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이 가장 잘 알죠. 시합은 승부보다 팬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팬들이 우리를 보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화끈한 경기를 보고 싶은 거지요. 선수 스스로가 파이터 기질을 잃으면 도태되는 곳이 바로 격투기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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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정승보다는 차라리 KO패가 낫죠

정열적인 경기로 인기 끄는 UFC의 한국인 격투기 선수 김동현

“팬들이 가장 잘 알죠. 시합은 승부보다 팬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팬들이 우리를 보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화끈한 경기를 보고 싶은 거지요. 선수 스스로가 파이터 기질을 잃으면 도태되는 곳이 바로 격투기 세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들이 맞붙는 곳, 미국의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무대. 그 무대에 코리아 열풍을 불러일으킨 젊은이가 있다. 격투기 본고장 미국에서 맨주먹 하나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김동현(27)이다. 조르주 생피에르(캐나다), 존 피치, 맷 휴즈, 디에고 산체스(이상 미국) 등 이름만으로도 격투기 팬들을 설레게 하는 강자들이 즐비한 웰터급(77kg이하) 무대를 누비는 그를 만났다.

부산 구덕운동장 앞 3층짜리 건물 안의 지하 체육관. 표면이 뜯겨 속이 드러난 글로브들과 매트 아래에서 올라오는 땀 냄새가 이곳의 훈련이 얼마나 혹독한지 알 수 있게 했다. 격투기 선수보다 모델이라면 더 어울릴 듯한 184cm 훤칠한 키와 매끈한 얼굴의 김동현. 그의 격투기 인생은 중 3이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유도의 전기영이 한판승 행진을 벌이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작됐다. 그는 그 모습에 매료돼 “싸움질하는 운동은 안 된다”는 부모님을 설득, 동네 유도장을 찾았다.

뒤늦게 운동을 시작해 용인대 유도대학에 입학했지만, 뛰어넘기 어려운 벽이 있었다.

“체육고 출신도 아니고, 특기생도 아닌 일반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국가대표가 될 기회조차 얻기 어렵더군요. 더 이상 유도를 하는 건 의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1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습니다.”

제대 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바로 이종격투기.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던 일본의 이종격투기가 한국에 상륙한 것이었다.

이종격투기 시합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일본 선수들의 격투기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구해 기술을 흉내 내며 혼자 연습하던 그는 2003년 9월, KPW라는 아마추어 공식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세 번 싸웠는데 첫 판만 판정승이었고 나머지는 KO로 이겼습니다. ‘충분히 통하겠구나!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우승을 거듭하며 그는 아마추어 격투기 그랜드슬래머로 불렸다.


2004년, 그는 한국 이종격투기 메인무대인 스피릿MC 아마대회에 도전한다. 우승자는 프로선수로 신분이 바뀌는 대회였다.

“한국에서 가장 큰 무대였는데 이상하게 뛰기 싫었어요. 링 위에 서니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죠. 그래서 최영이라는 재일교포 선수에게 졌어요. 자기조절을 못 했다는 게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그런데 이 대회에 우승한 최영 선수뿐 아니라 그와 박빙의 승부를 벌인 저까지 프로 자격을 준다는 겁니다.”

당시 최영에게 진 1패는 그에게 아마추어와 프로 무대를 통틀어 유일한 패배. 격투기에 대한 가족들의 강한 반대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때였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격투기를 하겠다’고 했더니 ‘호적을 파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격투기 시합하는 것을 숨기며 훈련했는데 용돈만으로는 훈련비용도 마련하기 어려웠어요.”


프로선수는 승부보다 팬을 위해 뛰어야

사진 제공 : 수퍼액션
모든 게 싫어진 그는 ‘돈이나 벌자’는 심정으로 뉴질랜드로 향했다.

“부모님께는 ‘어학연수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순전히 돈을 벌고 싶어 뉴질랜드로 갔어요. 뉴질랜드에 도착하니 막막하더군요. 영어도 안 되고, 막노동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아무리 일해도 생활비조차 벌기 어려웠어요. 답답해서 동네 유도장을 찾았는데, 코치까지 한판으로 이겼어요. 그때 생각했죠. ‘결국 이게 내 길이구나’ 하고. 다음날 짐을 쌌죠. 1년 계획하고 갔는데 넉 달 만에 돌아왔어요.”

