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랑을 하는 <지젤>로 전국 순회공연 중인 김주원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발레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발레는 몸의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에요.
손가락 끝, 발끝까지 몸 전체가, 미세한 근육 하나까지 표현 도구가 되기 때문에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하지요.”

“무대에 서면 바로 그 인물이 되어 몰입해요.
제가 울고 웃는 데 따라 관객이, 극장 전체가 함께 울고 웃는 게 느껴지지요.
그 교감은 말로 할 수 없어요.
‘아, 내가 춤을 추고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충만하지요.”
가슴이 먹먹했다. 사랑에 들떠 있던 시골 처녀가 남자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고 슬픔에 겨워 미쳐 버릴 때, 죽어서 처녀귀신이 된 다음에도 그 남자를 사랑의 힘으로 보호할 때.

국립발레단이 8월부터 11월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지젤〉. 낭만발레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지젤’로 등장하는 발레리나 김주원은 지젤 그 자체였다. 사랑에 빠져 홍조를 띤 발랄한 소녀의 모습, 사랑을 잃은 후 무너질 듯한 몸을 하고 허공을 멍하게 바라보는 모습, 처녀귀신(윌리)이 된 후 이승과 저승 사이를 배회하듯 공중을 떠다니는 것 같은 모습…. 몸이 45도로 기울어져 하늘로 날아오를 듯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 자세를 ‘지젤 라인’이라고도 부르는데, 김주원은 완벽한 지젤 라인을 가진 무용수로 평가받는다.

대사 한마디 없이 스토리를 전달하면서 관객을 울고 웃기는 발레. 얼굴부터 발끝까지 미묘한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로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 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주원은 탁월했다. 가늘고 긴 목과 등, 어깨로 슬픔이 흘러내리고, 우아하지만 힘없이 움직이는 팔 동작과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독일 라인강변의 한 마을에 사는 아리따운 소녀 지젤. 그를 보고 한 눈에 반한 귀족청년 알브레히트는 신분을 속이고 사랑을 고백한다. 지젤을 짝사랑하던 청년 힐라리온이 알브레히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충격을 받은 지젤은 미쳐서 죽고, 처녀귀신이 된다. 남자를 꾀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처녀귀신들. 지젤의 무덤을 찾은 알브레히트까지 죽이려 하자 지젤이 나서서 구한다는 내용이다. 발레 〈지젤〉의 성패는 ‘지젤’ 역을 맡은 주역 무용수가 얼마나 절절하게 감정 표현을 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무용수라도 쉽게 이 배역을 맡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역할. 국립발레단의 〈지젤〉에는 김주원과 윤혜진이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지젤’ 김주원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과 공연으로 빽빽하게 짜인 스케줄. 두어 달 전 〈백조의 호수〉 리허설을 하다 목을 다쳤는데,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과로가 겹쳐 다시 쓰러졌다고 한다. 8월 31일 저녁, 서울 창동 열린극장 무대에 서기 전에도 병원에 실려가 링거를 맞았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는 무대에서 철두철미 지젤이 됐다. 9월 2일, 저녁 공연 때문에 목포로 내려간다는 그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안에 있는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붙잡았다. 그의 겉모습은 연약한 지젤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의 라인도, 이마에서 턱까지 내려오는 얼굴선도 가냘펐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치밀하고 조직적이고, 단단했다.

지젤처럼 처절한 사랑을 경험했나요? 무대에서 당신의 모습은 너무 절절하던데.

“발레리나의 삶이라는 게 사생활이 거의 없어요. 1주일에 두세 번씩 무대에 오르려면 하루 종일 연습하고 공연하고, 남은 시간은 집에서 자는 것밖에 없어요. 발레는 몸의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에요. 손가락 끝, 발끝까지 몸 전체가, 미세한 근육 하나까지 표현 도구가 되기 때문에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하지요. 그러려면 밤늦게까지 논다든지 술을 마신다든지 하는 생활은 생각도 할 수 없어요. 제 나이에 맞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지요. 대신 간접경험을 많이 쌓으려고 해요. 책을 많이 읽고, 영화도 꼭 챙겨 봅니다. 따로 공부도 많이 해요. 〈돈키호테〉를 공연할 때는 투우, 플라멩코 등 스페인 문화 전반을 공부해 동작 하나에도 스페인 느낌이 나게 하려 하지요.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파르타쿠스〉에서 크랏수스의 애첩 예기나를 맡았을 때는 아무리 역사책을 뒤져도 그런 인물이 없는 거예요. 안무가에게 물었더니 ‘극의 재미를 위해 덧붙인 인물’이라 하더군요. 고민하다 ‘클레오파트라와 비슷한 성격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연구했죠.”

