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버벌 댄스 뮤지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

1시간 30분, 춤의 향연

무대의 막이 열리자 윗도리를 벗은 채 물구나무선 젊은 남성의 건장한 몸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친다. 이제부터 몸이 표현하는 가장 현란한 언어, 춤의 향연이 벌어진다는 신호다. 연이어 등장한 10여 명의 남녀 무용수들이 파워풀한 동작을 하면서 폭발한 에너지가 객석으로 넘쳐 흐른다. 지난 5월 서울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전용관을 연 <사랑하면 춤을 춰라>다. 2004년 10월 처음 선보인 <사랑하면 춤을 춰라>는 전국 투어, 일본 초청 공연 등 700여 회 넘게 장기 공연을 이어 오다 허리우드극장을 리모델링해 전용관을 마련했다. 이 공연이 젊은 층뿐 아니라 샐러리맨, 중년 관객에게도 인기다. 난해한 현대무용과 달리 단순 유쾌해 쉽게 동화될 수 있다는 게 인기 비결.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환자에게 이 공연을 보도록 권하는가 하면, 자식들이 젊어지시라며 티켓을 사줘 공연장을 찾았다는 노년 관객도 있다.

1시간 30분 공연 내내 춤으로만 이어지는 <사랑하면 춤을 춰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선보인 논버벌 댄스 뮤지컬로 ‘댄스컬’이란 이름도 붙었다. 준과 선, 빈 3명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사랑하기까지 과정을 대사 없이 춤으로만 펼쳐 보이는 공연. 현대무용과 비보이, 재즈, 힙합 등 갖가지 장르의 춤이 등장해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몸을 들썩이게 한다. 마지막은 무대 위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춤을 추는 ‘let’s dance’ 시간이다. 스토리 전개에 춤을 맞추다 보니 중간중간 박진감이 떨어지는 게 아쉬운 부분.

댄스 뮤지컬이라는 생소한 공연 형식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한 <사랑하면 춤을 춰라>의 연출자이자 제작자인 최광일 (주)두비컴 대표를 공연 후 만났다. 그는 한때 015B, HOT, 넥스트, 박효신, 김건모, 김종서, 김동률, 유승준, 솔리드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의 콘서트 연출자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 그전에는 부조리극을 무대에 올린 연극 연출자였다. 그의 끊임없는 변신이 흥미롭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연극판에 뛰어들었지요. 그런데 배가 고프더라고요. 돈벌 일이 뭐가 있을까 찾다 이벤트 연출을 시작했죠. 대전 엑스포 때 그랜드 쇼를 총연출했고, 기업들이 청소년을 위한 공연을 열 때 연출을 맡았습니다.”

이때부터 가수들과 친해졌다. “종서가 샤우팅으로 부르고 나면, 진섭이는 아기자기하게 가자고” 하면서 가수들이 각각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게끔 공연을 구성했다. 가수들은 자신들의 콘서트도 연출해 달라고 청했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게 됐다. 그는 콘서트에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 형식을 도입하면서 그 가수의 어떤 면을 팬들에게 어필할지 전략을 짰다. 록 가수에게 트로트를 부르게 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인간적인 매력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1995년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넥스트’ 공연 때 관객들을 서서 듣게 하는 ‘스탠딩 공연’을 처음 시도하기도 했다.

“신해철도 ‘형, 이건 지나친 것 아니냐’고 했지만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라’고 했지요.”


그가 문외한이던 춤을 연출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2000년대 초 아일랜드 댄스그룹의 댄스 퍼포먼스 ‘스피릿 오브 더 댄스’를 본 후다. 살사, 탱고, 플라멩코, 발레, 탭댄스 등 각종 춤이 어우러진 공연을 보며 ‘저런 공연을 우리 정서에 맞게 만들 수 없을까?’ 생각했다. 현대무용, 재즈 댄스, 힙합이나 브레이크 춤을 추던 춤꾼들을 각기 오디션으로 뽑아 팀을 꾸린 것.

처음에는 갈등도 많았다. 유명인을 데려와 안무를 맡겨 보았지만 각기 배경이 다른 자유분방한 춤꾼들을 다루기 어렵다며 중도 포기했다. 무용과 교수들은 “이런 일은 해본 적이 없다”며 두 손을 들었다.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면 춤을 춰라>는 공동 창작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현대무용, 재즈 댄스, 힙합 등 각 영역의 춤꾼들이 ‘이렇게 해보자’며 새로운 춤동작을 내놓고 최광일 대표가 전체적으로 조율한다. 관객들과 쉽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동작을 내놓기 위해 배우들은 세계적인 춤 경연대회 동영상을 입수해 연구하고 클럽을 찾기도 한다. 팀을 구성할 때 최광일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성.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을 찾는다.


서로에 대한 배려로 빛나는 무대

“아무리 춤 실력이 뛰어나도 독단적이고 모난 성격이면 전체 팀워크에 나쁜 영향을 주고 무대에서 바로 드러납니다. 배우들이 어떤 자세로 작품과 무대를 대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죠.”

자신만 빛나려 하지 않고 서로 빛나게끔 배려하는 가운데 나오는 유쾌함과 열정이 <사랑하면 춤을 춰라>의 힘이라고 한다. 최 대표는 갖가지 부업을 전전하는 등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춤을 고집하던 춤꾼들에게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주면서 춤에만 몰두할 환경을 만들어 줬다. 트럭 운전, 휴대전화 수리, 지압 마사지 등 갖가지 일을 하면서 힙합을 춰왔던 춤꾼, ‘동방신기’가 될 뻔했던 가수 연습생, 올림픽 출전을 꿈꾸던 스포츠 선수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데다 나이도 스무 살부터 30대 중반까지 다양한 배우들은 춤에 대한 열정 하나로 통한다고 말한다.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700여 회에 걸쳐 무대에 서 온 강유진 씨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춤을 좇아 춤꾼이 되었다. 유지한 씨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던 쇼트트랙 선수 출신. 중학교 때 운동을 포기하면서 우울증에 걸렸던 그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보이 춤에 빠졌다.

“안 되던 게 계속 시도하면 되는 것이 스포츠와 비슷했어요.”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오승택 씨는 “순수무용을 할 때는 두세 달 준비해 하루 이틀 공연해야 했는데, <사랑하면 춤을 춰라>를 하면서 매일 무대에 설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연습 전 몸을 푸는 동작부터 각자 다르지만, ‘춤’이란 공통분모가 있기에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사랑하면 춤을 춰라>는 관객과 눈을 맞추며 호흡을 같이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될 때 느끼는 희열은 무엇보다 크다고 입을 모은다.

최광일 대표는 이 공연을 논버벌 퍼포먼스 <난타>나 <점프>처럼 한국을 찾는 외국인을 위한 레퍼토리로 정착시킬 생각이다. 그래서 외국인이 자주 찾는 인사동 근처에 전용관을 마련했다. 이미 일본과 동남아, 유럽에서 온 관광객이 많이 찾았고, 2007년 봄 일본 초청공연 때는 12회 전 회가 매진되는 등 열렬한 환영을 받아 국제적으로도 통하리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사랑하면 춤을 춰라> 팀은 오는 8월 영국에서 열리는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 최 대표는 “외국과 우리나라에서 동시에 공연하기 위해 오디션을 통해 새 팀을 구성해 맹연습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 : 이규열
  • 200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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