다’고 솔직히 이야기했습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꿈이 만들어 낸 스키점프. 스키를 타고 급경사면을 활강해 내려오다 하늘로 날아오른 후 설원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이 스포츠는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유럽과 북미는 물론 일본, 중국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황무지 같은 분야. 스키점프를 할 수 있는 곳은 한곳밖에 없고, 스키점프 선수는 8명(국가대표 4명, 중・고교 선수 4명)뿐이다.

하얼빈 동계 유니버시아드 K-90 개인전 1위 확정 후 김현기 선수(가운데).
사진제공: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그럼에도 지난 2월,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한국의 스키점프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 선수들이 스키점프에 걸린 3개의 금메달 중 2개를 획득한 것이다. 김현기(26) 씨는 개인이 겨루는 2개 종목에 모두 출전해 K-90에서 금메달, K-120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그와 최흥철(28), 최용직(27) 강칠구(25) 씨 등 4명이 출전한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여기에 최흥철 씨가 개인전 동메달을 추가했다. 네 선수와 이들의 맏형인 김흥수(29) 감독을 올림픽공원에서 만났다.

올림픽공원의 연못가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늦었지만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자 “목숨 걸고 할 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종목이라면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도 되지만, 자신들은 금메달이 절실하게 필요했다고 말한다. 김현기 선수는 “2007년 유니버시아드 때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는데 신문에 한 줄도 안 나왔다”면서 “금메달 외엔 우리를 알릴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따서 정말 다행입니다. 지금 저희에게는 관심과 후원이 절실하거든요. 지금처럼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다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렵습니다.”

K-90 단체전 시상식. 금메달을 받고 기뻐하는 선수들.
사진제공: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맏형 최흥철 씨는 “단체전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날아갈 듯 기쁘면서도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에 멍해졌다”며 말을 이었다.

“우리 중 하나라도 그만두면 단체전의 최소 인원인 4명을 채울 수 없어 한국에서 스키점프가 사라지게 됩니다. 대회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거죠. 지원을 못 받는 종목이라 하려는 선수도 없고, 시설도 없고….”

실제 최흥철, 최용직 선수는 만 28세 이하라는 대회 규정에 걸려 다음 유니버시아드 대회부터는 참가할 수 없다. 새로운 선수가 수혈되지 않으면 대회 참가 자체가 무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학 서너 군데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생계 유지

지난 몇 년간 이들 네 선수는 한국 스키점프의 명맥을 잇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한다. 한국체육대학 졸업 후 송호대를 거쳐 대구과학대에 들어가기까지 4인방의 긴 학적이 무엇보다 그걸 잘 증명한다.

“팀을 유지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어요. 우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제대회 메달이 필요했어요. 세계 8~10위권인 우리 수준이라면 아시안 게임이나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메달을 딸 수 있었어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학생 신분을 유지해야 했지요.”

이들은 국제대회 실적을 인정받아 스키협회로부터 매년 1인당 360만 원의 훈련비를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이 돈으로는 훈련비는 고사하고, 한 벌에 60만 원인 점프복이나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장비조차 마련하기 어렵다. 훈련이 없는 날이나 비시즌인 4~6월이면 막노동, 봉투 붙이기, 주차 도우미, 식당 아르바이트, 예식장 안내, 대형 마트 창고 정리 등으로 생활을 해결한다.

“현기 별명이 직업소개소예요. 아마 대한민국에서 현기만큼 아르바이트 많이 해본 사람 없을 겁니다.(하하하)”

모두 현기 씨를 지적하자 그는 “저희가 체력이 좋잖아요.(하하하) 몸 사리지 않고 일하니까 꼭 다시 찾아 주더군요. 다른 팀원들까지 데리고 가 일당을 벌기도 하지요.”

가끔은 자신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사인이나 같이 사진을 찍자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어 무안할 때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고단한 생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이 스키점프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흥수 감독이 입을 연다.

“가끔 부모님들이 ‘이제 결혼도 해야지’라며 걱정스럽게 이야기하실 때가 있어요. 생활을 생각하시는 거지요. 그러면 이렇게 말씀드려요. ‘저희 꿈 아시잖아요?’라고.”

그는 선수들을 돌아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한국 스키점프는 1991년, 지금은 사라진 쌍방울 그룹이 무주리조트를 만들며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스키점프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스키장이 있는 지역인 무주와 평창에서 지원자를 찾았습니다. 그때 저희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새로운 동계 스포츠 종목을 개척하는 ‘꿈나무’가 된 거지요. 처음에는 스키점프란 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눈에서 놀면서 스키 탈 수 있다는 게 좋아 시작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쌍방울이 사라지면서 지원이 끊겨 정말 어려웠지만, ‘동계 올림픽 유치에 밑바탕이 되겠다’는 꿈 하나로 버텼습니다. 그 꿈은 아직 남아 있지요.”

동계 유니버시아드 K-90에 출전한 김현기 선수의 비행 모습.
사진제공 :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그는 평창 올림픽 유치가 실패한 것에 진한 아쉬움을 토해 냈다. 용직 씨는 “우리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있다”고 입을 연다. .

“세계 챔피언이 눈앞에 보이니까요. 우리 네 명의 실력이 세계 8위쯤 되는데 1 ,2, 3위와 근소한 차이예요. 바로 손에 잡힐 듯한 거리까지 온 거예요. 전지훈련에서 만난 유럽이나 일본 코치들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성적을 낼 수 있느냐’고 다들 놀라죠. 현지 언론들이 희한한 팀이라며 취재도 하고요. 환경만 조성되면 최고가 될 수 있는데 어떻게 지금 그만둘 수 있겠어요.”

용직 씨의 말에 팀원들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그들에게 하늘을 날 때의 기분을 물었다. “안 해보셨으면 말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하는 칠구 씨. 순간 적막으로 흐르던 진지한 분위기가 ‘하하하’ 웃음으로 가득 찼다.

“많이 받은 질문인데, 사실 아무 생각 없어요. 위험한 운동이라 비행 중엔 자세와 착지에만 신경쓰죠. 뭘 느낄 틈이 없어요. 느껴서도 안 되고요. 눈 위에 ‘착’ 하고 내려앉고서야 ‘야! 위의 공기가 참 좋았지’란 생각을 하죠.”

얼마 전 하이원리조트가 창단한 실업팀에 현기 씨와 흥철 씨가 둥지를 틀었다. 감독이자 맏형 김흥수 씨와 용직, 칠구 씨는 제2의 실업팀 창단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그들과 함께한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웃음 때문인지 그 어느 때보다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하늘을 날을 후배들은 전지훈련까지 가서 훈련비 부족으로 숙소만 지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란 4인방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사진 : 김진구
  • 200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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