무대에서나 사진촬영에 임할 때나 그는 몸의 표현뿐 아니라 얼굴의 표정연기까지 능했다.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연기를 잘하느냐고 묻자 “개인적으로 연극하시는 분께 따로 연기 수업을 받았어요. 연극이나 오페라나 노래나 감정을 끌어내는 과정까지는 똑같은 것 같아요 ”라고 답한다.



외국 발레단에서 러브콜 받으면서도 국내 무대를 지키는 이유

김주원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그는 2006년, 세계 발레리나들에게 최고의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ce)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았다. 한국의 발레리나가 이 상을 받기로는 1999년 강수진 씨(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이후 처음. 실력 있는 무용수들의 해외 진출이 빈번한 요즘, 그는 왜 세계 무용계로부터 ‘최고’로 인정받으면서도 한국 무대를 고집하는 것일까?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봐요. 영국과 러시아, 이탈리아의 메이저 발레단에서 와 달라는 제의가 잇따랐어요. 당장 주역이나 솔리스트로 서 달라는 거였지요. 그러나 저, 김주원은 국립발레단의 크고 작은 공연들로 만들어진 무용수입니다. 큰 무대뿐 아니라 구청, 군부대, 천막무대, 해남 땅끝 마을까지 누비고 다니며 춤을 췄죠. 저에게는 한국 무대가 무엇보다 소중해요.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무대에서 활동하는 발레리나가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유럽 발레단의 무용수들을 제치고 ‘최고’로 인정받았으니까요. 한국 발레에 대해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실력 있는 무용수들이 해외로만 눈을 돌리면 정작 한국 발레는 발전하기 어려워요. 제 바람은 우리나라 발레단이 외국으로 나가 공연하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지난 5월, 국립발레단이 폴란드의 초청을 받아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할 때 그는 줄리엣으로 무대에 서 갈채를 받았다.

“줄리엣이 죽는 장면에서 흐느껴 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막이 내린 후 20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죠. 좋은 작품, 무용수를 봤을 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김주원이 발레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때부터 지금까지 발레는 그의 삶에 있어 ‘변치 않는 첫사랑’이자 ‘삶의 중심’이 되어 왔다. 다른 발레리나보다 시작이 좀 늦지 않았느냐고 하자 “부모님이 예술을 좋아하셔서 어릴 적 안 해 본 게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1남3녀 4남매에게 피아노, 성악, 바이올린, 플루트, 미술, 수영, 육상, 골프까지 온갖 것을 다 시키셨어요. 그런데 다 너무 지겨웠어요.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갔다 벽만 보고 앉아 있기도 했어요. 발레도 4남매가 한꺼번에 시작했어요. 그런데 발레는 지겹지 않았어요. 항상 새로운 게 나타났으니까요.”

