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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과 제리> 이후 세계 어린이 사로잡는 한국의 슬랩스틱 애니메이션 ‘빼꼼’

김강덕 알지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대표

북극에 살던 산 만한 덩치의 백곰 ‘빼꼼’ 녀석이 도시로 왔다. 곰인지 개인지 어정쩡한 외모에 조금 모자란 듯 좌충우돌 실수투성이 사고뭉치 ‘빼꼼’. 녀석은 가는 곳마다 포복절도, 웃음폭풍을 몰고 다닌다. “웅~, 우웅, 우~” 하는 말 외엔 단 한마디 대사도 없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때론 하늘 위로 튕겨져 까마득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등 효과음과 음악에 딱 맞아떨어지는 슬랩스틱 몸 개그를 작렬시킨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며 끊임없이 뭔가에 도전하는 녀석의 모습엔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이 묻어난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빼꼼의 매력은 <톰과 제리> 이후 최고의 슬랩스틱 스타로 전 세계 아이들의 배꼽을 빼놓고 있다.

3D애니메이션 ‘빼꼼’을 탄생시킨 알지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빼꼼 아빠’ 김강덕 대표를 만났다. 빼꼼은 2003년 시작된 단편 애니메이션〈I Love Picnic〉과 2004년〈I Love Sky〉가 모태가 돼 2006년 8월 EBS를 통해 첫 방송되며 꼬마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부천만화산업종합지원센터 3층에 위치한 알지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사무실. 빼꼼의 포스터와 인형, 각종 문구류 등 녀석이 주인공인 캐릭터 상품들로 가득 찬 통로 사이로 ‘빼꼼 아빠’ 김강덕 대표가 나타났다.

김 대표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엘리트 군인 코스를 밟고 있던 김강덕. 그는 “군인으로 사는 것도 즐거웠지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애니메이터가 됐다”며 인생 항로를 변경한 이유를 설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선생님 중 한 분이 ‘특수대학 한번 가 보는 게 어때?’하는 거예요. 짝한테 ‘특수대학이 뭐냐’고 물어보니 육사ㆍ공사ㆍ해사ㆍ경찰대라고 하더군요. 경찰대는 알겠는데 나머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물었더니 그 친구가 ‘공사는 파일럿, 해사는 선장, 육사는 대통령이 되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1985년 고3 김강덕. 흔히 말하는 명문대에 갈 수 있을 정도의 학력고사 성적이 나왔다. 하지만 짝이 던진 이 한마디에 친구들과 함께 육군사관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1986년 육사에 입학한 김강덕은 장군을 꿈꾸며 ‘별생도’라 불릴 만큼 군과 육사에 애착을 가졌다.

“육사가 참 좋았어요. 장성까지 되고 싶었지요. 광주에 있는 상무대에서 교육받을 당시 장성의 강의를 듣다 ‘어떻게 하면 별을 달 수 있습니까?’라는 당돌한 질문을 했을 정도니까요.”

육사 4학년 때 지하철에 육사 정복을 놓고 내렸다 퇴교 위기까지 몰리면서 ‘군인이 내 길인가’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그는 졸업 후 전방부대 포병대 사격 지휘 장교가 된다. 그런데 이 시절은 그에게 애니메이터로 변신하는 계기가 됐다.


포병대 장교 시절 빠져든 3D스튜디오가 바꿔 놓은 삶

“육사 때 전공이 전산이었어요. 장교가 되고 나서도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게 즐거웠습니다. 같이 있던 통신병 중 어셈블리라는 기계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워드프로세스를 만드는 재주를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에게 워드 만드는 걸 배우면서 새 컴퓨터를 샀어요. 그때 3D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을 서비스로 받았는데, 이걸 해 보고 싶어서 휴가 때 젤 먼저 3D스튜디오 책을 사서 봤어요. 책을 통해 배운 3D스튜디오는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움 그 자체였어요. 작은 공을 그려서 튀게 하고, 사람을 그려 걷고 뛰게 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지요.”

여기에 완전히 빠져 버린 그는 퇴근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3D스튜디오로 작품을 만드는 게 일과일 정도였다. 그게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대위에서 소령 진급을 앞둔 그는 애니메이터가 되겠다며 전역신청을 한다. 가족과 부대에서는 난리가 났다. “촉망받는 엘리트 군인이 아이들이나 보는 만화(애니메이션)를 하겠다고 전역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이었다.

“집에선 ‘너 미쳤냐’는 말을 들었죠. 상관인 연대장은 훈련장이고 식당이고 따라다니며 ‘(사회에) 나가 봐야 애니메이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차라리 다른 일을 하겠다면 말리지 않겠다’며 전역신청을 철회하라고 했죠.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군을 나왔습니다.”

군을 나온 그의 인생은 가시밭길이었다.

“연대장의 말이 맞더군요.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외국 제작사의 하청을 받아 자막이나 타이틀 작업을 하는 정도여서 제가 하려던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김 대표는 심형래의 <용가리>팀과 김혁의 <철인사천왕>팀을 만나며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할 기회를 잡는다. 그는 <용가리>의 특수효과 팀 대신 애니메이션인 철인사천왕 팀에 합류했다.

“<철인사천왕>이 흥행에 참패했어요. 비참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철인사천왕>은 기술적 진보라는 데서 위안을 찾을 뿐 스토리나 재미는 정말 ‘꽝’이었죠. <철인사천왕>은 제게 ‘대중은 냉정하고 정확하다’는 걸 가르쳐 준 작품입니다. 이후에도 몇몇 작품의 스태프와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는데 모두 망했습니다.”

결국 생활의 방편으로 3D회사에 취직했는데, 이곳에서 지금의 ‘빼꼼’을 함께 탄생시킨 동지 임아론 씨를 만났다.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임아론 씨는 이후 김 대표가 기획하고 제작한 빼꼼의 극장판을 감독했다.

“당시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돈만 좇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최소한의 재미와 작품성이 따라 줘야 하는데, 돈만 생각하고 만드니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임 감독은 작품에 대한 이해와 작가주의라는 확실한 철학이 있었어요.”


2002년 둘은 의기투합해 알지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빼꼼이 탄생했다. 빼꼼을 알리기 위해 이들은 세계 각종 영상ㆍ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출품하고, 인터넷을 이용했다.

외국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2004년 각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상업성을 평가하는 프랑스 ‘밉주니어(Mip junior)챌린지’에서 한국 최초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영화제와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것. 그리고 영국의 BBC와 미국의 카툰네트워크, 스페인의 비아르비 인터내셔날, 프랑스의 M6, 한국의 EBS 등 세계 각국의 방송과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투자 제의가 쏟아졌고, 인터넷 동영상은 조회기록을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인기를 누리며 세계 20개국으로 수출되었다.

지난해에는 ‘빼꼼 시즌2’를 발표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단편 TV시리즈를 넘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빼꼼의 머그잔 여행>이 1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올해는 <난타>를 히트시킨 PMC프로덕션이 뮤지컬로도 내놓을 예정이다.

“픽사나 디즈니와 비교하기엔 아직 너무나 모자란다”며 “갈 길이 멀다”는 김 대표. 그는 현재 빼꼼을 포함해 세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한때 4성(四星) 장군을 꿈꾸던 그는 이제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표 주자가 되어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즐거움이라는 ‘별’을 선물하고 있다.

사진 : 신규철
  •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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