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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최고의 소리’ 입히려 음향 시스템 개발

정상진 ‘씨너스 이채’ 대표

영화 마니아 사이에 유독 ‘귀로 느끼는 영화관’ ‘소리가 온몸을 감싸는 영화관’으로 소문난 곳이 있다. 파주에 위치한 ‘씨너스 이채’와 ‘씨
너스 이수’, 이화여대 안에 위치한 ‘모모하우스’다. ‘이채’와 ‘이수’는 관마다 다른 시스템 장비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장르에 따라 사운
드를 실험한 후, 튜닝을 거쳐 상영관을 결정한다고 한다. 클래식, 할리우드 스타일 등 소리의 모양새가 달라 이곳 아니면 영화를 보지 못한다는 열혈 마니아들이 생길 정도다. 이 음향 시스템을 개발해 장착한 사람이 ‘씨너스 이채’와 ‘씨너스 이수’의 대표 정상진 씨(40)다.
그는 음향 설계와 엔지니어링뿐 아니라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면서도 보기 드물게 <워낭소리> 등 다큐멘터리 영화를 가장 먼저 상영하는가 하면, 스스로 인디 영화, 컬트 영화를 기획해 상영하는 ‘씨네마 큐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모모하우스’가 음향 엔지니어도 아닌 그에게 음향 시설을 맡길 정도로 그의 솜씨는 영화판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만든 영화관은 음향 시스템의 내용을 자신있게 공개한다. 일본의 한 영상산업기구에서 그를 취재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투자할 수 있느냐’고 놀라워 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오디오 마니아였던 그는 돈만 생기면 음향 관련 케이블까지 구입하느라 집에서 쫓겨날 정도였다고 한다.

“홈시어터뿐 아니라, 기계 욕심이 많아요. 용산 전자랜드에 가서 1m에 200만 원하는 케이블을 검정색 비닐봉지에 담아 오면서 웃음이 나왔지만, 가족들은 ‘미쳤다’고 했죠. 홈 AV뿐 아니라 돈만 생기면 기계 바꾸는 게 제 유일한 낙이에요.”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단 한 번도 극장에 만족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영화를 제대로 보고 싶다’는 열망은 그를 전문가로 만들었다. 그가 만족하는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한 ‘이채’를 열면서다. 1998년 남산에 최초로 자동차 극장을 세웠던 이도 바로 정상진 대표다. 당시 꽤 많은 수익을 내어 파주 출판단지에 ‘씨너스 이채’를 열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영화의 본질을 고민했습니다. 저는 극장에 온 관객이 영화에 푹 빠져 있다가 나오게 하는 게 영화관 주인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음향 시스템을 개발해 제 이름으로 주문 제작했습니다. 2002년 땅을 파기 시작한 후 꼬박 2년 걸렸죠.”


그는 모든 소리가 골고루 들리게 하는 자연스러운 음향을 구현하기 위해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다. 최대한 소리의 왜곡을 막기 위해 GEPCO사의 6N케이블을 전 관에 사용하였다. 모든 단자가 뉴트릭 이상급으로 금 도금 제품이며, 스크린 뒤의 서브우퍼는 화강석을 기초로 단단한 저음이 방사되도록 구성한 게 특징이라 한다. 이 밖에 PA스피커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고, 독자적인 초고역대 스피커를 사용해 가청주파수 이상의 소리를 재생시킨 점도 장점이다. 관객이 소리가 시원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이채’에는 터보사운드 사의 TXD시리즈와 THL시리즈가 세팅되어 있는데, 관마다 자체 제작한 스피커가 세팅됐고 방음을 위한 옵션이 구성되어 있다.


