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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대처하는 명랑한 자세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15) 김행숙 <이별의 능력>

장소협찬 : CAFE THE OTHER
나는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당신의 폐로 흘러가는 산소.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 거야.
당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알고 있었니?
당신이 혐오하는 비계가 부드럽게 타고 있는데
내장이 연통이 되는데
피가 끓고
세상의 모든 새들이 모든 안개를 거느리고 이민을 떠나는데

나는 2시간 이상씩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씩 빨래를 하고
2시간 이상씩 낮잠을 자고
3시간 이상씩 명상을 하고, 헛것들을 보지. 매우 아름다워.
2시간 이상씩 당신을 사랑해.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새들이 큰 소리로 우는 아이들을 물고 갔어. 하염없이 빨래를 하다가 알게 돼.
내 외투가 기체가 되었어.
호주머니에서 내가 꺼낸 건 구름. 당신의 지팡이.
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 때가 있었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데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
털이 빠지는데,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2분간 냄새가 사라지는데
나는 옷을 벗지. 저 멀리 흩어지는 옷에 대해
이웃들에 대해
손을 흔들지.


이별을 노래하는 시들은 많다. 누구나 이별을 겪으며 살기 때문에 이별을 노래하는 시들이 많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김행숙처럼 노래하는 시인은 없다. 절대로 나뉠 수 없다고 믿는 것이 분리되는 고통은 어느 날 계엄령과 같이 갑자기 다가온다. 이별은 단절의 재앙을 선고받는 것, 많은 것들이 무로 환원하는 사건, 다시는 합일되지 않는 무와 무로 나뉘는 역사다. 그 액운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마치 모래 위에 부러진 손톱 같이 아무렇지도 않다. “백사장 위에 부러진 손톱들 / 아무도 이어줄 수 없는 무와 무”(T. S. 엘리엇) 대부분의 이별은 저격수와 같이 우리 심장을 쏜다. 사람들은 이별의 총알을 맞고 쓰러진다. 금기들이 생기고 몸과 마음은 금기들이 만드는 감옥에 갇힌다. 이별한다는 것은 벽 없는 감옥의 수인(囚人)이 되는 것이다. 이별의 능력이란 먼저 이별할 수 있는 능력이고, 그 다음은 이별의 후유증을 견디는 능력이고, 마침내 자아를 살육하는 부재와 고요히 다가오는 심장마비를 극복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김행숙은 이별을 마치 즐거운 유희라도 되는 것처럼 쓴다. 이별을 감당하는 처지에 놓인 시적 화자는 스스로를 담배연기, 수증기, 산소라고 말한다. 이별을 겪어 내는 시의 화자는 어디에도 심각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이별의 아픔, 이별의 슬픔들을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에 실어 버린다. 그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고 곧 공중에서 사라져 버린다. 혼자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 거야”라고 말한다. 이 시적 어조의 경쾌함과 명랑함이라니! 복수조차 명랑한 일에 속하는 것처럼 말한다. 시적 화자가 겪는 이별은 명랑한 이별이다. 그래서 마치 세상의 모든 이별이 명랑한 것인 양 오해될 수 있겠다.

이별 뒤에 당신은 한순간의 환각이 만든 헛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별을 하고 빨래를 하고 당신을 담배처럼 태운다. 당신의 “비계가 부드럽게 타고”, “피가 끓고”, “내장이 연통이 되”고, 마침내 “당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당신을 태우는 것은 당신을 식도로 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가 삼켜 버린 당신의 존재감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어디에도 존재감이 없는 당신과, 당신의 흔적들을 굳이 잊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무로 돌아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미 무로 환원해 버렸기 때문에 ‘나’는 “2시간씩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노래를 부르고, 빨래를 하고, 낮잠을 자고, 명상을 하고, 헛것을 본다. 그 시간들을 주목하자. “2시간 이상씩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씩 빨래를 하고”, “2시간 이상씩 낮잠을 자고”, “3시간 이상씩 명상을 하고”, 그리고 이윽고 “헛것”을 본다. 그것들은 이별의 감옥에서 필사적으로 도주하기다. 시의 화자는 웃고 있지만 실은 속으로 울고 있는 것이다. 노래를 하고, 빨래를 하고, 낮잠을 자고, 명상을 하는 동안은 이별의 고통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 시간이다. 이 시적 어조의 명랑성 아래에는 침묵의 무수한 울부짖음과 슬픔의 십이지장과 이별의 저격을 받고 죽은 마음의 시체들이 숨어 있다.

