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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수출용 분말 고추장 발명한 순창 고추장 할머니

강순옥 순창 장본가 대표

“음식은 어떤 것이든 재료가 좋아야 허는 것이여. 나는 액젓도 파는 것은 안 쓰고, 직접 집에서 담는당게. 무말랭이도 맛 유지허니라고 사람 사서 5일 동안 썰어. 힘도 들고, 인건비도 많이 들지만 계속 그렇게 해야제. 돈이야 양심껏 팔믄 따라오는 것 아니겄어? ‘임산부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자’, 고것이 우리 장본가의 원칙잉게.”
지난 5월,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세계여성발명대회’에는 재미있는 발명품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마치 컵라면처럼, 뜨거운 물만 부으면 즉석에서 고추장을 만들 수 있는 ‘분말식 고추장’이 등장한 것. 출품자는 전북 순창에서 전통 방식 그대로 장을 만들고 있는 강순옥 씨(63세)였다.

강씨는 전통식품 제조업체인 ‘순창장본가전통식품’(이하 장본가)의 대표이자 순창고추장민속마을의 부녀회장으로 고추장 제조 기능 보유자. 장본가 사무실에서 만난 강씨는 호탕한 웃음이 영락없는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분말 고추장을 만들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시원한 식혜 한 잔을 쭉 들이켜고는 “잉, 긍게, 고것이 말여”라며 말문을 열었다. 투박하고 구수한 사투리가 꼭 그가 만들어 내는 장맛 같았다.

“한 5년쯤 되었을 것이여. 미국 LA에서 전통식품박람회가 열렸는디 우리가 거그 참가를 허게 된 것이제. 나는 LA에는 큰 부자덜만 사는 줄 알고 장아찌, 고추장, 된장 할 거 없이 물건을 겁나게 해 가지고 갔단 말여. 그란디(그런데) 6000만 원 어치를 들고 가 겨우 1000만 원 좀 넘게 팔았으니 손해가 말도 못 허제. 전시회 자리 빌리는 데 500만 원, 운반비 500만 원 빼고 나니께 딱 비행기 값만 손에 떨어지드라고.”

판매가 부진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전북 순창에서 미국 LA까지 가느라 오랜 시간을 소비한 고추장은 전시회장에 도착했을 당시 상온에서 발효돼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 이 때문에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상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은 것이다.

“고것만 걷어 내고 먹으문 되는 것인디, 다들 상혔다고 안 사가부러. 방부제를 안 써서 그란디, 고것을 모르더라고. 잉, 앞으로 외국에다 고추장을 팔아먹을라믄 이렇게는 안 되겄다, 그런 생각을 허게 된 것이제.”

집으로 돌아와 보존기간을 늘리고, 보관이 쉬우면서 원래의 맛을 잃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그는 분말식을 떠올렸다. 찰밥과 메주, 물엿 등 고추장 재료를 쪄서 말리면 방부제를 쓰지 않고도 장기간 보관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그는 부엌에 간이 연구실을 차리고 실험에 들어갔다. 특별한 레서피도, 보조 인력도 없이 혼자서 눈대중으로 재료를 가감하느라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특히 향과 영양을 위해 첨가하는 고구마와 사과가 수분이 너무 많아 바짝 건조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는 “과일이나 야채 전용 건조기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며, “그 방법만 빨리 찾았어도 제품화 시기를 좀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가 개발한 분말 고추장은 500g들이 한 봉지에 동량의 뜨거운 물을 붓고 저으면 약 1kg 분량의 고추장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조청이나 물엿을 살짝 첨가하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맛과 빛깔이 제대로 살아난다. 무게가 가벼워 외국 수출 시 운송비가 크게 줄고, 필요한 만큼 그때그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시어머니로부터 가업 이어받아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이 고추장은 지난해 특허를 받았고, 곧 시판을 앞두고 있다. 지금은 시제품만 나와 있는 상태로 생산라인을 갖춘 뒤에는 홈쇼핑을 통해 본격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만큼 수출업체들의 문의도 줄을 잇는다.

“긍게, 요즘 전화는 많은디 아직 성사된 것은 없제. 재료를 수입산으로 해서 가격을 낮추어 달라는디 고것은 안 되는 일이니께 말여. 나가 이 일하면서 굳게 지키는 원칙 하나가 국산 재료만 쓴다는 것인디 안 팔믄 안 팔았제 그런 싸구려 재료로는 안 만든당게.”

그는 “고추장, 된장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계약 재배한 인근 농가에서 공급받고 있다”며, “40가구가 모여 있는 순창고추장 민속마을은 고추장을 만들 때 모두들 청정 지하수를 끌어 올려 쓰기 때문에 이 근방에서는 가축도 안 키운다”고 덧붙였다.

순창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언제부터 고추장을 만들었느냐는 말에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여그 순창 여자덜은 애깃적부터 고추장 만드는 걸 봐 왔기 때문에 배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누구나 저절로 한다”며, “순창은 온도, 습도, 물 등 모든 조건이 장이 제대로 발효되는 데 적당해 장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운영하는 장본가 역시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장 만드는 솜씨가 뛰어났던 시어머니가 시누이와 함께 장본가의 전신인 ‘장원’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식품 제조업체를 만들었고, 역시 장맛으로는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던 그가 합류하면서 회사를 물려받았다. 지금은 그의 며느리인 김명난 씨가 또다시 가업을 잇기 위해 장 만드는 법을 익히고 있다.

전통 제조법을 고수한 시어머니와 달리 그는 분말 고추장 같은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 중 브로콜리장아찌, 고구마장아찌, 김장아찌는 그가 개발한 신 메뉴. 그는 이 세 가지 장아찌로 3년 연속 농림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근고추장, 복분자고추장, 밤고추장, 단호박고추장, 호박고추장도 선보였다. 그는 “맛은 당근고추장이, 색은 복분자고추장이 제일 예쁘다”며 “앞으로도 맛뿐 아니라 영양까지 생각한 고추장을 계속 만들어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식은 어떤 것이든 재료가 좋아야 허는 것이여. 나는 액젓도 파는 것은 안 쓰고, 멸치를 100짝씩 사서 직접 집에서 담는당게. 무말랭이도 맛 유지허니라고 기계로 안 썰고 사람 사서 5일 동안 썰어. 힘도 들고, 인건비도 많이 들지만 계속 그렇게 해야제. 돈이야 양심껏 팔믄 따라오는 것 아니겄어? ‘임산부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자’, 고것이 우리 장본가의 원칙잉게.”


살림하던 시절에도 손이 커서 음식을 잔뜩 만들어 이웃과 나누기를 즐겼던 그는 지금도 주문 하는 사람들에게 ‘덤’이라며 장아찌를 덥석덥석 얹어 준다. “맛을 봐야 다음에 또 주문하지 않겠느냐”며 “그동안 고객들의 입소문 덕을 많이 봤다”고 한다. 특별한 마케팅도 없이 지난 한 해 동안 1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는 것이 그 증거다.


예순이 넘은 나이임에도 고추장 분야에서만큼은 20대 못지않은 도전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강순옥 씨. 그를 보며 ‘신지식인’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학력에 상관없이 자신의 전문지식을 잘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기존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업무방식을 개선곀村탭求?사람’을 신지식인으로 정의하고 있으니, 그는 이 기준에 더없이 부합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진 : 신규철
  • 200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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