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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끝장정신이면 뭐든 할 수 있어예!

오스트리아에서 수상도 석 달씩 기다려 찾는 퓨전 한식당 운영하는 김소희

“사랑이지예. 저와 요리의 관계는 파트너십이라예. 내가 요리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다 보니 노력이 나와예.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식당을 하는 사람과 요리를 사랑해서 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예.”
“한국에 와서 밥을 닥치는 대로 먹었더니 살이 좀 올랐어예.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돼. 밥을 먹어야지 진기가 있지, 밀가루 먹으면 훌떡 미끄러진대이. 안 그래예?”

오스트리아에서 온 깡마른 요리여왕은 너무도 한국적이었다. 26년 전 한국을 떠났던 그의 말투에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가 그대로 묻어났다. 동행한 스태프에게 “차들 한 잔씩 해라. 넌 커피 말고 주스 마시라, 넌 커피 말고 인삼차 마시고” 하며 건강을 일일이 챙겼다. 빈에서 한식 레스토랑 ‘킴 코흐트’를 운영하는 김소희 셰프. ‘킴 코흐트’는 김소희 씨의 성 ‘김’과 독일어로 ‘요리하다’는 뜻의 ‘코흐트’를 합성한 말로, ‘김이 요리합니다’라는 의미다. 한국 음식을 오스트리아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퓨전 한식을 선보이는 식당인데, 그의 요리를 먹으려면 오스트리아 수상도 꼬박 세 달을 기다려야 한다. 1년에 네 번 예약을 받는데, 예약을 받기 시작한 지 1주일 안에 세 달치가 꽉 찬다고. 킴 코흐트는 권위 있는 요리평가단체인 ‘알 라 카르테’에서 여러 차례 비유럽 요리 부문 1등을 차지했다.

그가 8월 말 열린 서울 푸드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는 이 페스티벌에서 ‘불고기를 얹은 신선초 수제비’ 등 세 가지 퓨전 한식을 선보였다. 평범한 수제비도 그의 손을 거치면 예술이 됐다.

“밀가루와 쌀가루를 섞어서 신선초 녹즙을 넣고 반죽을 해예. 쌀가루를 섞으면 반죽에 찰기도 생기고, 속도 편하거든. 국물 맛은 멸치, 무, 다시마로 내고, 간은 멸치액젓으로 해예. 수제비를 따로 익혀 뒀다가 국물에 옮겨 담아야 탁하지 않고 깔끔해요. 우리 부산에서는 꾸미라고 하는데, 그 위에 불고기, 단호박, 미나리, 배, 신선초를 올려예. 신선초와 배가 몸속의 열기를 뽑아 주는기라.”

그는 음식을 할 때 재료의 효능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번 한국 방문 때도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다니면서 한방에서 쓰는 약초의 향과 맛, 효능에 푹 빠졌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그는 한국산 재료만 고집한다. 간장, 고추장, 참기름, 액젓 등 양념은 물론 깻잎, 부추 등 야채도 한국 품종을 고집한다. 값은 4~5배 비싸지만 한국의 맛을 내기 위해서다.

킴 코흐트는 1주일에 나흘만 문을 연다. 나머지 사흘 동안 그는 독일 방송 네 군데와 오스트리아 국영방송 요리채널에 출연해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한국 음식을 소개하고, 남는 시간엔 요리책과 한방 의학책을 쌓아 두고 새로운 메뉴 개발에 빠져 지낸다. 킴 코흐트에서는 분기별로 식단이 바뀐다.

이 레스토랑에는 철칙이 있다. ‘단골손님이 왕이다’라는 것. 아무리 내로라하는 명사라도 예약 시 새치기할 수 없다. 그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맛도 맛이지만, 손님의 취향 하나하나를 기억해 두는 세심함이 큰 역할을 했다.

