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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수출하는 사과 키운 농부들

현상익 당진사과연구회 회장

당진사과연구회는 저농약ㆍ친환경 농법으로 사과를 재배한다. 그의 과수원에는 병충해 발생을 예상하기 위해 온도와 습도, 풍속 등을 재는 기상관측 장비와 나방류의 발생 정도를 미리 알 수 있게 하는 성페르몬 해충 예찰 트랩 등도 놓여 있었다. 모두 농약을 최소한 쓰기 위한 장치들이라고 한다.
세계 금융위기라는 광풍이 몰아닥치면서 우리 경제 전반에 적신호가 켜졌던 2008년. 2009년 벽두를 앞두고 조그만 희망의 씨앗이라도 찾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마음이다. 충남 당진군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현상익 씨는 2008년 말 유럽으로 떠났다. 당진사과연구회에서 생산한 ‘해나루사과’가 최근 우리나라 사과 중 처음으로 유럽 수출 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11월 10일 선적된 사과는 12월 7일 배에서 내린 후 유럽의 슈퍼마켓이나 과일가게에서 팔리고 있는데, 소비자의 반응이 어떤지 현지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서해안의 당진사과라니, 낯설었다. 사과 주산지가 아닌 당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사과를 생산하기까지 그곳 농부들의 남다른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 새로운 경쟁력과 틈새시장을 찾아나간 농부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해나루사과’를 생산하는 당진사과연구회는 1999년 만들어진 농부들의 모임. 그들이 어떻게 작은 기적을 이루어 냈는지, 지난 11월 말 ‘당진사과연구회’ 현상익 회장을 찾아갔다.

현상익 회장이 사과를 재배하는 충남 당진군 합덕읍 운산리의 과수원. 이미 수확이 끝난 과수원에는 몇몇 나무들만 사과를 매달고 있었다. ‘해나루사과’는 당진사과연구회 농부들이 생산한 사과 중에서도 당도 14브릭스 이상, 중량 350g 이상, 80% 이상 착색된 사과에만 붙일 수 있는 상표다. 브랜드 가치 덕분에 다른 사과보다 비싸게 팔려 당진사과연구회 농부들의 한 해 수익은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현 회장에게 당진 사과의 경쟁력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사과의 적정재배지역이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어요. 이제는 경북보다 이쪽이 사과 농사에 더 적절한 기후가 됐습니다. 게다가 이 지역의 토양이 황토라 마사토인 경북 쪽보다 오히려 사과 재배에 더 좋지요. 바다가 가깝다는 것도 병해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요. 바닷가 해송을 보십시오. 농약을 안 줘도 새파랗게 잘 자라지 않습니까? 저희도 바닷물을 사과 재배에 이용합니다.”

병충해 발생을 예상하기 위해 온도와 습도, 풍속 등을 재는 기상관측 장비.
당진사과연구회는 저농약ㆍ친환경 농법으로 사과를 재배한다. 무농약도 시도해 본 적이 있지만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그의 과수원에는 그때그때 온도와 습도, 풍속 등을 재서 병충해 발생 정도를 예측해 내는 기상관측 장비가 서 있다. 나방류의 발생 정도를 미리 알 수 있게 하는 성페르몬 해충 예찰 트랩 등도 놓여 있었다. 모두 농약을 최소한 쓰기 위한 장치들이라고 한다. 땅은 켄터키블루그라스와 톨페스키오라는 풀들로 덮여 있다. 사과나무로 가는 병해충를 유인하기 위한 장치로, 땅의 수분증발을 막아 지력(地力)을 좋게 만든다고 한다.

“현재 당진사과연구회 회원들은 30대 중반에서 70대 중반까지 70명입니다. 그 이상 되면 관리가 어려울 것 같아 인원을 제한해서 대기자들이 있지요. 회원이 되고도 규격에 맞는 사과를 생산하는 데 3년 이상 걸립니다. 좋은 유기물과 미생물이 풍부한 토양을 만들려면 그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 하고 있는 농법은 1999년 연구회가 만들어진 후 끊임없이 실험 연구한 결과에 따른 것.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땅에 풀을 심어 초생재배를 하고, 해초액과 조개껍데기 등을 사용하는 친환경 농사법이 그렇게 나왔다. 요즘도 1년에 100여 시간 이상 연구원이나 교수 등을 초빙해 최신 연구결과를 듣고, 다른 농가를 찾아다니며 신기술을 배운다. 대부분 수십 년씩 사과 농사를 지어 온 농부들로 이루어진 당진사과연구회에서 현상익 회장의 농사 이력은 초보에 가깝다.