영화 장르에 따라 달라지는 음향

“모모하우스에서는 스크린을 걷을 경우 스크린 뒷면이 모두 하나의 스피커처럼 보입니다. 전문용어로 ‘베플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기계는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늘 리뷰해요. 극장에서 적용해 보고, 극장용 스피커 외에 전문가들이 쓰는 장비를 실험해 보기도 하고, 몇 억이 넘는 스피커도 써 보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죠. 음향 테스트 전용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그 분야의 박사도 아닌데, 물론 힘들었죠. 늘 주변에서 안 된다고 했지만 전 후회는 안 해요. 늘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요.”

모모하우스 스크린 베플 시스템. 스크린을 걷을 경우 스크린 뒷면이 모두 하나의 스피커처럼 보인다.
그는 독일, 영국, 이스라엘 등 내로라하는 스피커 회사의 가이드라인을 모두 받아 실험해 보기도 했다.
“인포메이션을 받아 다 써 봤어요. 외국에서는 앰프와 스피커를 지정해 주는 가수들이 있을 만큼 음향은 까다로운 분야입니다. 미국의 일렉트릭 보이스(EV)가 거기에 해당되는데 그 EV 쪽과도 일을 했어요. 할리우드 영화, 고전 영화, 예술 영화의 음향 시스템이 모두 다르죠.”

그가 개발한 음향 시스템은 AT9. “옷 한 가지를 사도 브랜드를 권유하는데, 영화관은 왜 그런 게 없느냐”며 조지 루카스 감독의 TH6 시스템에 견줄 만한 ‘음향 시스템’에 도전해 거둔 결과다.

극장 천장에는 세계의 감독 어록이 쓰여있다. 영화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알 수 있다.
“AT9는 조지 루카스 감독의 TH6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해요. 대신 다른 극장보다 전기를 4배 이상 쓰죠.”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입체 음향 때문에 영화를 보던 중 한 여성이 구토를 하러 나갔다거나 극장 위층에 있는 일식집에서 지진이 난 줄로 착각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그렇다고 그가 지금 현재 상황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객은 저역을 좋아하고, 어떤 관객은 고역을 좋아하는 등 각기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운드를 튜닝하면서 단지 완벽하기 위해 노력할 따름이에요.”

씨너스 이채와 씨너스 이수에 설치된 음향 시스템.
‘씨너스 이채’나 ‘씨너스 이수’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음향뿐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대로 그의 직함 뒤에는 ‘씨네마 큐레이터’가 따라붙는다. 멀티플렉스에서는 하기 어렵다는 ‘작은 영화제’를 벌써 1년째 끌어오고 있다.

“필름 공수, 판권 해결 등 난제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이 영화제 때문에 관객이 모인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멀티플렉스의 메인 타임대인 8시에 영화제 필름을 튼다는 점 때문에 ‘총을 맞은 거나 다름 없다’는 격한 표현을 쓰지만 저는 재미있어요.”

소리 좋은 극장답게 ‘사운드 필름페스티벌’도 1주일에 한 번 한다. 사운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킹콩> <트랜스포터 라스트 미션> <데몰리션> 등을 볼 수 있는 기회.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도 관객들이 기대하는 영화 중 하나다.

영화제뿐 아니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갤러리(영화관 안에 별도의 갤러리가 있다)에서 사진전, 그림전 등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젊은 아티스트들의 활발한 참여뿐 아니라 관객들과 헌 옷 나누기 행사 등의 이벤트도 이곳만의 색깔이다. 그는 자동차 극장과 PPL 광고(영화나 드라마에 상품을 소품으로 등장시키는 광고 형태)를 처음 선보이고, 한국 최초로 여성들의 성 담론을 양지로 이끌어 낸 핑크영화제를 기획하는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선보여 왔다. 생각나면 일단 하고 보는 스타일. 최근 그는 아버지와 친구들을 초대해 <워낭소리>를 보여드렸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픈 욕심이 컸단다. 이처럼 영화 한 편을 통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이끌어냈으면 하는 게 그의 꿈이다. 또 다른 꿈이라면 한 편의 영화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푹’ 빠져 있는 관객을 보는 일이다.

사진 : 김진구
  • 200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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