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전문가 주기재 교수

습지도 우리나라의 중요한 재산이란 걸 아시나요?

환경올림픽이라 불리는 국제환경회의 람사르총회가 한국에서 개최된다.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이라는 주제로 10월 28일부터 11월 4일까지 창원에서 열릴 예정. 아시아지역 국가 간 습지보전을 논의하는 이번 회의는 한국이 환경을 생각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기회다.
습지 전문가 주기재 교수(부산대 생명과학과)는 자타가 공인하는 람사르총회의 숨은 공로자다. 1996년부터 람사협약당사국회의 한국정부 대표를 맡고 있고, 국가장기생태연구사업 담수부분 책임을 맡고 있다. 그는 1983년 부산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앨라배마 주립대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93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낙동강 플랑크톤 연구를 통해 생태계의 이해가 수질과 유역 관리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임을 부각시켜 왔고, 통합적 생태연구 성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번 람사르총회 10차 회의에 나올 ‘창원선언문’도 그의 손을 거쳤다.

“람사르총회의 목표는 국제협력을 통해 생태계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지요. 람사르 부총장과 선언문을 작성하면서 책상 속에 넣어 둘 선언문은 처음부터 만들지 말자고 했어요. 10여 명의 전문가가 회의를 거쳐 합의한 내용으로, 상징적 선언문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각 나라의 정책에 반영되리라 기대합니다.”

그는 ‘람사르협약 보존습지’로 지정된 순천ㆍ보성 갯벌, 우포늪 외에도 서해안 갯벌과 1만8000개에 이르는 저수지 등 우리나라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라고 말한다.

“습지가 파괴되면 철새들이 이동하는 길도 파괴됩니다. 오리나 기러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세상이 오는 거죠. 상상하기 싫은 일이에요. 한 소녀가 철새들의 엄마가 되어 길을 떠나는 영화 <아름다운 비행>을 모두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 소녀의 순수한 마음을요. 2000년 전 낙동강 하류는 바다였어요. 이제 논으로 바뀌면서 95% 이상 습지가 소실되었어요.”

개발만을 강조하던 시대에 농경지 확장, 제방 건설, 갯벌 매립이 빈번해지면서 우리나라에서 습지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는 것. 습지의 생태, 사회, 경제, 문화적 가치를 국가가 나서서 체계적으로 보전하겠다는 의미에서 우리나라가 람사르협약에 가입한 것이 1997년이었다. 그는 람사르총회를 개최하기 위해 4년 전부터 경남의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창녕의 우포습지교육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그는 2005년, 일본 황태자가 직접 수여하는 것으로 유명한 ‘생태학 비와호상’을 수상해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1991년 일본 시가현이 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는 상으로, 50세 이하 아시아권 생태학자 중 매년 한 명을 선정해 500만 엔의 상금과 함께 상을 주고 있다. ‘비와호’는 시가현에 있는 일본 최대의 민물호수. 이곳은 지금, 2050년까지 공업화 이전 수준의 수질을 목표로 ‘마더 레이크 21’ 사업을 벌이는 중이다. 그는 ‘하천과 배후 습지의 생물다양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하천복원, 습지보존, 장기생태연구 등에 크게 기여해 온 점을 인정받아 이 상을 받았다.

“일본 황태자는 생물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고 해요. 닭이 야생에서 어떻게 집에서 기르는 가금류가 되었는지 연구한다고 합니다. 일본 천황 가족은 현미경 보는 것을 좋아하고 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세계 각국 다니며 수집한 습지 관련 공예품과 서적, ‘람사르문화관’에 기증

그는 어릴 때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패총을 찾아 이리저리 쏘다녔다. 그러느라 휴학하여 고등학교를 4년 동안 다녔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고학과 역사, 생물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선택한 게 생물학이었다. 생태뿐 아니라 거기에 얽힌 문화까지 연구하는 습지 연구에 끌린 것도 이런 독특한 취향과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 총회에 맞춰 개관할 창원시 ‘람사르문화관’에 13여 년 동안 모은 습지문화관련 공예품과 미술품, 서적을 기증했다. 그가 중국, 베트남, 핀란드, 러시아, 아프리카, 호주, 방글라데시 등 20여 개국을 다니며 모은 것들. 수백 점에 이르는 공예품과 미술품, 습지관련 책 200여 권, 세계 습지포스트 150점 등이다.


“쇠뿔로 만든 오리 모양의 인도 공예품, 꼬막조개가 달린 옷 등 가지각색의 물건들이지요. 1년에 예닐곱 번씩 출장이나 여행으로 외국에 가는데, 일을 마치고 나면 무조건 골동품 거리나 민속 공예품점을 찾았어요. 우리나라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물새 중에서 오리, 기러기, 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 고니 등 한국을 지나가는 새를 주제로 한 공예품과 미니어처를 주로 모았다. 이외에도 부레옥잠을 이용한 쿠션이나 원주민들의 생활 공예품도 수집했다. 처음부터 기증할 생각으로 모은 것들이지만, 그중에는 함께 여행 갔던 아내가 고이 간직해 온 물건들도 있다. 그걸 몰래 가지고 나오다 아내한테 들키기도 했다는 것.

“우리는 혼례를 할 때 나무로 깎은 원앙을 놓잖아요. 사실 원앙은 바람둥이예요.(하하) 어느 나라든 새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까지 알 수 있어요.”


중앙아시아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나무로 깎은 오리를 손에 쥐어 주는 풍습이 있다. 말하자면 오리가 천당행 티켓인 셈. 그 흔적을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낙동강 유역에서 발견된 오리 모양 토기가 일본 천황의 무덤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가령 우리 동네에 오는 새들은 시베리아로 날아갑니다. 우리가 보던 고니를 시베리아 사람들은 어떤 눈으로 볼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철새의 눈으로 보면 국경이란 의미가 없어요. 이번 총회의 주제가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이에요.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게 중요하지요.”

9월 초 예비 개관해 일반인에게 문을 여는 람사르문화관에는 철새를 주제로 디자인한 우표 검색 코너도 있다. 콘텐츠 기본 계획도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우리 국민들도 ‘습지도 문화’라는 인식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며 그는 욕심을 부려 본다.●

사진 : 문지민
  •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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