이별은 마음의 씨앗들을 짓이겨 버린다. 차라리 씨앗들이 짓이겨진 뒤에는 유태인 600만 명이 사라진 2차 세계대전 뒤에 태어난 베를린의 소년들처럼 천진난만할 수가 있다. 시적 화자는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문득 눈을 뜬다. “눈을 뜰 때가 있었어”라는 구절은 ‘나’의 슬픔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내내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뜻이다. 눈을 뜬다는 것은 이별의 슬픔에 대해 눈을 뜬다는 것이다. 그때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 그러면 시적 화자는 더욱 사랑스럽고 모호해진다. 그리하여 삶의 인습에 묶인 제 존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익명성 속에 숨긴다. 담배연기, 수증기, 냄새들이 공중에 섞이는 것처럼. “우리는 아픔 없이 잘게 부서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 섞일 수 있습니다. 만두의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초대장〉) 만두는 이것저것들이 잘게 부서져 뒤섞여 만든 익명의 세계다. 개별성을 지워 버린 만두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당신은 무궁무진한 만두의 세계 속으로 흘러가 버렸다. 이별을 겪고도 씩씩함을 잃지 않은 시적 화자는 이웃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든다.


김행숙(1970~ )은 서울 사람이다. 김행숙이 태어난 1970년에 전태일은 제 몸에 석유를 붓고 분신자살을 했다. 오후 2시경이었다. 당시 평화시장 피복공장에서 일하는 전체 근로자들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고 외쳤다. 그해 별자리들은 불안했는데, 특히 화성과 목성과 토성들은 기묘한 부조화를 만드는 위치에 있었고, 그 빛은 흐렸다. 세 별의 부조화는 달의 인력에 영향을 미치고 그 인력의 변화로 자궁이 약한 여자들은 생리불순이 잦아지고 우울증에 빠지곤 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기적 격변(激變)에 대한 힘들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대마초에 취한 젊은이들의 시대가 곧 올 것이었다. 그해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텔레비전 키드들이다. 김행숙은 첫 시집 《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3)의 뒤표지에 “한때, 내가 되고 싶었던 건 투명인간이었다”고 썼다. 선일여자고등학교 복도에서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투명인간이 되었으면 하는 공상을 하던 여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시인이 되었다. 이끼 낀 태양이 뜨고, 거리에서는 도를 믿는 사람들이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여학생들이 치맛단을 접어 무릎을 드러낼 때 제 머릿속을 공상의 보육원이라고 상상한 선일여자고등학교 여학생 김행숙은 몇 번의 졸업식과 송별식을 거친 뒤에 시인이 되었다. 그 김행숙을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두어 번 본 적이 있다. 흠, 키가 크고 별 말이 없군. 말없음의 틈으로 나는 그의 고요한 내면을 슬쩍 엿본 듯하다. 첫 시집의 〈울지 않는 아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아주 조용하죠. 내 머릿속에서 훌쩍임들이 멎고 흘러나오던 콧물도 얼었어요”라고 말하는 울지 않는 아이, 그게 바로 시인의 자아일까? 울지 않는 아이는 세상의 폭력을 피하지 못하고 묵묵히 견디는 아이다. 자아에 가해지는 세상의 폭력들은 “모퉁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자동차” 같다. 그걸 피할 수 없으니 자동차는 그대로 아이의 몸을 통과하고 지나간다. 울지 않는 아이는 고요가 “고요를 분할”하는 소리를 듣는 아이다. 그런 아이들은 성장해서 다 시인이 되는 것일까?

사진 : 문지민
글쓴이 장석주님은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같은 해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이 입선되어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이다. 그동안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붉디 붉은 호랑이》, 《절벽》 등의 시집을 내고, 《20세기 한국문학의 모험》(전 5권) 등 50여 권의 책을 냈다. 지금은 국악방송에서 생방송 <장석주의 문화사랑방>을 진행하고 있다.
  •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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