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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국인 며느리들의 ‘친정엄마’

천안 이화여성병원 이종민 원장

천안 이화여성병원의 이종민 원장은 이 지역 이주여성 사이에서 ‘친정엄마’로 통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타국생활을 이겨 내는 데 그가 큰 힘이 되고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몸의 아픔뿐 아니라 마음의 아픔까지 들여다보는 의사’라고 한다.

이종민 원장이 이주여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10여 년 전, 혼기를 놓친 농촌총각들이 국제결혼으로 필리핀ㆍ태국ㆍ베트남ㆍ캄보디아ㆍ몽골ㆍ중국 등지에서 신부를 맞이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산부인과 원장인 그는 자연스럽게 이주여성들과 만났고, 모처럼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을 만난 반가움에 이주여성들은 그에게 이런저런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특히 영어를 구사하는 필리핀인 여성들은 그를 ‘엄마’처럼 따랐다.

“한번은 시골 할머니가 필리핀에서 온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는 ‘얘가 자살을 기도했는데 왜 그런지 좀 알아봐 달라’는 거예요. 여자는 우리말을 잘 못했고, 남편은 영어를 몰라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더라고요. 그 와중에 고부갈등까지 심해 결국 죽으려고 했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얘기를 들어 보면 모두들 상황이 비슷했어요. 가족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고, 문화가 달라 겪는 어려움도 많고. 그때만 해도 이주여성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낮아 결혼이라기보다는 거래라는 개념이 강했으니까요. 그러니 도울 수밖에 없었죠.”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이주여성에게는 병원비를 받지 않았다. 상담을 요청하면 기꺼이 상담사가 되어 주었고, 남편과 시어머니를 설득해야 할 때는 친정 식구 역할을 자청했다.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들과의 갈등도 적지 않았다. “네가 뭔데 나서느냐”며 병원을 찾아와 언성을 높이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직원들이 놀랄 정도로 똑같이 강하게 맞받아쳤다”며 웃었다.

“입덧이 너무 심해 탈진 상태가 된 이주여성이 있었어요. 향수병까지 겹쳐 친정에 다녀오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도망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절대 못 보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막 싸웠어요. 이러다 잘못되면 책임질 거냐고. 결국 친정에 가서 몸조리를 하고 돌아왔지요.”

이처럼 향수병에 시달리는 이주여성을 위해 그는 몇 해 전부터 아예 1년에 두 차례씩, 정기적으로 친정 나들이를 시킨다. 고향에 다녀온 지 오래된 순으로 한 번에 한 명씩 선발해 비용의 절반을 그가 부담하는 것. 그를 비롯한 의료진이 함께 따라가 의료봉사도 겸한다. 의료봉사단을 동반한 이주여성의 친정 방문은 그야말로 ‘금의환향’. 약이 귀한 곳이라 그가 현지에 남겨 두고 오는 여러 가지 상비약은 매우 요긴하게 쓰인다.

이주여성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그는 멘토링 시스템을 만들었다. 먼저 와 자리 잡은, 같은 국적의 선배 이주여성과 후배 이주여성을 두세 명씩 연결해 준 것.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이 친목모임은 지난 2004년 이화국제부인모임이라는 큰 조직으로 발전해 현재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물론 한국생활에 잘 적응한 성공사례도 많아요. 게다가 요즘은 이주여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지내더라고요. 주로 경제적인 문제, 자녀 교육 등 우리나라 주부들이 겪는 일반적인 고민들을 호소하는 걸 보면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해요. 진료실에 따라 들어와 이것저것 자상하게 묻는 남편도 많아졌고요.”


병원 건물 천안시에 헌납하고 복지재단 세워

충남 온양이 고향인 이 원장은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지난 1985년 고향과 가까운 천안에 이화산부인과를 개원했다. 천안역 부근의 4층짜리 건물에서 병원과 살림집을 겸하며 살다 병원 규모를 키워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 7년 전. 그가 맨손으로 시작한 이화산부인과는 현재 직원만 70여 명에 이르는 대형 여성전문병원으로 성장했다.

그의 병원은 낙태시술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관에는 ‘저희 병원에서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축복받은 생명의 탄생에 전심전력을 다하고자 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저도 한동안 시술을 했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로 늘 마음 한쪽이 무거웠는데 ‘아이 지우는 건 안 하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유언이 그 일을 그만두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어요. 경제적으로 타격이 컸지만, 지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참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는 지난해 또 하나의 큰 결단을 내렸다. 옛 병원 건물을 천안시에 헌납하고, 희정복지재단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사회봉사에 뛰어든 것. 전문 사회복지사가 상주하는 1층은 치매, 중풍 등 보호가 필요한 노인들의 주간보호시설로 운영되며, 국제부인모임의 사무실로 쓰는 2층에서는 이주여성과 자녀들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사실 건물을 헌납한다는 것에 대해 갈등이 많았어요. ‘그냥 내가 쓸까?’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요. 인간이 욕심을 버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답니다.(웃음)”


한창 고민에 빠져 있던 그 무렵, 남편인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 한주희 대표이사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당신이 오래전부터 마음먹은 일이고, 지역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한 자신과의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코넬대 건축과를 졸업한 큰딸과 미시건대를 졸업하고 특전사 복무를 자원해 현재 이라크에 가 있는 아들도 그를 채근했다.

“가족들이 큰 힘이 됐지요. 자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지인들이 십시일반 보태 준 후원금으로 일단 급한 불은 껐어요. 아쉬운 건, 지금 여력이 없어 처음에 계획했던 이주여성 자녀들의 놀이방 겸 공부방은 시작을 못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주여성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봉제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주여성들이 아이들을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 결국 포기했어요. 공부방이 생기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요. 또 이 지역 저소득층 자녀들까지 참여시킴으로써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마음은 급한데 돈은 없고, 이래저래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6남매를 혼자 키우느라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일하면서도 자식들을 모두 대학까지 가르친 어머니를 존경한다는 그는 ‘복지재단을 설립한 것도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라는 어머니의 유지를 받든 것’이라며 웃었다.

“서로 나누며 살면 참 행복해요. 봉사를 나눈다고 표현하는 것은 무조건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3년 내 은퇴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병원을 떠나면 제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은 복지재단 일에 전념하며 살 계획입니다. 참 행복하겠죠?”

사진 : 신규철
  • 200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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