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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그릇을 빚고 싶어요

자연주의 도예가 김지영

그의 그릇은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자연 속에서 탄생한다. 꽃 한 송이나 풀잎 하나, 혹은 나무 한 그루가 그릇을 가득 채우고 있다. 디테일을 생략한 간결한 선, 색도 극히 제한했다. 자신의 얼굴에 색칠을 하지 않듯 그는 자신이 만드는 그릇에도 색칠을 하지 않는다.
내 그릇이 그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푸른 나무 같은 활짝 핀 꽃 같은 풀잎 같은
즐거움이 되기를

올해 초,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연 도예가 김지영이 팸플릿에 쓴 글이다. 이 짤막한 글에 그가 지향하는 그릇세계가 담겨 있다. 그는 생활 속 도예를 추구한다. 두 아이들이 깔깔대며 뛰노는 소리를 들으며 그릇을 빚고 그 그릇들이 누군가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마음 편하게 해 주길 기원한다. 인공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손으로 하나하나 빚어 내는 그의 그릇은 깐깐한 도시 엄마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올해 개인전에서도, 작년에 열린 <이야기가 있는 그릇전>에서도 그의 작품은 거의 다 팔렸다.

그에게 전화를 걸자 “저 바깥 활동 잘 안 하는데요, 집으로 놀러 오세요. 저희 동네 공기가 좋거든요” 했다. 기분 좋은 경쾌한 목소리였다. 그의 집은 서울 강동구 암사동 산자락에 있다. 나지막한 산을 등지고 단독주택이 옹기종기 모인 동네에서 정원 잔디밭이 가장 푸르게 보이는 집이었다. 이 공간이 그의 집이자 작업실이다. 1층에는 가족들의 침실과 부엌이 있고, 나무로 지은 테라스가 있는 2층에는 부부의 서재가 있다. 지하가 그의 작업실이다. 마당에는 다섯 살 선채와 네 살 선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자동차들이 삐뚤빼뚤 놓여 있다.

화장기 하나 없는 그에게 “왜 화장을 안 하시느냐?”고 묻자, “아예 화장품이 없어요. 가지고 있는 색조 화장품이라곤 입술 보호제가 전부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김지영의 그릇은 옛 분청사기를 보는 듯 전통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현대적이다. 문양이 화려하거나 정교하지도 않고 색도 배제되어 있는데,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그의 그릇은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자연 속에서 탄생한다. 꽃 한 송이나 풀잎 하나, 혹은 나무 한 그루가 그릇을 가득 채운다. 디테일을 생략한 간결한 선, 색도 극히 제한했다. 자신의 얼굴에 색칠을 하지 않듯 그는 자신이 만드는 그릇에도 색칠을 하지 않는다. 색색의 안료를 쓰는 대신 불에서 구워 내는 흙 색깔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릇. 옛 도공들이 만들던 분청사기의 기법을 변용해 자신만의 기법을 찾아냈다.

회색이나 회흑색 태토 위에 백토를 입힌 후 유약을 발라 구워 내는 분청사기. 그 역시 어두운 색의 태토 위에 백토를 발라 굽는다. 이때 액체고무(라텍스)로 그림을 그린 후 백토물을 바르면 라텍스 부분만 백토가 발리지 않아 문양이 드러난다. 잎맥같이 선으로 표시해야 하는 것은 산화철 안료로 그린다.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에 비해 ‘소박한 자연미’를 중시했던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의 기법과 정신을 그대로 이으면서도 현대적으로 번안한 그릇들이다. 두 아들의 엄마, 아내, 예술가 1인 3역을 소화하려면 바쁠 법도 하건만 그는 어시스트 없이 물레질, 형태 뜨기, 그림 그리기, 초벌구이와 유약 담금질, 재벌구이 등 모든 과정을 혼자서 다 해낸다. 김지영은 생활밀착형 예술가다. “고독은 예술가의 영원한 조건”이라는 한 평론가의 말은 김지영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이들 손을 잡고 산책하면서 만나는 길가의 풀꽃에서 영감을 얻고, 아이들과 놀아 주던 장난감이 작품 소재가 된다.

“아침에 선채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후 6시까지 작업해요. 저녁에는 매일 아이들 손을 잡고 동네 산책을 하죠.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놀다 작업하는 제 옆에서 흙장난을 하기도 해요. 주말에는 작업을 안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요. 저한테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거든요. 작업 규모를 늘리라는 제안도 많이 받는데 당분간 그럴 생각이 없어요.”


16세기 백자 그릇 보고 도자기 만들기로 결심

도예가로서 그는 왜 생활도예, 그릇 만드는 일로 방향을 정했을까?

“처음엔 제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오브제 작업을 했어요. 그랬더니 어두운 면이 더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작품으로는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없겠다 싶었어요. 그릇은 밥을 담고 과일을 담는, 생활 속에서 쓰는 물건이잖아요. 쓰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요. 저를 고집하다 보면 좋은 그릇이 나오기 힘든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제 자신을 비우는 연습을 해요.”

그는 세상의 시끄러운 소식과 단절된 세계에서 산다. 그의 집에는 TV가 없다. 신문도 보지 않는다. 남편과 동네 아줌마들에게 듣는 소식이 전부다. 감정이입을 잘해 우울한 뉴스를 들으면 덩달아 우울해지기 때문에 행복한 마음으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TV를 없앴다 한다.

시골 정취가 풍기는 곳에 살지만 김지영의 시각적 취향은 지극히 도시적이다. 심플하고 고상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는 DKNY라고 한다.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DKNY 스타일과 그의 그릇은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건 도시인들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그가 도예에 관심을 가진 건 그의 나이 29세 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도자사’ 문화강좌를 듣고 나서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고향인 대구에서 우연히 유 전 청장의 강좌를 듣고 우리나라 도예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우리나라 도자기에는 슬픔과 한, 해학이 녹아들어 있어요. 16세기 초기 백자 접시 ‘망우대’를 본 순간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동이 밀려왔어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손으로 우리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김지영은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29세에 서울산업대학교 도예학과에 편입, 졸업 후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도자공예를 전공했다. 그러고도 도예공부에 대한 갈증이 풀리지 않아 국립박물관의 박물관대학에서 2년간 더 공부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포기했던 그는 도자기를 접하면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성격도 쾌활해지고 표정도 밝아졌다. “흙을 만지고 살 팔자였나 봐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인터뷰 도중, 둘째 선우가 얼굴에 잠자리채를 뒤집어쓰고 장난감 칼을 들고 나타났다가 탁자 위 고구마 하나를 들고 다시 나갔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그의 그릇에는 아이들 얼굴과 자동차 그림이 하나 둘 늘었다. 최근엔 첫째 선채의 부탁으로 로봇과 로켓 그림도 그려 넣었다.


혼자서 빚을 수 있는 수량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와 한남동에 있는 갤러리 ‘김영진의 차이’, 파주 헤이리에 있는 ‘한향림 갤러리’에서만 판매한다. 컵 하나에 1만4000원, 접시와 반상기 세트는 10만 원 내외 수준.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복을 나눠 주고 싶어 조금 무리하면 누구든 살 수 있는 선에서 그릇 가격을 정했다 한다.

행복을 빚는 도예가 김지영,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릇도 제 자식이에요. 제 자식들이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그들에게 행복을 안겨 주었으면 좋겠어요.”●

사진 : 신규철
  •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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