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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 남편, 건축가 아내의 합작품

‘박플러스유’ 만든 박수우·유이화 부부

그 여자.
제주도 포도호텔, 핀크스 골프클럽하우스, 온양미술관 등을 설계한 명망 높은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이름 유동룡)의 딸. 아버지 뒤를 이어 건축가가 된 그녀는 한동안 아버지 머릿속의 구상이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되도록 돕는 ‘뮤즈’였다. 이타미 준 건축설계연구소의 서울지사 대표로, 밤낮없이 아버지와 대화하고 스케치를 주고받았다. 아버지 도움 없이 그녀의 이름으로 처음 설계한 작품이 한국 최초의 와인 테마빌딩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포도플라자. 건축주까지 소개해 줬던 아버지는 딸이 내미는 구상 스케치를 “어휴, 안 볼래”라면서 애써 외면했다. 자신의 영향력이 배제된, 순수한 딸의 작품이 되기를 바랐던 것. 건물이 다 지어질 때쯤 “가보자”며 공사현장을 찾은 아버지는 비로소 안심하면서 흡족해하셨다. 아버지는 “사실, 나, 되게 겁났거든”이라고 한마디했다. ‘이타미 준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아버지 이름에 누가 되지 않으려 종종걸음으로 워커홀릭이 되었던 그녀, 이제 살짝 일에서도 권태기를 느낄 때였다.


그 남자.
대학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후 매장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부산 현대백화점이 오픈할 때는 3~5층에 이르는 여성복 매장의 기획부터 시공, 관리까지 맡았다. 고객의 동선을 분석해 효율적이면서도 안락한 공간을 만든 그의 디자인은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의 앞날도 탄탄대로로 보였다. 서른 살, ‘과장급 대리’란 말을 듣던 그는 돌연 벨기에로 떠났다. 의상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뉴욕 패션은 너무 뺀질뺀질하고 이탈리아는 너무 장식적이라 끌리지 않았다. 북구의 디자인이 옷의 본질에 충실한 것 같았고,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면서 어떤 생각으로 옷을 만드는지,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방가르드한 라인으로 유명한 마틴 마르지엘라를 배출한 벨기에의 왕립미술학교로 갔다. 2001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동안 자신의 브랜드를 내놓지 않았다. 유명 패션회사들의 비주얼 마케팅 등 이 일 저 일을 하며 한국시장을 경험했다.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의 작품, 아트 상품이 어우러진 갤러리 겸 숍인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공간 ‘비숍’도 만들었다.
그 여자 유이화와 그 남자 박수우는 2006년 6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와인바 ‘19번지’에서 만났다. 화이트 셔츠에 블랙 슈트를 입고 건설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나온 길이던 유이화. 조금 지쳐 있던 그 여자와 그 남자는 우연히 합석을 했는데, 6개월 후 부부가 됐다. 그 남자의 말이다.

“내가 결혼하게 될 줄 몰랐어요.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렇게 잘 통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분해 ·조립되는 금속 대나무 모듈로 만든 사방탁자.
주말도 없이 일하던 그 여자는 하루도 빼지 않고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어요”라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왜 좋으냐?”고 물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끝이 없고, 질리지가 않아요.”

아버지는 “그 이상 없다” 한마디로 허락했다.
사윗감이 뭐 하는 사람인지, 가족이나 학벌도 묻지 않았다. 그날 부녀는 새벽 3~4시까지 술잔을 기울였는데, 다음날 아침 식탁에 앉은 아버지 얼굴이 너무 밝았다. 아버지는 “너무 좋은 이야기를 들어 기분이 좋다. 이제 인연을 만난 것 같구나”라고 했다. 30대 중반 딸이 결혼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하던 차였다. 장녀인 유이화 씨가 태어났을 때 ‘곱게 자라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결혼했으면 좋겠다’라며 이름을 ‘이화’라고 지었던 아버지. 딸이 건축을 하겠다고 하자 재일교포 건축가로서 자신이 살아온 길이 너무 험난해 결사반대했었다. 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한 딸은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가 건축을 전공했고, 아버지의 파트너가 됐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건축현장을 찾곤 했는데, 거기에서 묘한 에너지가 느껴져 흥분이 됐어요.”

만난 지 반년 만에 두 사람은 이타미 준이 설계한 일본 홋카이도 니돔 리조트 안 ‘석채의 교회’에서 극소수 증인만 초청해 결혼식을 했다. 피로연 역시 아버지가 설계한 포도호텔에서 친족들만 초청해 열었다. 신랑은 신부를 위해 직접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를 선물했다. 일반적인 결혼식의 거추장스러운 형식이 두 사람 모두 싫었던 것. 두 사람이 하나가 되자 누구보다 ‘생산성 높은 부부’가 됐다. 허니문 베이비로 딸을 낳았고, 건축가로 패션디자이너로 각각 활동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새로 만들었다. 두 사람의 합작이라, 이름도 ‘박플러스유’라고 붙였다. 딸 이름 역시 박과 유 사이 밝은 존재(炤·밝을 소)라는 의미로, 박소유라고 지었다.

“우리 둘 모두 시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앞에 두고 보지 못해요. 우리만의 공간을 갖게 되면서 아예 ‘우리가 디자인한 물건들로 채우자’고 했던 게 가구와 생활용품 디자인으로 이어졌죠.”





