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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빠졌던 당구로 시작된 새로운 인생

당구월드컵에서 준우승 차지한 당구선수 김경률

초크 질을 끝낸 큐(Cue Stick)가 앞뒤로 몇 번 펌프질하더니 이내 단단하고 매끈한 흰 공을 강하게 때렸다. ‘탕’하는 경쾌한 음과 함께 앞으로 튀어나간 흰 공은 당구대 벽면을 차례로 돌며 기하학적인 궤도를 그린다. 그리곤 마치 공 속에 자석이라도 숨겨 놓은 듯 당구대 구석 나란히 자리 잡은 붉은색과 주황색 두 공과 차례로 몸을 부딪친다. 묘기는 이어졌다.

지난 10월 4일 수원. 한국 당구 역사의 한 페이지가 추가되었다. 비록 결승에서 세계 랭킹 1위 딕 야스퍼스(네덜란드)에게 세트스코어 2대 3으로 졌지만, 스물여덟 김경률이 한국인 최초로 스리쿠션당구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역삼동의 한 빌딩 3층에 자리 잡은 스리쿠션 국가대표 훈련장을 찾았다.

185cm에 95kg. 격투기가 어울릴 것 같은 거구에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 느릿느릿한 움직임의 그를 보니 개그맨이라도 만난 듯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경상도 사투리가 진하게 밴 말투에서는 순수함과 진지함이 묻어난다. 남자들끼리 만나면 상대에 대해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가 ‘다마 수(당구점수)’다. 그에게 당구점수를 물었더니 답은 “몰라요”였다.

“글쎄요. 예전에 한 신문사에서 자꾸 물어서 쓰고 싶은 만큼 쓰라고 했더니 2000점이라고 했더군요. 그건 아니고 저도 제 점수를 몰라요. 그냥 한국에선 제가 제일 잘 친다고 하죠.”

어릴 때부터 덩치가 컸던 그는 씨름과 태권도를 먼저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씨름과 태권도 선수생활을 했어요. 덩치가 산만 하니 선생님들이 권했지요. 그런데 제가 워낙 느려요. 근력이나 지구력, 순발력 이런 게 남들보다 형편없이 떨어졌어요. 그러니 처음엔 제 덩치에 기가 죽었던 상대 선수들이 한번 붙고 나면 오히려 기세등등해서 저를 이겼죠. 그래서 중학교 올라가면서 운동을 그만뒀어요.”

그가 당구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따라 당구장에 가면서였다.

“친구들이 ‘재미있다’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어요. 진짜 재미있었어요. 그때 생각하면 웃음만 납니다. 저도 당구(점수가) 30일 때가 있었다니….”

고등학생 김경률은 ‘친구들보다 잘 쳐 보겠다’는 생각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당구장을 찾았다.

“고등학교 3년간 학교에 있던 시간보다 당구장에 있던 시간이 많았어요. 학교 끝나면 바로 당구장에 가서 새벽 3~4시까지 공을 쳤으니까요. 지금도 하루 7~8시간씩 연습하지만 그땐 지금보다 더 열심히 했었어요.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쳤는지…. 아마 그 덕분에 기초가 튼튼해졌나 봐요(하하하).”

그가 당구에 빠져 살던 1990년대, 기성세대에게 당구장은 ‘문제아 집합소’ 쯤으로 여겨졌다. 한창 공부해야 할 학생이 당구에 빠져 사니 부모님 반응은 어땠을까?

“지금은 팬이 됐지만 아버지와 누나에게 참 많이 혼났죠. 엄마가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엄마는 늘 ‘싸우지 말고,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네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하셨거든요. 제가 당구장 가는 걸 다 알면서도 당구비 떨어질 때쯤 ‘육성회비 가져가야 된다. 책값, 우유값 내야 한다’고 거짓말하면 모르는 척 속아 주셨어요.”

그러다 당구가 인생의 전부가 된 것에 그는 “세상 사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당구를 택했다”고 했다.


데뷔 6년 만에 세계 최고 선수로 급성장

“2001년에 제대했는데 할 일이 없었어요. 살길이 막막했죠. 돈 벌겠다고 작은 트럭을 끌고 전국을 돌며 옷 장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기름값도 안 나왔어요. 그때 친구들이 ‘야, 너 그냥 당구해. 넌 그걸 제일 잘하지 않니’라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그냥 들어 넘겼지요.”