2005년 스피릿MC 무대에서 가볍게 상대들을 녹다운시켰는데, 가족들이 그의 경기 모습을 케이블TV를 통해 본 것이다.

“‘이러려고 돌아온 거냐’며 난리가 났죠. 이번에는 저도 ‘딱 1년만 하겠다’며 부모님을 적극적으로 설득했죠. 결국 부모님이 져 주셨어요. 그때부터는 죽도록 연습만 해도 힘들기보다 너무 즐거웠어요.”

한국엔 상대가 없던 그에게 일본 격투기 단체 ‘Deep’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제 경기가 화끈했나 봐요. 그쪽에서 먼저 제의가 왔어요. 처음엔 정식계약이 아닌 ‘한국 대 일본 선수가 맞붙는 이벤트성 시합에 나갈 수 있느냐’는 거였습니다. 흔쾌히 받아들였고, KO로 이겼죠. 2007년 2월에 정식 계약을 맺고 일본 무대인 Deep에 진출했습니다.”

Deep에서 김동현은 6연승을 내달리며 말 그대로 무적이었다. 2007년 8월 Deep의 챔피언 하세가와 히데히코(30)마저 TKO 침몰시키며 세계 격투기 무대에 김동현을 각인시킨다. 일본 진출 후 7승1무, 7승 중 6승이 KO승. 프라이드와 UFC 등 격투기 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인 곳에서 그를 잡기 위해 나섰다. 그는 프라이드를 선택했다. 하지만 프라이드는 자금난과 폭력조직 연루설이 나돌면서 결국 단 한 번의 시합도 뛰어 보지 못한 채 해체돼 버린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Deep으로 돌아와 곧바로 하세가와 히데히코와 챔피언벨트를 놓고 리턴매치를 벌였다. 모두 그가 ‘이겼다’고 했지만 결과는 무승부. ‘일본에서 한국인이 일본인을 꺾고 챔피언이 되는 것을 일본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경기’였다. 새로운 무대를 찾아야 했다. 망설임 없이 세계 최고 무대인 UFC의 러브콜을 받아들였다.

올해 5월 UFC 데뷔전. 제이슨 탄(영국)을 TKO로 침몰시켰다. 미국 팬들은 열광했다. 단순히 TKO여서가 아니라 지칠 줄 모르고 돌격하는 그의 화끈한 플레이에 팬들은 열광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첫 경기에 미국 무대에서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부담감이 있었지요. 3라운드 들어 ‘쓰러뜨린다’는 딱 하나만 생각했어요. 주먹을 휘두르는데 심판이 절 말리더군요. 다행이었죠.”

9월 UFC 유망주인 동갑내기 맷 브라운(미국)과의 두 번째 경기. 그의 위상이 달라졌다.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는 메인매치로 경기가 벌어졌다. 2대 1 판정승. 하지만 그는 “훈련이 부족해 지금껏 한 시합 중 가장 화끈하지 못했던, 아쉬운 경기”라고 했다.

김동현은 “판정으로 이기기보다는 차라리 KO로 지는 게 낫다”고 말하는 저돌적인 파이터다.

“팬들이 가장 잘 알죠. 시합은 승부보다 팬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팬들이 우리를 보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화끈한 경기를 보고 싶은 거지요. 선수 스스로가 파이터 기질을 잃으면 도태되는 곳이 바로 격투기 세계입니다.”

많은 언론에서 김동현에게 언제쯤 챔피언에 도전할지를 묻는다. 기자 역시 물었다. “저도 모릅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그는 “지금의 챔피언 조르주 생피에르는 대 선수”라며 “ 게임 스타일 뿐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닮고 싶을 만큼 뛰어난 선수”라며 말을 이었다.

“제게 챔피언벨트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수와 게이지 안에서 맨몸으로 꼭 한번 상대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져도 괜찮습니다. 제 꿈은 챔피언이라는 타이틀보다 누구와 싸워도 명승부를 만드는 선수가 되는 겁니다.”

그는 내년 2월 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UFC 94 대회에 출전해 UFC 통산 18승의 강자 카로 파리시안(미국)과 대결할 예정이다.

사진 : 신규철
  • 200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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