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숙선 명창과 거문고 연주자 최영훈 씨 모녀

우리 음악에 대한 사랑과 자세, 엄마한테 배웠어요

“젊은이들이 좋아해야지,
우리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면 뭐하나 싶습니다.
대중가요에 오빠부대가 있듯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져야죠.
그러려면 먼저 우리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2008년 말, 서울남산국악당 무대에 오른 소리극 <남산골 변강쇠뎐>. 이 공연에는 안숙선(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58) 명창과 그의 딸인 거문고 연주자 최영훈 씨(국립창극단원・33)가 함께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창 안숙선 씨. 1986년 전국판소리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명창의 반열에 오른 그는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1989년), 핀란드 쿠모 페스티벌(1993년), 독일 세계문화의 집 한국축제(1997년), 프랑스 아비뇽축제(1998년) 등에 참가하면서 우리 국악을 세계에 알려 왔다. 프랑스에서 특히 인기 있는 그는 프랑스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에 ‘컹’이라는 도시가 있어요. 중세의 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시로, 스페인과의 전쟁 때 마지막 격전지라고 하더군요.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곳인데, 판소리를 미리 공부하고 온 관객들의 태도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나라 관객보다 더 해박해 보였지요.”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그와 판소리와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외가가 국악 명가여서 아홉 살 때 이모 강순영(신관용류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 씨에게 가야금을 배운 이래 외삼촌 강도근 씨(동편제 판소리 명창) 등 외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국악의 길에 접어들었다. 동생 안옥선 씨도 중앙대학교에서 가야금 병창을 가르치고 있고, 딸 최영훈 씨가 거문고로 국악 명가의 맥을 잇고 있다.

“딸과 같은 길을 간다는 게 정말 좋아요.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요. 그전에는 동생 옥선이가 최고의 벗이었는데.”

<변강쇠뎐>의 원작인 <가루지기뎐>은 그가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1979년 처음 출연한 작품이다. 그때객석에 앉아 있던 딸 영훈 씨는 사당패의 꽹과리잡이로 출연한 그를 보고 “엄마!” 하고 외치며 무대에 뛰어올랐다. 첫 무대에서도 모녀가 같이 섰던 셈이다.

“오늘 영훈이와 함께 집을 나서는데, 이번엔 손녀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요. 그때 그날처럼요. 영훈이가 서너 살 때였죠. 떼놓고 나오기 어려워 공연장까지 데리고 왔는데, 무대에 올라오니 객석에서 웃고 난리가 났습니다. 층층시하 스승님들에게 혼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격려를 해 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남산골 변강쇠뎐>은 만화나 영화로는 숱하게 나왔지만, 창극으로는 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안숙선 씨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면서 관객의 흥을 돋우는 도창을 유수정 씨(제5호 판소리<춘향가> 예능 보유자)와 함께 맡았다. 도창은 총대장, 소리로 푸는 지휘자의 역할이다. 무대 왼편에 마련된 사랑방에서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며 극의 흐름을 이끌고, 흥을 돋우기도 한다.

“엊그제만 해도 춘향이, 심청이를 맡았는데 하하… 이젠, 옹녀에게 밀려 버렸네요.”

예쁘고 요염한 옹녀는 이제 맡을 수 없다며 농담을 던진다. 이 소리극은 ‘정력 좋은 변강쇠’와 ‘서방 잡아먹는 옹녀’가 남산골 장승으로 서 있게 된 사연을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적 감각의 연극적 요소와 판소리가 만난 소리극은 매력적이다. 변강쇠와 옹녀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 그림자극은 한 편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남산골 변강쇠뎐>을 처음 기획할 때는 워낙 성적인 표현이 강해서 염려했는데, 직설적인 욕도 리듬을 타면 해학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영화로 만들어진 변강쇠는 에로틱하지만, 소리극 변강쇠는 해학과 활력이 넘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일종의 하이코미디가 됐죠.”

안숙선 명창은 소리를 하면 할수록 우리 음악에 대한 집념과 사랑이 생긴다고 한다. 김소희, 박귀희, 강도근, 박봉술, 정광수, 정권지, 성우향 씨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명창들이 그의 스승이었다.

“소리밖에 모르는 분들로, 소리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때는 정말 ‘순수의 시대’였어요.”

스승들에게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소리하는 사람의 자세’다. 영훈 씨는 “바른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김소희, 박귀희 선생님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스승으로서 엄마는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에요.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매우 엄한 편이지요. 그런데 저에게는 ‘알아서 하라’며 딸을 무조건 믿어 주는 엄마였습니다. 손녀 대하시는 것을 보면 ‘이제 엄마도 할머니가 되었구나’ 실감하지요.”


판소리하겠다는 딸에게 거문고 권한 엄마

어릴 적 피아노, 해금 등 갖가지 악기를 섭렵한 영훈 씨는 국악고에 진학하면서 거문고를 전공했다. 판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악기를 전공하라고 권했다. 국악고 시절에는 판소리가 너무 하고 싶어 학교에서는 “엄마가 판소리하래요”라고 하고, 집에서는 “선생님이 판소리하래요”라고 거짓말했을 정도였다. 결국 들키고 말았지만. 지금은 거문고를 잘 택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께서 제 손이 거문고하기에 알맞다고 해요. 판소리는 엄마가 곁에 계실 때 열심히 배우려고 합니다.”

안숙선 씨는 “젊은이들이 국악을 어렵고 멀게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그래서 분주하게 판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좋아해야지, 우리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면 뭐하나 싶습니다. 대중가요에 오빠부대가 있듯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져야죠. 그러려면 먼저 우리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손녀딸에게 가야금 소리와 판소리 한 구절을 들려주면 즐겁게 따라하는데, 유치원만 다녀오면 안 하더라고 한다. 자기만 이상한 노래를 하는 것 같다며. “내가 이렇게 우리 음악의 미래를 걱정하면 사람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요. 나이 들면 국악을 좋아하게 된다고, 40여 년 우리 음악을 듣지 않다가 갑자기 들으면 좋아지겠습니까? 제 생각엔 유치원 때부터 우리 악기를 배울 기회를 준다면 좋을 것 같아요.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중국이나 일본에 가면 이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단다.

“일본에는 하루 종일 가부키를 볼 수 있는 케이블 채널이 있어요. 어른들이 보는 채널은 당연하고, 어린이 프로그램에도 자연스럽게 나오죠. 가령 가부키 용어인 ‘오이-’ 등을 풀어 준다든지. 쉬운 말로 가르치더라고요. 이것은 크게 보면 정책의 문제인 것 같아요.”

신기하게 여섯 살인 손녀딸 서영이에게서 벌써 국악인의 끼가 엿보인다고 한다. 공연을 보고 나면 소리를 따라한다고.

영훈 씨는 “가야금도 한두 소절 뜯어요. 내가 마치 초등학교 때 줄 뜯고 놀았던 것처럼요”라며 덧붙인다. 안숙선, 최영훈 씨는 우리 음악에 대한 애정과 열정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모녀다. 2009년에는 거문고 발표회를 한다는 최영훈 씨. 개인적인 꿈으로 그는 2009년엔 꼭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 촬영을 앞두고 화장기 없는 딸의 얼굴을 보더니 자신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을 손으로 묻혀 내딸의 입술에 발라 주는 엄마 안숙선 씨. 그 모습이 앞으로 딸이 걸어가야 할 길을 격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모녀는 우리 음악의 맥을 잇고 있었다.

사진 : 문지민
  • 2009년 0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7

201907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7

event
event 신청하기
영월에서 한달살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