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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적 상상력과 테크닉의 결합

이진숙이 만난 화가 | 조각가 최우람

최우람
1970년 서울 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졸업. 갤러리 보다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회의 개인전. 리버풀 비엔날레, 비와코 비엔날레, 아르코 아트페어, Art Basel, 삼성미술관 Leeum 개관전, 부산비엔날레, The Armory Show, 국제 디지털 아트전,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외 주요 단체전에 참여. 2006년 포스코스틸아트 대상 수상
“이것은 ‘Urbanus’ 수컷입니다. 암컷이 보내 주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서서히 날개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암컷 한 마리에 수컷이 여러 마리던데요.”

“네, 세 마리의 수컷이 암컷 한 마리 주변에 모여들었지요. 암컷은 꽃처럼 생겼는데,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것처럼 도시에너지를 직접 흡수하고 축적된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하지요. 수컷은 암컷이 배출하는 빛 형태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생활하죠.”

Female Larva 1, 2
최근 국가 간 연합으로 추진되고 있는 ‘기계생명체연합연구소(URAM : 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에서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도시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삶을 영위하는 새로운 기계 생태계가 발견되었으며 그중 대표적인 기계 생명체가 바로 ‘Urbanus’라는 것이다.

“하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죠?” 작가가 먼저 웃었다.

“작품 설명하시는 거잖아요.”

Urbanus Larva
조각가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사를 서로 치고 있었다. 조각가 최우람이 만들어 낸 이 SF적인 사이비 생태학이 세상을 매혹시키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영국의 리버풀 비엔날레에서 성공적인 전시를 마쳤다. ‘Opertus Lunula Umbro (Hidden Shadow of Moon)’라는 제목의 5m가 넘는 거대한 작품이 리버풀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그 위용을 자랑했다.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며 우아하게 공간을 유영하는 반달모양의 새로운 기계 생명체는 40여 일간 전시된 후 3억5000만 원에 폴란드의 한 컬렉터에게 팔렸다.

Opertus Lunula Umbro
사실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최우람의 작품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일찍이 독특한 작품세계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감각 있는 젊은 큐레이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었다. 2006년 포스코가 주체한 포스코스틸아트 공모전 제1회에 대상을 수상했고, 또 그해 미디어 아트로 유명한 뉴욕의 비트폼 갤러리 개인전을 가졌으며, 누구나 동경하는 도쿄의 모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국제적인 작가로 도약했다. 또 이 전시에 이어 일본의 유서 깊은 갤러리 중 하나인 스카이 더 배스하우스에서도 인상 깊은 개인전을 가지며 작가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작가적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기계 생명체

최우람의 작품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조각품의 한계를 넘어선다. 그의 작품은 일종의 진보한 키네틱 아트로, 미술적 상상력이 테크닉과의 완벽한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가장 단순해 보이는 작품도 2000여 개 이상의 부품으로 이루어진다. 세부를 들여다보면 디테일 또한 매우 세련되게 디자인되어 있다. 현대 문명의 거대한 집산지, 도시에서 발견된 새로운 기계 생명체들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이 작품의 출발점이 된다. 그의 작품들은 Opertus Lunula Umbro처럼 사이비 학명을 가지고 있고, 전시장은 ‘기계생명체연합연구소(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URAM 작가의 이름)’의 연구 발표장이다. 전시장에는 “얼마 전 서울에 있는 무선전화기 중계안테나에서 이 생명체의 살아 있는 유생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다소 진지하면서 익살스러운 설명서가 붙어 있다. 이 설명서들을 읽노라면, 실제 이들이 존재하는 듯 ‘잠깐의 착각’에 빠진다. 각각의 작품들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오랫동안 생태계가 진화해 왔듯이 그의 작품도 진보해 왔다.

Urbanus_Female
“어떤 때는 스토리가 생기고 작품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최근작인 Una Lumino(함께 빛난다는 뜻)는 바닷가의 따개비를 연상시키는데, 이는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암시한다. 각각은 각자의 행동을 단순하게 행할 뿐인데, 그것이 집단으로 모여 있으니 마치 누군가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 같은 복잡한 양상이 된다.

스카이더배스
“작품에 사회적인 맥락을 담고 싶다. 문명비판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다. 기계 생명체의 등장은 사람의 욕심이 끝을 모르고 커진 결과라는 점에서 시작했다. 이야기는 인간으로 확장된다. 문명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시각적인 새로움뿐 아니라 자연에 근거한 문명 비판이라는 내용적인 깊이감이 그의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그가 창조해 낸 기계 생명체들은 때로는 땅속을, 때로는 도심 하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새로운 생태계의 지도를 그려 나가고 있다. 이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에 대한 상상력은 어쩌면 일본의 애니메이션, 인터넷 게임, SF 영화와 닮아 있다. 차이점은 가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존재로 변형되면서 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환상이 실체로서의 충만한 존재감을 뿜어 내는 순간 관객은 이것을 미적인 향유의 대상, 즉 또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urbanus_panel
사실 미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의 결합은 그의 유전자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부모님 모두 미술을 전공하셨고, 미술 관련 일을 하셨다. 조부는 1955년 우리나라 최초로 시발 자동차를 개발하신 분이다. 그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최우람이라는 작가 자체도 체계적으로 발전해 온 완벽한 유전자의 결합체라고 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를 좋아했다. 금성 퍼스널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어린이를 위한 학원에 다니면서 컴퓨터를 익혔는데,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논리적이고 재미있었다.”

Una-wall
자라면서 서서히 움직이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로봇 회사에 취직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회사에 다니면서 로봇을 제작해 한 방송사의 <로봇 워>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이 로봇 회사에서의 경험은 그의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기계생명체연합연구소(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 U.R.A.M.)’의 아티스트 최우람, 프로그래머 박태윤, 테크니션 배동혁(왼쪽부터).
테크닉의 진보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다. 좀 더 기술적인 완벽함을 위해서 그에게는 조력자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기계생명체연합연구소 (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 U.R.A.M.)’라는 익살맞은 이름의 이 팀은 최고의 팀워크를 가진 드림팀이다. 프그래머 박태윤, 테크니션 배동혁, 전체기획 최영희 그리고 아티스트 최우람이 그들이다. 함께 작업하는데 늘 자신만 유명세를 타서 쑥스럽다며, 꼭 동료들의 이름이 함께 나갔으면 좋겠다며 함께 사진을 찍어 달라고 거절할 수 없는 청탁을 한다. 카메라 앞에서도 연출 없이도 척척 서로 어울리는 포즈를 취하면서 그들은 ‘끈끈한 팀워크’를 과시했다.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전체 기획을 담당한 최영희는 세상에서 최우람을 가장 잘 이해하는 토론 상대자이자 아내이다. “이 사람들 없이는 절대 일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술사는 언제나 당대의 가장 발전한 과학을 흡수하며 진보해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 과학에 상상력이라는 젖줄을 공급해 왔다. 경계 없는 무한 상상력과 치밀한 테크닉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최우람의 작품은 미술의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해 나간다. 그가 펼쳐 보이는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의 새로운 생태학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사진 : 신규철
  • 200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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