“당진군의회 의원을 지내다 1998년 재선에 실패한 후 아버지가 하시던 과수원을 이어받아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초기 3~4년간은 농사를 완전히 망쳤습니다. 공주대 과수학과 교수 등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았더니 사과나무 1200그루를 전부 뽑고 새로 나무를 심으라고 하더군요.”


친환경 농법 찾기 위해 연구 거듭

대구보건대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그는 중풍으로 누우신 어머니 곁에 있어 드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후 건재상을 해 왔다. 그리고 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했을 때 당진군의회 의원이 됐다. 동네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나서서 하던 그를 보고 주변에서 출마를 권유했고, 당선했던 것. 그때도 “그저 지역일을 하는 것이겠거니 여겼지, 정치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나름 열심히 일했는데 재선에서는 실패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홍보가 부족했건 어쨌건 깨끗이 패배를 인정한 그는 건재상도 접고 아버지가 하시던 과수원으로 돌아왔다. 그는 4남4녀 중 막내. 형님들은 모두 외지로 나가 있어 과수원을 물려받을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과 농사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기가 생겼다. 그동안 안이하게 농사를 지어 온 것을 반성하고, 사과재배 고수들을 찾아 전국을 돌았다. 농촌진흥청이나 연구원, 자연농법을 하는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한 수씩 배웠다. 매년 겨울, 농한기 때마다 꼬박 두 달씩 그렇게 공부했다. 뽑힐 뻔했던 나무들은 그 덕에 이제 최고 품질의 사과를 생산하며 효자 노릇을 해내고 있다. 당진사과연구회가 만들어진 것도 그 즈음. 사과 품질을 높이고, 새로운 유통망도 함께 개척해 보자며 30명의 농부가 모인 게 시작이었다.

짓고 있는 공동선별장 앞에 모인 농부들.
수십 년씩 사과재배를 해 오던 농부들이 그동안 해 오던 방식에 대한 고집을 버렸다. 새로 기술 교육을 받고, 어떻게 하면 친환경으로 좋은 품질의 사과를 생산할 수 있을지 하나씩 실험해 가며 방법을 찾아 나갔다. 그 결과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에서 저농약 인증을 받고, 국제표준화기구의 국제품질경영인증(ISO9001)도 받았다.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전국 최우수연구회상을 받고, 최고의 과일에 붙이는 ‘탑푸르트’ 지정도 받을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유통의 다변화.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생산량은 많고 소비가 줄면 제값을 받기 어려웠다.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국내 시장을 벗어나 수출 길을 뚫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해부터 바이어 접촉을 시작했고, 올해 처음으로 5kg짜리 500상자, 총 2.5t의 ‘해나루사과’를 유럽행 배에 실을 수 있었다. 수출가격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될 때보다 높은 수준.

“독일은 광부나 간호사로 떠났던 우리 교민들이 많아 우선 그곳을 생각했습니다. 유럽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우리 사과보다 작고 퍽퍽한데, 일단 맛을 보기 시작하면 현지인도 우리 사과를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당진사과연구회는 7억 원이 들어가는 공동선별장을 짓는 중이다. 크기와 당도, 착색 등에 따라 사과를 등급별로 구분하는 장소. ‘해나루사과’라는 브랜드를 관리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동선별장을 마련하기로 뜻을 모았다. 사진촬영을 위해 한창 작업으로 바쁜 농부들이 하나 둘 모였다. 40년간 사과재배를 해 왔다는 고광무 씨. 그는 “사과 농사는 자식 키우는 것과 똑같다”고 한다.

“한 나무, 한 나무뿐 아니라 한 가지, 한 가지까지 하나하나 챙겨서 돌봐야 해요. 거기에 실한 열매가 달리고, 외지에서 제대로 평가받았을 때 그 기분은 말도 못 하지요. 자식 잘 키워 낸 보람 같은 거지요.”

사진 : 문지민
  • 200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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