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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축구 스타, 감독 되어 돌아오다

신태용 성남일화 감독

지난 1월 중순 전남 광양의 공설운동장.
“이호! 네가 패스했다고 경기 끝난 거 아니잖아. 서 있지 말고 앞으로 뛰어 나가야지! 네가 뛰어야 수비가 분산되잖아.”
벌겋게 상기된 얼굴의 사내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선수들을 향해 열정적으로 소리친다. 열어 젖힌 트레이닝복 상의와 턱 아래로 내린 마스크 위로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신태용.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한국 축구 플레이메이커의 교과서로 불리던 그가 감독이 되어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한국 축구에서 신태용만큼 화려했지만 아쉬움을 남긴 선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가 지난해 12월 프로리그 최다 우승팀(정규 리그 7회) 성남일화의 감독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깜짝’ ‘파격’이란 표현을 썼다.

한국 축구사상 처음인 1970년대생 30대 감독, 코치로서도 국내 실업팀이나 프로팀을 한 번도 지도한 경험이 없는 이력. 신태용 감독 스스로도 감독제의를 받고 ‘내게 감독 자리를?’이란 물음표를 그렸을 정도였다니 말이다.

“얼떨떨했죠. 그런데 4년 전 선수생활을 은퇴할 때부터 ‘내 축구 인생의 마지막은 감독’이란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파격’ 맞습니다. 프로팀은 물론, 실업팀, 대학팀 코치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을 감독 자리에 앉힌다는 건 한국축구판의 정서상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팀에서도 정말 고민했을 거예요. 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사실 신태용은 2년 전부터 성남 구단 관계자와 김학범 전 감독으로부터 수석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해 왔다. 속사정이 있었다. 프로팀을 지도하기 위해 필수인 자격증 AFC(아시아축구연맹)의 ‘A라이선스’가 당시 그에겐 없었다.

“선수생활하느라 A라이선스를 따지 못하고 있었어요. AFC에서는 A, B, C 세 등급으로 코치 라이선스를 분류하는데 이 중 A는 대학 이상 성인팀을 지도할 수 있는 라이선스예요. 이게 없으면 원칙적으로는 감독이라도 공식경기에서 선수들을 지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절했죠.”

그는 지난해 12월 A라이선스를 취득했다.

“지난해 11월 김학범 감독이 사퇴해 깜짝 놀랐어요. ‘저한테 수석코치를 부탁했던 분이 그만뒀으니, 내 코치 자리도 같이 날아가는 건가. 아! 이렇게 낙동강 오리알 되는구나. 코치하라고 할 때 그냥 할 걸.’ 저도 인간인지라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하하하).”

신 감독은 1992년 프로축구 데뷔 때부터 오로지 성남 한 팀에서만 13년을 뛰며(성남 전신인 천안일화 포함) 여섯 번의 리그 우승을 만들어 냈고, 신인왕, MVP, 득점왕, 골든볼 등 모든 상을 휩쓸며 ‘레전드’란 별칭을 얻었다. 그가 자신의 축구 인생을 되돌아봤다.


“어릴 때부터 공 차는 게 재미있었어요. 대구 경북사대부중에 진학했는데, 선배들이 축구 하나로 대학에 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축구로 대학도 가고, 국가대표도 됐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 꿈대로 그는 16세 이하,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를 거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까지 ‘축구 엘리트’로 성장한다.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프로팀에 지명신청을 했어요. 몇 안 되는 대학생 국가대표라는 자신감에 당연히 지역연고 팀인 포항 스틸러스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런 연고가 없던 일화로 간 것이 제가 근성을 잃지 않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왜 포항으로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가고 싶었죠. 어릴 때부터 ‘고향 팀’이라고 포항만 응원했는데. 그런데 느닷없이 (홍)명보 형이 지명신청을 했어요. 포항이 주저 없이 명보 형을 선택하더군요. 제가 밀렸죠(하하하). 그러니 오기가 생기데요.”


축구계에 새 바람 몰고 올 30대 최연소 감독

1992년 프로 데뷔 후 그는 펄펄 날았다.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베스트11에 뽑혔다. 이후 그는 13년간 거의 모든 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한다. 프로축구판에서 거칠 것 없던 신태용이었지만 국가대표와는 지독한 악연을 이어갔다. “국가대표 얘기 나오면 지금도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껏 어떤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며 프로 데뷔 후 첫 국가대표 탈락 당시를 이야기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 탈락 때 ‘나 이제 축구 안 해’ 하는 심정으로 태어나서 처음 가출해 팀을 무단으로 이탈했어요. 제가 사라지자 팀에서 난리가 났어요. 당시 우리 팀 감독이었던 박종환 감독이 축구협회와 대표팀에 전화를 걸어 ‘야 니들이 저지른 짓이니까 니들이 우리 태용이 찾아와’라며 다그치기까지 했죠.”

이때부터 징크스처럼 대표팀 감독들과는 늘 불편한 관계가 됐다. 대표팀으로만 가면 소극적이 됐다.

“황선홍, 홍명보, 고정운 등과 함께 대표생활을 하며 스스로 제 역할을 축소시켰어요. 게임메이커로 경기장을 헤집고 다니는 게 제 역할인데, 그러지 못했어요. ‘선배들을 받쳐 주는 게 내 역할’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활동을 제한한 셈이죠.”

2002년 월드컵 대표팀에 탈락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쉬움 가득한 얼굴이 됐다.

“아마 월드컵 직전 시즌에 자국 프로리그에서 MVP와 골든볼 받고 국가대표 안 된 사람은 전 세계에서 저뿐일 거예요. 저도 인간인데 솔직히 기분 나쁘고, 열 받았죠. 근데 우리 대표팀이 4강에 갔으니 무슨 말을 하겠어요. 당시 저를 뽑지 않은 이유는 히딩크만이 알고 있겠죠.”

그의 아쉬움을 자극하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

- 통산 99골을 기록했어요. 왜 100골을 채우지 못 했나요?

“아! 정말 아쉽죠. 그런데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다가 99골이 된 거예요.
2004년 7월, 99번째 골을 넣고 그 자리에서 ‘100번째 골은 반드시 필드골로 넣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10월이 되기까지 필드골이 안 들어가데요. 그 사이 페널티킥 기회가 세 번 있었는데 안 찼습니다.”

그가 다시 웃는다.

“저는 공격수가 아니고 미드필더예요. 미드필더가 99골 넣은 건 세계 어느 리그에서도 찾기 어려운 기록입니다. 이걸로 만족합니다.”

2001년 10월 28일 . 2001 정규리그 우승 당시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샤샤, 신태용, 김현수.
2005년 당대 최고 선수가 은퇴했다. 자신의 의지보다 떠밀리다시피 팀을 떠나야 했다. 은퇴한 이유를 묻자 신 감독은 아직 그 내용을 말할 때가 아니란다. 대신 “한국 최고의 감독이었던 박종환, 고(故) 차학봉 감독과 함께했던 13년의 프로생활은 누구보다 즐거웠다”는 말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취임 석 달째인 신임감독 신태용. 그는 합숙금지와 자율훈련, 그리고 스타의식에 젖은 선수를 내보내는 등 팀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있다.

“한곳에 가두어 합숙하며 훈련시킨다고 팀이 우승하고, 선수들 기량이 느는 게 아니죠. 선수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만들고 개인전술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단체종목에서는 개개의 실력보다 팀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몇몇 선수만 빛나서는 강한 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축구 하나로 남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제 꿈은 선수들과 함께 즐겁게 채워 갈 겁니다. 행복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진 : 문지민
  • 200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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