그러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황득희가 당구 스리쿠션 종목에서 금메달 따는 것을 보고 ‘해보자’는 생각을 했단다. 데뷔하자마자 그는 거칠 것이 없었다. 2003년, 데뷔 1년차 때 ‘SBS당구대제전’ ‘SBS왕중왕전’에서 연이어 준우승을 하며 주목받더니 2004년엔 국내랭킹 4위, 2005년엔 ‘왕중왕전’ 등 몇 대회의 우승을 거머쥐며 국내랭킹 1위에 올라 국가대표가 됐다. 이듬해 국내랭킹 1위 자격으로 카타르 도하아시안게임 대표선수가 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때 세계 최강자들이 겨루는 월드컵에선 수차례 4강에 들었다.

김경률은 현재 세계랭킹에서 6위, 2008년 성적만을 합산한 월드컵랭킹에선 3위에 올라 있다. 세계랭킹과 월드컵랭킹에서 각각 10위 안에 진입한 아시아인은 김경률이 유일하다. 데뷔 6년 만에 아시아 최강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 초고속 성장한 것이다. 그는 “경상도 촌놈이 참 많이 출세했어요”라며 말을 이었다.

“처음 세계무대에 나갔을 땐 외국 선수들이 농담은커녕 호텔이나 클럽에서 아는 체도 안 했죠. 근데 3등도 하고, 4등도 하면서 성적이 좋아지니까 세계 톱랭커들이 먼저 농담도 걸어오고, 밥도 같이 먹자며 아는 척을 하더군요. 세계랭킹이 10위 안에 들어가면서는 호텔방에도 찾아오고, 시합 때 장난도 걸면서 저를 가족처럼 대합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마인드스포츠 당구. 이런 이유 때문인지 당구선수들은 폐쇄적이라고 한다. 특히 대회마다 시드를 배정받는 세계 10위 이내 선수들은 자신들의 무리 밖 선수에게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을 만큼 배타적이라고 한다. 그런 세계 당구 판에서 어느 사이 김경률은 세계 톱랭커들로부터 자신들과 같은 수준의 선수로 성장했음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수원에서 열린 스리쿠션당구월드컵에 대해 묻자 “아이고 그거 참 돌아뿌겠슴데이”라는 말부터 나왔다.

“올해 우승 없이 3등만 네 번을 했어요. 그래서 월드컵 우승이 더 탐났어요. 월드컵에선 아직 한국선수가 결승에도 올라가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근데 대진표를 보니 ‘와, 이건 최악이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어요. 1회전을 통과하면 8강에서 세계 4위, 4강에선 세계 2위를 만나게 돼 있더라고요. 저는 신경 안 썼는데 주변에서 ‘무슨 시드 배정이 이러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고 하더라고요.”

수원스리쿠션 월드컵 결승전 모습.
이변이 시작됐다. 그의 큐가 불을 뿜었다. 8강과 4강에서 다니엘 산체스(4위)와 프레드릭 쿠드롱(2위)를 연달아 격파하며 결승에 오른 것이다. 세계 1위 딕 야스퍼스와의 결승. 결과는 세트스코어 2대 3 패였지만 경기 초반 0대 2의 세트스코어를 2대 2로 만들며 데뷔 6년차 스물여덟 애송이가 마흔셋 ‘판타지’라 불리는 세계 1위를 뛰어넘는 이변의 순간까지 갔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긴장 때문이었는지 마지막 세트를 내주며 무너졌다.

“야! 그때 생각하면 정말 잠도 안 와요. 결승에 오른 것도 대단하지만 이왕 올랐으면 우승해야 하는데…. 기량이 모자라서 진 게 아니라 이길 수도 있는 경기를 진 게 너무 아쉬운 거죠.”

그는 인터뷰 내내 이때의 준우승이 못내 아쉬웠다며 “다음엔 꼭 이길 것”이란 말을 했다.

세계 최고의 당구선수 대열에 들어선 그는 “당구는 호황인데, 당구선수만 어렵다”는 말로 한국당구의 현실을 얘기했다.

“한국만큼 당구장이 많은 나라가 없음에도 당구는 여전히 그저 그런 애들이 모여 시간 죽이는 정도로 생각하는 게 현실이에요. 자연히 기업이나 단체의 지원이 없어요. 기업들은 당구를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기도 하고, 당구 장비 제조와 수출로 엄청난 돈을 벌면서 정작 한국 당구에 대한 지원은 안 합니다. 모순입니다. 외국 기업들은 당구로 벌어들인 수입을 당구 발전에 쓰죠. 우리도 그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세계챔피언도 인생의 목표지만 어린 친구들이 당구를 스포츠이자 문화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사진 : 신규철
  • 200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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