옻칠, 한지, 천연 염색 등 전통 장인들과 협업

대나무 모듈을 사용해 만든 의자와 테이블.
두 사람이 함께 찾은 디자인의 출발점은 ‘우리 전통’이었다. 이타미 준은 그림과 서예, 고미술품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다. 아버지는 “옛 물건을 감상용으로만 삼으면 안 된다. 옛 사람처럼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써야지 생명력이 이어진다”고 하셨다. 덜그럭거리는 조선시대 반닫이에 물건을 넣어 두고, 백자 접시에 안주를 놓고, 백자 주전자에 술을 담아 먹고 마시며 즐기셨다.

“그때는 마감이 잘되고, 현대적이고, 예쁜 물건들이 더 좋아 보여 그게 불만스럽기도 했어요. 뉴욕 유학 시절 비로소 우리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지요. 박물관에 전시된 각국 민예품들을 보면서 ‘우리보다 못한 게 굉장한 취급을 받는데…’ 하는 아쉬움이 컸어요. 그때부터 전통에 뿌리를 내리되 요즘 현실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왔어요.”

박수우 씨가 벨기에에서 배운 것도 ‘나만의 자산 찾기’였다.

“그곳에선 선생님이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해 주는 법이 없었어요. ‘무슨 생각이니?’라고 물으셔서 한참 설명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그냥 가셨죠. 결국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작업하는 것을 보면서 나만의 독창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죠.”

박씨가 찾은 귀결점도 ‘우리 옛것’이었다.

“조선시대 사방탁자의 비례는 완벽합니다. 문살의 모던함은 또 어떻고요. 우리 자수를 보여주면 서양인들은 껌뻑 죽어요.”

“이같이 소중한 자산이 사라지지 않도록, 현대의 삶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해 내놓는 게 우리 세대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라는 데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옛 사람들의 삶 속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소반. 간결미가 돋보이는 소반을 되살리려면 입식 생활에 맞게 소파 옆에 놓아 둘 수 있도록 변형해야 했다. 이들이 찾은 해법은 고가구에 많이 쓰이던 대나무를 모티프로 한 다리를 다는 것이었다. 금속으로 만든 대나무 다리는 마디마디를 분해 조립해 높낮이 조절을 할 수 있게 했고, 위는 쟁반 형태로 만들어 탈부착이 가능하게 했다. 쟁반은 전통 옻칠과 자개를 이용했다.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실용적이면서도 모던하고 화려한 가구로 변신시킨 것. 사방 탁자는 대나무 모양의 금속 모듈을 원하는 크기대로 조립해서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두 사람은 옻칠, 자개, 한지, 누비, 천연 염색 등을 하는 전통 장인들을 찾아다녔고, “지금, 우리가 되살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큰일 났다”는 위기감과 책임감, 사명감을 공유하게 됐다고 한다.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고 계시던지…. 그러니 제자 만들기도 쉽지 않지요. 그분들이 가진 기술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크리스털과 한지를 이용한 조명등.
‘박플러스유’가 내놓는 상품 중 전통 장인들과의 협업이 많은 것도 그 이유다. 지난 해에는 한지로 만든 조명등을 새로 선보였고, 천연 염색한 마에 전통 문양을 넣은 벽지를 내놓기도 했다. 자연 소재를 사용해 인위적이지 않고, 온화하고 차분하고 부드러운 느낌.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디자인이다. 한지 조명등은 빛을 따뜻하고 부드럽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2006년 말 출발한 ‘박플러스유’는 그동안 두 번의 단독 전시를 하고,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밀라노 푸오리 살로에 서울디자인페시트벌 전시관에 참여해 호평을 받았다. 각자의 영역에서 바삐 활동하면서도 빠른 행보다. 고집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완벽주의 디자이너가 어떻게 호흡을 맞춰 함께 일을 할까? 그동안 두 사람만의 노하우가 쌓였다고 한다.

“함부로 ‘야 별로야’라고 말했다가는 울컥 치밀어 싸움이 나죠. 아무 말이 없으면 ‘별로인가 보다’ 짐작하고 잠잠히 새로운 방안을 찾지요.”

서로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유씨는 박씨에 대해 “3년을 함께한 뒤에야 이 사람의 전모에 대해 해석판을 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의 예술세계가 현실로 옮겨지는 것을 돕는 ‘뮤즈’였던 그녀는 남편의 예술세계를 해석하는 뮤즈가 되었다.

“예술과 디자인, 그 안에서만 숨 쉬면서 살고, 놀 수 있는 투철한 아티스트입니다. 거기에 디테일 하나를 그냥 넘기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고요. 확신이 없으면 몸을 움직이지도, 말을 뱉지도 않는 사람이지요.”

자신의 이야기까지 모두 아내가 설명해 주는 것을 옆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던 박수우씨. 유이화 씨의 건축 작품이 아버지인 이타미 준과 어떻게 다르냐는 말에는 입을 뗐다.

“조형성이 두드러지는데다 여성적인 섬세함, 포근함이 녹아 있어요.”

오래 고민하고 철두철미 신념이 생긴 다음에야 움직인다는 박수우 씨는 오는 3월 처음으로 자신의 브랜드 ‘수우컬렉션’을 선보인다. 모시에 천연염색한 천으로 만든 누비옷. 그는 예부터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아내가 남편을 위해 짓던 따뜻한 마음까지 품고 있는 누비옷을 현대의 명품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사진 : 신규철
  • 200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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