중학교 2학년 때 그는 러시아의 볼쇼이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서 열린 볼쇼이발레학교 특강에 참가했다 “너는 러시아에 와서 공부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고 반 년 동안 부모님을 졸라서였다. 1992년, 개방된 지 얼마 안 된 러시아는 의식주 모든 면에서 열악했다. 그러나 발레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시스템은 최고였다. 볼쇼이발레학교에서 공부한 6년은 발레리나로서의 기본기와 자세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 학교의 수석 졸업생. 그러나 러시아에 남지 않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아무리 뛰어나도 외국인은 볼쇼이발레단의 정단원이 될 수 없었어요. 2년간 연수단원을 거쳐야 했지요. 이 때문에 상처가 컸는데, 국립발레단의 최태지 단장이 ‘한국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1998년 〈해적〉으로 처음 무대에 선 그는 10여 년 동안 국립발레단원으로 살아왔다. 국립발레단이 스타 무용수들을 키우면서 서서히 발레 붐이 일 때였다. 무대에서는 요정처럼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발레리나.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조절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동료 단원들이 저보고 돼지라고 해요”라고 한다. 목포 공연이 끝난 후 세발낙지를 먹을 생각에 벌써 들뜬다고. 전막 공연은 축구 선수가 풀타임을 뛰는 정도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 공연이 끝나고 나면 몸무게가 3kg정도 빠진다고 한다. 부상도 항상 발레리나를 위협한다. 그는 “다시는 토슈즈를 신을 수 없을 것”이라는 발레리나로서 사망 선고도 여러 번 들었다.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받기 전해엔 족저근막염 진단을 받았어요. 엄지발가락을 올린 상태에서 체중을 발바닥에 실을 때 발바닥 근막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 병이지요. 염증을 긁어 내도 다시 생겨 죽을 때까지 달고 살아야 하는 불치병이에요.”

발레를 계속할 수 있을지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나요?

“저는 역경을 당하면 갑자기 낙천적이 되면서 되게 여유 있어져요. ‘의사들이 하는 말은 일반인 기준이다. 직업 무용수는 뼈나 근육이나 일반인과는 다르니 의사도 잘 모를 것 아니냐’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나를 재활시켜 줄 병원을 직접 찾아 나섰죠. 태릉선수촌의 운동선수들을 치료하는 병원을 찾았는데, 그들도 발레리나의 몸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제가 발레에 대해 가르쳐 주면서 재활훈련을 받았죠.”

하루 12시간씩 반복해서 물리치료하고 운동하고, 마사지로 근육을 풀었다. 그러기를 6개월. 발레리나가 병원에 갇혀 있자니 못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고비를 이기고 무대로 돌아왔고, ‘최고의 무용수’ 자리에 올랐다. 발바닥 근막에 힘을 주지 않으려 종아리 근육과 발가락 힘을 기른 결과였다. 한 의사는 그에게 “직업 제대로 택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의 폐 기능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밀폐된 공간에서 격한 동작을 하는 것은 빨리 죽고 싶은 사람의 행동이라는 것. 실제로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다 무대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게다가 만성기관지염까지 있어 항상 약을 먹는다. 그는 왜 ‘생명을 걸고’ 무대를 고집할까?

“무대에 서면 바로 그 인물이 되어 몰입해요. 제가 울고 웃는 데 따라 관객이, 극장 전체가 함께 울고 웃는 게 느껴지지요. 그 교감은 말로 할 수 없어요. ‘아, 내가 춤을 추고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충만하지요. 지젤같이 슬픈 역할을 하고 나면 너무 마음이 아파 공연이 끝나도 옷을 못 갈아입고 멍하게 앉아 있어요.”

그는 발레에서 인생을 배운다고 했다. 사랑과 질투, 죽음, 모성애를 모두 춤을 추면서 절절하게 느꼈다. 수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어떤 역할이 가장 자신과 어울린다고 느꼈느냐고 물었다.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롭게 저를 발견해요. ‘아, 내게도 이런 면이 있구나’ 하고. 〈돈키호테〉의 키트리를 맡았을 때는 ‘내게도 이런 열정이 있었구나’ 하고 놀랐다니까요.”


만 열아홉 어린 나이에 국립발레단에 들어온 그는 30대에 접어든 이제, 발레단의 최고참 무용수가 됐다. 30대가 되면서 달라진 게 있느냐고 물었다.

“지난해부터인가 감사하는 마음이 부쩍 커졌어요. 그리고 무대에서 주변의 무용수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많게는 100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오르기도 하거든요. 그 무대가 만들어지기까지 또 수많은 스태프의 고민과 노력이 있었고요. 그렇게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춤추는 게 너무 행복해요. 그런 감사와 기쁨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지나 봐요. 더 많이 감동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클래식 발레를 하는 무용수의 정년은 보통 40대 초반. 그에게 그 다음의 삶에 대해 생각해 봤느냐고 물었더니 “글쎄요. 생각 안 하는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루하루 자신을 쏟아 붓는 사람의 답이었다.●

사진 : 이창주
  •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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