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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들의 역사를 속속들이 기록하려 동네마다 셋방 얻었죠

이건욱 국립박물관 학예사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마을의 모습, 그들이 쓰던 물건 하나하나가 모두 사라지는 민속이고 역사”라는 말은, 지금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이 단순한 보고서가 아님을 알게 했다.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한 작업, 그는 참 따뜻한 기록자다.
아직은 개발의 바람이 미치지 않은 서울 성북구 정릉3동은 조용하고 한적한 풍경이 시골 읍내를 연상시킨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낡고 오래된 아파트며 이용원, 양복점, 사진관 같은 고풍스런 간판들, 고만고만한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좁은 골목길은 정겹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2003년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된 이후 서서히 제기되기 시작한 대대적인 정비사업계획이 최근 들어 부쩍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져 가는 도시민속을 연구하는 국립민속박물관 이건욱 학예사의 발걸음도 그만큼 바빠졌다. 현재 ‘정릉3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마을 곳곳을 누비고, 골목에 버려진 물건들을 모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하고 있는 도시민속 연구란, 수십 년간 도시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사라져 가는 풍습과 생활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 굳이 서울을, 그것도 낡고 오래된 동네를 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서울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연구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국인의 70%가 도시에 살고 있고, 그중 절반은 서울에 있어요.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모여든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사는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면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데, 서울에서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잖아요? 제가 초등학교 때 이 근처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이곳은 정말 30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게 거의 없어요. 앞으로 이런 동네를 찾기는 점점 더 어렵겠죠. 그래서 다 묻히기 전에 하나라도 더 조사하려고요. ‘조금 더 빨리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정릉에 오기 전, 그는 지난 한 해를 아현동에서 보냈다. 재개발이 확정돼 주민 모두가 이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현동으로 들어간 그는 주민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오랫동안 사용하던 물건들도 생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설명에 떡볶이 포장마차를 하던 김종호, 김복순씨 부부는 자신들이 쓰던 세간을 아예 통째로 내주었다. 그가 후배 학예사와 함께 펴 낸 두 권의 책,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와 《김종호, 김복순 부부의 물건 이야기》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물론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고향 같은 곳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현실에서 외지인인 그를 경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쉽게 곁을 주지 않았고, 말문도 열지 않았다. 작업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그는 박물관을 나와 아예 아현동 옥탑방에 세를 얻어 들어갔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는 동네라 마을의 궂은일에 적극 나섰고, 길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에게는 살갑게 안부를 물었다. 결국 이 ‘붙임성 좋은 젊은이’는 이 동네의 일원이 되었고, 어르신들이 꾹꾹 눌러 온 상처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그분들이 살아온 얘기를 듣다가 가슴이 먹먹해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비롯해 가난하고 험난한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그분들이 겪었던 고생은 정말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게 먼 옛날 얘기도 아니거든요. 바로 우리 할아버지ㆍ할머니, 아버지ㆍ어머니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그 힘겨운 삶은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이기도 해요. 역사는 정치인들의 이야기일 뿐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이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중입니다.”


북방의 민속 조사 위해 4년간 시베리아 누비기도

이처럼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그는 다양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몸으로 꿋꿋하게 세상과 맞서며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들을 교육시킨 여성들의 삶, 러시아 샤머니즘, 우리나라 세시풍속 등이 주요 관심사. 박물관에 있는 날보다 밖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날이 더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도시민속 연구 때문에 아현동에서 6개월, 정릉에서 3개월을 살았던 것을 비롯해 그전에는 농촌의 세시풍속 자료집을 만드느라 충남 서산에서 농민들과 1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북방의 민속 조사를 위해 4년간 광활한 시베리아 지역을 누빈 적도 있다. 2002년 무렵에는 아직도 원형이 남아 있는 마을 제사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았다.

스스로도 “박물관에 들어오고 나서 역마살이 본격적으로 발동된 것 같다”고 할 정도로 그는 그동안 많은 곳을 떠돌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며, “미치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이는 그의 말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학예사가 되기 전, 그는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러시아 풍속 연구로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해 한 학기 동안 대학 강단에 섰던 것. 하지만 민속학과 인류학을 두루 공부한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국립민속박물관 측의 제안을 받고 2002년 학예사로 진로를 바꾸었다.

“박물관 일도 꼭 해보고 싶은 분야였어요. 그런데 기회가 온 거죠. 특히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했어요. 옛날로 치면 ‘입궐’하게 된 거잖아요(웃음). 이렇게 떠돌며 살게 될 줄 몰랐죠. 처음에는 학예사라고 해서 오리엔테이션 때 양복을 입고 갔어요. 그런데 팀장님이 웃으면서 ‘앞으로 편하게 입고 다니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다음 날 알게 됐어요. 조사, 연구, 기획 업무를 다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거운 짐도 날라야 하고, 유물 보존실을 수시로 드나들며 독가스도 마셔야 하고,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 많아요.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저는 이 일이 정말 즐겁습니다.”


인터뷰를 마치자 그는 “동네 어르신과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카메라 가방을 챙겼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마을의 모습, 그들이 쓰던 물건 하나하나가 모두 사라지는 민속이고 역사”라는 말을 남기고.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이 단순한 보고서가 아님을 이제야 알겠다.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한 작업, 그는 참 따뜻한 기록자다.

사진 : 김홍진
  • 200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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