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 보도사진 한 장이 갖는 힘이 아닐까?">

외면해 온 지구촌의 현실 파헤치는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

진실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 보도사진 한 장이 갖는 힘이 아닐까?
세계 유명 보도 사진전인 프랑스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을 놀라게 한 이가 있었다. 한국인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38). 그는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산모 사망률 포토 스토리로 ‘케어 인터내셔널 휴머니티 르포르타주’ 그랑프리를 수상한 데 이어 올해는 ‘피에르&알렉산드라 불라Pierre & Alexandra Boulat Award상’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평소에 존경하는 사진가인 알렉산드라 불라를 기리기 위한 첫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니 큰 영광입니다.”

그는 이 수상을 계기로 사진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보도사진가로서의 사명감을 다시 한 번 다지게 되었다고 한다. ‘피에르&알렉산드라 불라상’은 올해 처음 캐논 카메라 사 협찬으로 제정된 것으로, 지난해 뇌동맥 파열로 갑자기 사망한 ‘세븐(VII)’포토 에이전시 창립자이자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여성 사진가인 알렉산드라 불라와 20년 이상을 <라이프>지에서 일해 온 그의 아버지 피에르 불라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첫 수상자를 결정했다. 여성들의 고난을 깊은 감수성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콩고 스토리는 불라상의 취지와 일치했다. 우리 모두는 정은진의 저널리즘적 관점과 사진의 색감, 빛에 감명받았다.”(애니 불라Annie Boulat(코스모스COSMOS 포토에이전시 창립자, 피에르&알렉산드라 불라 협회장)

‘콩고의 눈물(Tears in the Congo)’은 2008년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그가 아프리카 콩고와 르완다에서 체류하며 쏟아 낸 작업이다. 콩고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성폭력 이야기는 그를 전율케 했다. 그 전율은 여성이기에 더했고, 세계인들에게 꼭 전해야 하는 이야기가 됐다. 전 세계에 콩고와 르완다 여성들의 고통과 치유,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그. 그가 목도한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콩고에서는 하루 평균 36건, 1년이면 1만3247건씩 성폭력 사건이 자행된다.

Tears in Congo 콩고 고마의 케세로 병원에서 만난 18살 소녀 투옴베.
“집단 강간은 기본입니다. 일곱 살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강간 후 총부리로 성기를 훼손해 대장이 터져 나와 죽기도 한답니다. 성기 훼손으로 평생 기저귀를 차고 지내기도 하지요.”

그가 지난 10월 펴낸 포토 에세이집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 刊)에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럴 수 있는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는 사진을 통해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때부터 심화된 종족 간 갈등이 지금 어떻게 표출되는지 고발한다. 콩고의 병원에서 인터뷰 할 때 그는 링거 주사를 맞고 있는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Tears in Congo 케세로 병원에서 만난 환자 마르셀린이 한 살배기 아들 알렉시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진통주사를 맞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한 줄기 눈물을 흘렸어요. 정말 딱 한 줄기. 그 이상 울지 않았어요.”

임신 7개월이던 그 여성은 강간당해 태아가 위험해져 제왕절개수술을 받았는데, 결국 아이를 잃었다고 한다.


끔찍한 일 당하고도 꿈을 잃지 않는 아프리카 여성들

“‘정말 여자로서 견디기 힘든 폭력을 당하고 무슨 힘으로 살아갈까’ 궁금했는데, 병원에 가 보면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물으면 고향에 돌아가 과일을 팔 거래요. 그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아요.”

그는 10월 30일부터 11월 16일까지 열린 대구 비엔날레에서 ‘변해가는 북한전’에 참여했다. 2005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여자권투선수권 대회를 담은 사진이다. 또 11월 20일부터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앙코르페스티벌 워크숍에도 참가했다. 이 모든 행사가 끝나면 다시 콩고로 떠날 계획이다. ‘콩고의 눈물’ 작업 때 만난 여성들이 고향에 돌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볼 참이다. 그의 사진이 빛나는 이유는 그들의 눈물 뒤 실낱 같은 희망을 포착해 냈기 때문 아닐까?

그는 상금 대부분을 취재비로 사용한다고 한다. 아프리카 체류비는 어마어마한 액수.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편안한 생활을 원했다면 애초부터 보도사진가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NYU에서 사진학을, 미주리대 언론대학원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했다. 미주 <한국일보> 뉴욕지사에서 기자로 6년 정도 일했고, 2004년부터 프리랜서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해 현재 포토 에이전시 ‘World Picture News’ 전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12월, 쓰나미를 당한 후의 태국을 촬영한 사진이 <뉴욕타임스> 1면 톱 사진으로, 2006년 5월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선교사 사진이 <타임>지 아시아판 표지 사진으로 실리기도 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사진과목을 수강하면서 사진에 매력을 느껴 미국으로 유학가게 되었어요. 1995년 수업과제로 뉴욕 차이나타운의 경극단 미국동부 순회공연을 동행 취재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는 대학원 시절인 2002년 2월에서 3월까지 방학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에 다녀오기도 했다. 국제정세의 흐름에 관심이 많았는데, 앞으로 세계 정세는 서방과 이슬람의 대결 구도로 갈 것 같다고 생각해서였다. 중앙아시아와 이스라엘 등지를 드나들다 ‘아예 중앙아시아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06년 8월, 아프가니스탄 카불로 향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 반드시 복이 되어 돌아온다고 믿는 게 이슬람 문화입니다. 이방인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그들은 손님 접대 풍습이 극진하지요.”

그러나 그곳에서 100년 전 한국에서나 보았을 법한 ‘여성의 현실’과 마주했다. 지금도 온몸을 부르카로 감싼 여인들이 남녀 차별적인 문화에서 교육받고 있다. 사진 에세이집 《카불의 사진사》는 탈레반과 이슬람, 인질사태 등으로만 떠올리던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알렸다. 《내 이름은 ‘눈물’ 입니다》 책의 끝머리에는 ‘그녀는 나의 희망이에요’라는 말이 나온다. 동시대에 살면서도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파헤치는 사진가. 그 진실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 보도사진 한 장이 갖는 힘이 아닐까? 그는 그 힘을 알고 있다.

사진 : 이창주
  • 200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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