“한 손님이 메뉴에도 없는 연어 요리를 주문하는 거라. 직원들은 그런 거 다 맞춰 주면 어떻게 장사를 하느냐며 말렸지예. 내 생각은 달랐어예. 그 손님이 원하는 대로 음식을 내면서 다음에 그 손님이 왔을 때엔 연어 요리 퍼레이드를 해 줬어예. 그랬더니 난리가 난 기라. 또 어떤 분은 장국을 양푼 같은 그릇에 달라고 해. 원하는 대로 해 주고, 다음에 그 손님이 왔을 때 내가 먼저 양푼에 장국을 줬지.”


의상디자인 공부하다 허하고 배고파 요리사 되기로

김소희 씨는 1983년,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극성맞은 딸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 데모대 선두에 설 것이라고 걱정한 어머니가 지인이 있는 오스트리아로 보낸 것. 손재주 좋고 눈썰미가 남달라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는 늘 마음이 허하고 배가 고팠다 한다. 그래서 1996년, 인생 궤도를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요리를 하기로 한 것. “밥장사하면 밥은 안 굶는다”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로 선택한 길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단 레스토랑을 열었고, 유럽에 한국 요리 붐을 일으킨 주역이 됐다. 그는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성 스시 요리사이기도 하다.

그는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던 경험을 요리에 접목했다. 그의 요리는 일단 시각을 자극한다. 요리와 접시가 형태와 배색에서 하나로 어우러지고, 요리 재료의 색감이 감각적이다. 킴 코흐트의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로고는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요리 학원에 한 번 다녀 본 적 없는 그가 오스트리아 최고의 요리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끝장정신’에 있다. 그는 무엇이든 한번 시작한 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마음에 드는 음식이 있으면 하루 세 끼 그것만 먹고, 좋은 음악이 있으면 하루 종일 그 곡만 듣는다고 한다. 사시미 뜨는 걸 배우기 위해 연어를 궤짝으로 사다가 밤새워 가며 연습하는가 하면, 치즈의 세계를 배우기 위해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치즈만 먹은 적도 있다. 그는 치즈를 원래 못 먹는다. 우유를 소화시키는 효소인 락타아제가 없어서란다. 치즈를 쉬지 않고 먹은 후 먹은 걸 다 토해야 했다. 그는 킴 코흐트의 성공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지예. 저와 요리의 관계는 파트너십이라예. 제가 요리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다 보니 노력이 나와예.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식당을 하는 사람과 요리를 사랑해서 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예.”


그는 소믈리에 과정을 이수했다. “소믈리에 과정을 밟다 보니 각 재료의 맛이 머리에 저장돼 요리에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일에 빠져 지내느라 결혼에 신경 쓸 여력이 없던 그는 얼마 전 결혼을 했다. 남편은 오스트리아인 소믈리에로, 그 역시 일에 빠져 사느라 결혼이 늦었다 한다. 이번 한국 방문은 부부의 신혼여행이었다. 인터뷰 중 잠시 아내를 만나러 온 그는 영화배우 알 파치노를 닮았다.

김소희 셰프는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인의 롤모델로 꼽힌다. 그에게 해외에서 사는 한국인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이겨 낼 수 있다는 긍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힘들 때마다 오뚝이를 사다가 쓰러뜨려요. ‘니 이래도 일어나나, 이래도 일어나나. 니가 일어나니 나도 일어나야지 않겠나’ 하면서 웃어요. 우리 한국인들은 질겨예. 그라고 부지런하고. 잘 알아서 할 거라예.”


요리 말고 하고 싶은 게 더 있냐고 물었다.

“종이가 모자라예. 뭐가 이래 하고 싶은 게 많은지 모르겠어예. 붓글씨도 하고 싶고, 남편이랑 함께 한국에 오스트리아 와인도 소개하고 싶고, 아시아 사람도 돕고 싶고.”

그는 인터뷰 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활기차게 이야기했다. 빽빽한 일정 때문에 피곤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나를 만나러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피곤해하면 안 되지예. 킴 코흐트에 오는 손님들도 마찬가지라예. 일부러 나를 찾아오는 손님인데 얼마나 고맙습니꺼? 그저 만나는 사람마다 최선을 다하는 거지예. 그게 사람 사는 거 아니겠습니꺼?”●

사진 : 신규철
  •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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